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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MUZN Nov 17. 2021

3-4. 우리는 왜 서로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1) 마음의 구멍을 채우는 연애

상담에서 꼭 다루고 싶었던 문제 중 하나는 ‘연애’였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남자친구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첫 번째가 나와 유사한 가정배경을 가졌다는 거다. 그 사람의 배경을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깊어지고 나면 나와 유사하게 이혼/재혼가정이거나 아버지의 가정폭력 속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왜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는지 궁금했다.


    첫 번째 특징이 중요한 이유는 힘든 과거를 가진 그들이 우울하다는 두 번째 패턴과 이어진다. 집이 우울했던 만큼 나 또한 우울한 성향이 있었지만, 그들의 무기력증은 나보다 심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누워있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술에 취해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아빠를 떠올리게 해서 괴로웠다. 나는 아빠와 유사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왜 자꾸만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 그리고 앞으로 또 유사한 사람을 만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마지막은 그들의 바람기였다. 그들이 양다리를 걸치는 식의 본격적인 바람을 피운 적은 없었지만, 랜덤채팅 어플을 통해 본 적도 없는 여성들과 사랑을 속삭이는 대화를 나누거나 여행지에서 만난 처음 보는 여자와 시간을 보내는 식의(내가 싫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을 보였는데, 나는 그걸 알게 되자마자 이별을 고했다.


    나는 이 반복되는 3가지 패턴이 너무 싫었고(과거 배경이 그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그래서 바람을 피는 거라고 연결지어 생각했기 때문에), 상담가에게도 이 세 가지를 모두 말하며 다음 연애에서 같은 패턴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고 싶다고 했다. 상담가는 무의식 어딘가에 서로 유사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것일 수도 있기에 무의식을 탐색해볼 수 있는데, 이 방법은 너무 긴 시간이 걸리고 어렵기 때문에 보통은 소통하는 방식에 문제가 없었는지에 대해 접근해본다고 하셨다.


“서로 소통을 잘하면, 마음속에 있는 서로의 구멍들이 채워지며 충만한 기분이 들고, 그래서 다른 짓을 할 생각이 들지 않고 자기 할 일에 집중하며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요. 하지만 소통을 잘하지 못하면 마음속에 있는 구멍들이 채워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구멍의 크기가 점점 더 크게 지각되면서 그 구멍을 바람피우거나, 술이나 도박 중독에 빠지거나, 비싼 물건을 산다거나 하는 식의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채우려고 하기 시작해요. 지난주에 저와 대화를 나누고 무진 씨가 마음이 충만해져서 행복한 한 주를 보냈다고 했죠. 연인, 친구, 가족 간에도 그런 충만한 소통을 이뤄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에요. 그래서 소통 방법에 문제가 없었을지 한번 살펴봤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 관점에서 과거의 관계를 돌이켜 봤을 때, 떠오르는 일화가 하나 있었다. S라는 남자친구와 사귈 당시에 우리는 대학에서 같은 수업을 들었는데, 그 수업은 기말고사 시험을 치르는 대신에 발표를 해야 했다. 그의 집에서 발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는 내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게 부담되었는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의자를 베개로 내리쳤다. 그 분노가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폭력적인 모습이 견디기 힘들어 얼어붙었고, 조용히 그의 집에서 빠져나왔었다. 소통이 잘 되는 커플이었다면, 나는 ‘왜 그래? 괜찮아?’라고 걱정스레 물어봤어야 했을 것이다. 혹은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져’라는 의사표현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그가 먼저 ‘사실 이러이러한 이유로 그런 모습을 보였어.’라고 말해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그 일이 서로 없었던 일처럼 묻어버렸다.


    상담가는 그 일화가 S가 내게 다 보여주지 못한 감정들이 있었고, 그래서 나와 함께 채워나가지 못했던 마음의 구멍이 존재했다는 걸 보여준다고 해석해 주었다. 그리고 나도 그 부분을 그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 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고 했다. 아마 나는 아빠의 폭력성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 일을 회피했을 것이다. 그런 구멍들이 점차 커져서 그는 바람을 피웠던 걸까. 상담가는 내가 자기 방어를 잘했기 때문에 헤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 위로해 주었다. 그와 좋은 추억들이 있었겠지만, 거기까지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고 말해주었는데, 상담가의 말이 내 마음속에서 정리되지 못한 인연을 곱게 개어 마음속 서랍에 넣어둘 수 있게끔 해주었다.


    나의 연애에 반복되는 패턴을 ‘소통’을 통해 해석해보는 것은 일부 도움이 되었지만, 완벽하게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결국 남은 것은 무의식을 탐구하는 방법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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