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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MUZN Oct 20. 2021

3-1. 괜찮아. 넌 이제 그 공포에서 벗어났어!

1) 아빠라는 공포에 위축된 어린 나에게서 벗어나기

공포에 위축되는 나의 행동패턴에 대해 이야기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아빠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평소에 디제잉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취향이 잘 맞던 한 디제이에게 연락해 강습을 신청했다. 디제이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는데, 특히 ‘나는 ~~ 한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이야기들을 종합해 봤을 때, 디제이는 성미가 급하고 자신의 기준이 확실하고, 그 기준에 어긋나면 화를 내며 아주 단호하게 내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모두 내가 무서워했던 아빠의 모습들이었다.


    물론 그에게 다른 면모들도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아빠 유사성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내게는 그와 아빠의 유사성이 더 크게 지각되었고, 그때부터 ‘내가 잘 못하거나 버벅거리면 이 사람은 화낼 거야.’라는 편향된 사고가 생겨 디제이 앞에서 실수하게 될까 봐 불안해졌다. 왜냐하면 내게는 아빠에게 자전거를 배울 때 있었던 사건이 뇌리 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아빠가 나와 동생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던 날, 조작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자전거에서 크게 넘어지고 말았는데, 자전거가 내 키보다 높았기에 떨어지면서 온 몸으로 받아낸 물리적 충격이 너무 커 엉엉 울었다. 그러자 아빠는 무서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면서 손가락질하며 우는 게 꼴 보기 싫다고, 울지 말고 당장 일어나서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라고 윽박질렀다. 나는 그런 아빠가 더 무서워서 더 크게 울었고, 아빠는 길길이 날뛰며 분노했다.   


    디제이를 아빠와 유사하게 지각하고, 그래서 실수를 할까 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불안에 잠식되었으니 당연히 더 실수를 많이 했다. 재생 버튼을 눌러야 되는데 옆에 빈 공간을 누르곤 했다. 불안으로 인해 좁혀진 주의가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하고 부분만 겨우 보게 하였다.


   긴장되고 조급해진 마음.


   이때, 나의 편향된 예상과 다르게 디제이는 내가 조급하고 긴장되어 보였는지 친절한 목소리로 달래주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는 거 알죠? 천천히 합시다 천천히. 천천히 하면 다 돼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했다. 몇 번 계속 반복하다 보니까 감이 잡히고 점점 재밌어졌다. 실수해도 다시 하면 되니까. 한 번 더 시범을 보여 달라고 말하는 것도 불안하지 않았다.


    강습 막바지에 녹음을 하면서 음악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는데, 내가 왜 그리 긴장했던 걸까 생각을 더듬어보니 아빠와의 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사실 디제이는 내게 돈을 받고 강습을 해주는 건데, 내가 모르는 거 물어보는 거나 실수하는 걸 무서워하는 게 말이 안 되고, 그걸 잘하게 해주는 게 이 분의 역할이지 않은가. 그리고 결국 내 편견과 다르게 화를 내지 않았고, 화가 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디제이는 아빠와 다른 사람이고, 나도 그때와 다르다는 걸 한 번 더 되새겼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랬구나~ 해진아 그래서 그랬구나~ 겁먹은 어린 나를 다독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임상을 전공하는 친한 동생에게 오늘 강습하다가 느낀 걸 말해줬다. 친한 동생은 내가 그 순간순간에 일어나는 감정과 연결고리들을 잘 알아차린다며, 일상 속에서 흘러가는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의 원인을 알아차리면서 상담에서 배웠던 내용을 적용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고 격려해주었다. 상담 밖에서도 작업하는 내담자는 본인은 눈치 채지 못하더라도 효과가 큰데, 작업하는 방식 중 하나가 일기를 쓰는 거라고 한다. 상담가에게도 이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내가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그 고리를 잘 연결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담에서 배운 것을 현실에 적용한 첫 단추였다.


    나는 디제이 외에도 다른 남성들을 아빠와 분리해서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가 공포를 느꼈던 상황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과거와 현재가 다름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나를 다독였다. 나는 조금씩 겁먹은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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