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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MUZN Oct 19. 2021

3-1. 아빠라는 공포에 위축되던 어린 나에서 벗어나기

1)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어린아이가 아니다


상호작용 방식의 변화


어떤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는지와 상관없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자기) 형성할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평생을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없이 갖게  나의 의사소통 패턴을 원망하며 살아왔다. 나도 이렇게 행동하고 싶지 않은데, 내가 주어진 선택항목이 이것뿐이어서 나를 이렇게 만든 나의 환경이 싫었고, 내가 싫어서 그저 답답하고 속상하기만 했다.


  도망치고 싶지 않은데 도망치는 방법밖에 몰랐고, 이런 나로 인해 누군가 상처 받는 것이 너무 싫지만 나를 지키려고 하다 보니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기도 했다. 상담을 받고서야 나는 부모님에게 예쁨 받았던 방식으로 타인에게서도 호감을 얻으려고 했고, 부모님에게 상처 받은 방식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는  알게 되었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다른 관계에서 재현하며 내가 태어나며 지게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했던 거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어 고착된 나의 대인관계 패턴은 특히 아빠와 유사한 상대(예, 선생님)를 만날 때나 남자 친구를 사귈 때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빠는 아주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극도로 분개했을 때에는 소리를 지르고 폭력을 휘두르는 폭력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아빠가 새엄마를 때리는 모습, 욕지거리를 하며 싸우는 모습을 너무 자주 접했고, 자기 전에 항상 부모님 방에서 큰 소리가 들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방 밖의 상황에 귀를 기울이다가 모두가 잠든 것 같을 때 안심하며 잠이 들었다. 그래서 어릴 때의 경험과 유사하다고 지각되는 상황이나 아빠와 유사하다고 지각되는 인물을 마주했을 때 그 당시와 똑같은 불안을 경험했고, 동일한 행동을 보였다. 이 장에서는 상담을 받는 도중에 발생했던 인간관계 문제에서 내 배경으로 인해 생겨난 의사소통 패턴을 확인하고 그 패턴을 수정해나갔던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한다.   


1) 아빠라는 공포에 위축되던 어린 나에서 벗어나기


상담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보다는 상담가를 빤히 쳐다봤고, 상담가가 나에게 무언가 질문해주기를 기다렸다. 상담가는 처음에 질문을 몇 가지 던지다가, 또 정적이 찾아오자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내게 “저에게 바라는 것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당황해서 “바라는 것은 전혀 없는데요.”라고 말했고, 상담가는 “지금 뭔가 무진 씨의 역동에 제가 끌려가고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조금 당황스럽네요.”하며 웃었다. 나의 어떤 역동에 끌려갔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는 그냥 어떤 질문을 해주기를 기다렸던 것 같아요.” 그러자 상담가가 할머니에 대해서 질문을 했고, 할머니 이야기를 조금 더 하다가 상담을 마쳤다.


    나는 이번 상담을 시작하면서 매 회기 상담 일기를 썼는데, 상담가가 나의 역동에 휘둘렸다는 것이 의아해서 내가 왜 말을 하지 않고 상담가의 질문을 기다렸는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내가 지도교수님과의 의사소통에서도 교수님께서 대화의 포문을 먼저 열어 주시기를 기다리지 내가 먼저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지도교수님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하는 학생이었지, 지도교수님이 질문하시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학생이 아니었다. 상담 선생님도 교수셨고, 지도교수님보다 나이도 훨씬 많으셨기에 내가 교수님과 의사소통하는 방식이 상담가에게도 적용되었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역시나 의사소통 패턴의 뿌리는 부모님이었다.  


    아빠는 우리를 사랑했고 희생했지만 동시에 다혈질에 권위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이 지시한 대로 엄마와 자녀들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이기를 바랐고, 거절은 용인되지 않았다. 자신의 권위에 따르지 않았을 때는 불같은 분노가 떨어졌고, 나는 항상 겁먹은 쥐처럼 내 행동이 아빠의 심기를 거스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였다. 왜냐하면 엄마가 아빠의 심기를 거스를 때, 아빠가 가하던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너무나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엄마를 걱정하고 아빠를 뜯어말리면서도 동시에 이 폭력이 언제든지 나를 향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갔다.


    아빠에 대한 두려움은 바깥으로 확장되어 어른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참하고 성숙한 아이 같은 인상을 풍겼는데, 내가 그러한 가면을 장착하게 된 것 또한 아빠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장착했던 보호구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화가 나는 이유는 다양하고, 나는 그 모든 걸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장착한 다른 무기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었다. 항상 타인이 더 많은 말을 하게 했고, 좋은 경청자가 되었다. 질문을 하면 이야기를 했지만, 먼저 내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것이 내가 살아남는 방식 중 하나였던 것이다.


    집 안이 아닌 집 밖에서도 공포에 위축되어 있던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정에서 목격했던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지면 성인인 사실을 잊고 그 상황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무력한 아이로 돌아갔다. 예를 들어, 한 학회에서 여러 타대학 교수님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지고 있는 자리였다. 그때 지도교수님과 절친하다고 알고 있었던 한 교수님께서 지도교수님을 돌려서 은근히 까내리는 듯한 농담 같기도 하고 진담 같기도 한 말을 하셨다. 나는 싸움이 일어나기 전의 긴장도를 눈치채는 감각이 발달해있었기 때문에 두 교수님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알아차리고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교수님께서 내게 지도교수님의 어떤 행동을 말하며 이 행동이 별로이지 않냐고 질문하시는 것에 얼어붙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해야 이 상황이 괜찮아질지 모르겠고, 그리고 그걸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러자 그 교수님도 당황하시며 “말이 별로 없구나?”하고 넘어간 일화가 있었다. 그 행동은 내가 부모님이 다툴 때 보이던 얼어붙는 모습이었는데, 부모님의 다툼과 교수님 간의 다툼은 동일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받아들이고 동일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상담가는 과거와 현재가 동일한 것이 아니라 분리된 것이라는  알아차려야 한다고 했다. ‘거북이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이게 바로  상태라고 하셨다. 어릴 때의 경험과 유사한 순간에 내가 그때와 같은 감정이 들고, 동일한 행동 패턴을 한다는 걸 알아차리고, 과거와 현재는 다른 상황임을 인지하면서 나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나는 겁먹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의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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