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더 건강한 관계를 위한 거리두기
친구와의 대화에서 내가 지양해야 할 부분이 ‘조언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리고 내가 왜 자꾸만 조언하려고 했는지도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그 부분을 조심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M 외에도 나에게 감정을 토로하는 친구(L)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자신의 힘듦을 토로하고 조언을 얻기 위해 연락이 왔다. L은 소개팅을 통해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의 불쾌한 행동들 때문에 계속 그 사람을 만날지 만나는 것을 그만둘지 고민하는 내용이었다.
예전의 나는 ‘친구에게 좋지 않은 남자’라면 친구가 만나선 안 된다고 ‘판단’했고, 친구의 현재 감정상태와 상관없이 ‘그 사람과 만나지 마.’라는 단호한 피드백을 내렸었다. 내 기준에서 그것이 그녀를 위한 방향이자 옳은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결정과 관련된 의견은 일절 제시하지 않았고, 불쾌한 일로 인해 그녀가 느꼈을 감정과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과 멀어지고 싶지는 않은 양가적인 마음으로 인해 느끼는 갈등감에 대해 ‘공감’해주었다.
과거에는 ‘왜 내 조언대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과 헤어지지 않는 걸까? 이 길이 정답인데 왜 이 길을 선택하지 않지?’라는 생각에 그녀와 대화할 때면 내 속이 답답하고 괴로웠고, 그녀도 그런 내 앞에서 괜히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져 자꾸만 작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고 그저 공감으로만 가득 찬 대화를 나눴을 때, 그녀는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고 말했고, 나 또한 조언을 하면서 그녀가 내 마음에 드는 선택을 하길 바라는 욕심을 내지 않으니 마음이 편했다.
상담가에게 이 대화에 대해 말했을 때, 이게 바로 서로 좋은 울타리를 친 거라고 했다. 친구 간에 좋은 거리감을 유지하니까 서로가 행복한 것이라며, 아주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상담가는 말했다. 당사자도 어떤 방향이 좋은 방향인지 몰라서 하지 않는 게 아니라고, 가장 최선의 해답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걸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조언을 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그런데 그 조언들이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데, 당사자들도 기분 나빠지는 이유를 모르는 채로 기분이 나빠진다고 설명해주었다.
공감하는 법을 배운 뒤, 나는 그 방법을 아주 잘 사용하고 있었고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모든 방법엔 적정선이 필요했다. 공감만 하는 것은 대화에서 상대방의 감정이 중심이 되고, 나의 욕구는 무시하게 될 수도 있는 방법이었다.
L을 카페에서 만난 날, L은 내게 5시간 동안 전 연인의 욕을 했는데,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속이 답답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 신체적 느낌을 느꼈다. 내 신체 감각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나는 황급히 화장실에 가서 안정을 취했는데, 대체 왜 이런 감각이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상황이 불편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제발 누구라도 내게 전화를 걸어서 이 자리에서 구해주기를 바랐다.
다음 주에 상담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카페에서 L과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과하게 느껴졌던 나의 신체 감각에 대해서도. 처음에 나는 L이 나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감정만 장시간 동안 토로하는 것이 괴로웠던 것이라 추론했다. 상담 선생님은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장시간 동안 힘든 얘기를 늘어놓은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지겨운 내색도 없이 진지하게 끝까지 밤이 새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는데, 그 친구가 자신을 참 좋아했었다고 말해주셨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L을 좋아하지 않는 가? 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L이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긴다고 느낄 무렵부터 나는 그녀가 버거워지긴 했지만, 그녀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좋아하는 축에 속하는 친구였다. 그녀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나의 기분을 다시 복원해 보았다.
‘L이 전 남자 친구에게 상처 받은 이야기를 할 때는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기도 했는데, 일방적으로 그를 비난하는 이야기나 자꾸만 그에 대한 애정과 미움이 섞인 모순적이 말을 할 때 너무 속이 답답하고 힘들었어요.’
‘무진 씨에게 그런 대화를 했던 사람이 또 있었나요?’
난 바로 새엄마를 떠올렸다. 새엄마. 내게 항상 아빠 욕을 하던 새엄마. 내게 아빠를 괴물로 만들어 놓고, 그래서 내가 아빠를 미워하게 해 놓고, 자신은 아빠와 사랑을 나누던 새엄마. 나는 그 모순적인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새엄마가 친엄마처럼 나를 떠나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나는 새엄마의 말을 경청하며 다 들어주었다. L의 모순적인 마음을 경청하려고 노력했던 그날처럼 말이다.
상담가는 아마 새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내 속이 답답하고 불쾌하고 힘들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참았을 거라고. 그런데 그 응어리진 마음과 유사한 상황에 처하게 되니까 그때의 역동이 울컥 솟아올랐던 것이었다.
상담가는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지금 너의 이야기가 불편해. 네가 지금 전 남자 친구를 그리워하는 건지, 미워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혼란스럽고 힘들어. 다른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
I-message('나'전달법)로 상대방에게 나의 감정과 상태를 전달하면, 상대방도 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상대방이 계속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고 싶어 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면 관성처럼 계속 습관대로 돌아가려고 할 수 있는데, 그럴 때면 계속 나의 불편함을 알리라고 했다. 친구와의 관계에서 공감이 좋은 의사소통 방식이지만, 나의 감정과 욕구를 포기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걸 배우게 된 것이었다.
'공감'하는 것도,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도 모두 나에게 필요한 의사소통 방식이었다. 그 뒤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공감과, 내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두기를 하면서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방식을 배워나갈 수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밀어내는 거리두기가 아니라, 우리가 더 건강한 관계가 되기 위한 길이었다. 불교에서는 타인과 ‘쇠뿔만큼의 거리감’을 유지하라고 조언하는데, ‘쇠뿔만큼의 거리감’을 터득할 수 있었던 일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