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진MUZN Oct 18. 2021

3. ‘오늘의 춤’을 추자, 어제도 내일도 아닌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필립은 어려운 감정의 총체에 압도되어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괴로워한다.


'끝없는 이 영혼의 고통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 것인지, 그 자신 알 수 없었다.'


    필립의 유년시절부터 한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리기까지의 일대기를 그린 '인간의 굴레'는 인간의 삶이 '과거-현재-미래'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공연히 인간의 삶을 시간적 순서로 구분하지만, 인생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구분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과거의 연장선상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의 연장선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유년기에 겪은 일이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년기에 겪은 일들이 우리에게 크고 작은 콤플렉스를 형성하고, 그 콤플렉스가 건축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의 모양에 영향을 주며, 그 마음의 모양으로 미래를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콤플렉스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숨기고 살아간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이혼이 자신에게 콤플렉스라면 그 사실을 숨긴다던가,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나서 자신의 삶이 더 좋아졌다는 듯이 자신의 상처를 포장한다. 나는 지인이 부모님의 이혼을 이렇게 포장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엄마랑 아빠랑 따로 용돈을 줘서 너무 좋아. 용돈이 배야!’ 신체적 콤플렉스도 마찬가지다. 뱃살이 콤플렉스라면, 뱃살이 드러나는 딱 달라붙는 옷을 피하고 품이 큰 옷을 입어서 자신의 몸 선을 숨기는 방법을 택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육체적, 심리적 콤플렉스를 알고 있고, 그걸 본능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방어하며 자신을 지킨다. 하지만 인간의 굴레 속 주인공인 필립은 ‘절름발이’라는 태생적으로 벗어날 수도, 그리고 숨길 수도 없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콤플렉스를 방어하는 이유는 누군가 그 부분을 공격하는 순간 아주 큰 상처와 괴로움을 얻게 되기 때문인데, 자신의 콤플렉스를 세상에 전시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을까.


    필립이 갖고 있는 삶의 굴레(조건)는 필립의 성격을 형성하고, 구축된 성격은 매 인생의 순간에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는 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이 왜 이런 선택을 내리게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끌려 다니게 되지만, 필립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욕구를 갖고,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필립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탄생과 함께 구속될 수밖에 없었던 삶의 조건들을 이해하고, 그 조건들이 형성한 자신의 성격과 감정의 패턴을 파악하여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삶의 실천이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열쇠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 또한 필립처럼 아빠의 알콜중독이나 부모의 이혼이 콤플렉스로 작용하고 있었고, 그 콤플렉스를 방어하는 것에 급급해 이 콤플렉스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으며 나 또한 나의 굴레를 이해하고, 그 굴레의 영향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닌 진짜 자유롭게 오로지 나로서 인생의 순간들에 내가 행복한 결정을 내리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다. 내가 아는 방법 중 이를 실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상담을 받는 것이었다.




    30년도 채 되지 않는 내 짧은 인생에도 반복되는 패턴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연애였다. 사귀었던 사람들 중에 연속적으로 3명이 나와 동일한 가정적 배경을 갖고 있었는데, 바로 아버지의 알콜문제와 가정폭력이었다. 개인사를 알고 사귄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3번 연속 같은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을 사귀게 된 걸 까. 그들의 개인사가 나에게 고민거리로 부상한 이유는 그들의 과거에서 비롯된 우울감이 외도 행위를 낳았고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다를 것이라 기대하며 시작했던 마지막 연애가 그 전 연애들과 유사하게 끝나게 되었을 때, 나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혼란스러워졌다.    


    인간관계 외에도 내게는 개인적으로 반복되는 감정과 사고의 고리가 있었다.

    1) 덜 불행한 삶과 행복한 삶의 구분을 잘 모름.

    2)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함.

    3) 가장 절실하게 매달려야 하는 순간(예, 면접)에 도망치고 싶어 함.


    나는 이 세 가지 문제를 중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2020년도 7월에 다시 상담을 등록했다.


    처음 상담은 학교에서 진행해주는 무료 상담이었기 때문에, 대학원을 갓 졸업한, 젊지만 경력이 많지는 않은 상담가에게 상담을 받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외부기관의 상담을 받기로 결심했는데, 첫 번째는 내가 심리학과 대학원생이다 보니까 교내 심리학과 내에 소문이 날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경력 있고, 유명한 사람한테 받고 싶어서였다. 내가 갖고 있는 삶의 질문들을 나보다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첫 번째 상담가에게 연락을 해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상담가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친절하게도 상담가분은 5명의 전문가를 보내주셨고, 모두 슈퍼바이저급의 유명한 상담가분들이셨다. 나는 그중 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슈퍼바이저급 분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이따금, 책을 쓰고 싶어진다

오롯이 시간에 관한 책을

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지,

왜 과거와 미래가

끊임없이 하나의 현재인지에 관한 책을.

모든 사람은, 살아있던 사람은,

                  살았던 사람은

그리고 앞으로 살 사람은, 지금을 살고 있다.

소총을 분해하는 군인처럼

나는 이 주제를 샅샅이 해체하고 싶다.


- 예브게니 비노쿠르프(Yevgen Vinokurov)



    나의 글의 시작과 끝은 결국 이 시에 닿아있다. 물리적으로 나는 '지금', '현재'에 살고 있지만, 심리적으로 나는 '과거'에 살고 있었다. 과거가 과거로 끝나지 않고 현재에 끊임없이 중첩되고, 중첩된 과거가 미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의 세상은 시공간이 뒤틀려있었기에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했다. 과거의 연장선상으로 이어지는 나의 현재는 한계 이상으로 행복할 수 없었고, 한계에 부딪혀 자주 무너졌다.


    나는 그래서 소총을 분해하는 군인처럼, 나의 뒤틀린 시공간을 다시 올바르게 재건축하고, 과거라는 허깨비에 왜곡된 현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현재를 오롯이 즐길 수 있도록 이 주제를 샅샅이 해체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해체하는 방법을 모르기에, 그 과정을 동행해줄 수 있는 전문가와 함께 나의 삶을 개선해나가기로 결심하였다.




이전 07화 2-3. 뜯긴 마음의 모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