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집중을 “못 하는 사람”으로 설명되곤 했다.
주의가 산만한 사람, 마음이 떠다니는 사람, 가만히 못 있는 사람.
그런데 내 하루는
항상 흩어지기만 하는 방식으로 망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날은
한 곳에 너무 깊게 빠져버려서
다른 것들이 전부 사라지는 방식으로 무너졌다.
그게 더 무서웠다.
나는 “집중이 안 된다”는 말을 믿었다.
그래서 늘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은 제발 좀 집중하자.
오늘은 제발 정상적으로 굴러가자.
오늘은 제발… 나답게 살자.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원했던 곳에는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해야 하는 일, 중요한 일, 급한 일.
그런 것들은 늘 내 앞에 있었지만
마치 투명한 벽이 있는 것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대신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붙잡혔다.
어떤 글의 문장 하나.
사소한 정보 하나.
갑자기 꽂힌 검색어 하나.
정리되지 않은 생각 하나.
그 작은 것들이
내 하루 전체를 가져가 버렸다.
처음엔 그게 재능처럼 보이기도 했다.
“몰입 잘하네.”
“집중하면 진짜 잘하네.”
“할 때는 확실히 한다.”
그런 말들은 나를 잠깐 안심시켰다.
아, 나는 문제 없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나는 하면 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결국 해내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몰입의 끝에서
나는 자주 무너졌다.
정작 해야 할 일을 하나도 못 하고,
시간이 사라져 있고,
몸은 지쳐 있고,
머리는 뜨거워져 있었다.
가끔은 물도 마시지 않았고
밥도 잊어버렸고
약속도 놓쳤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건 “집중”이 아니라
“잠김”이었다는 걸.
나는 멈추는 법을 잘 몰랐다.
해야 할 일을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시작해버린 뒤 멈추는 건 더 어려웠다.
누군가가 말을 걸면 짜증이 났고,
전화가 오면 피곤했고,
밥 먹자는 말조차 부담스러웠다.
나도 내가 이상한 걸 알았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그냥… 빠져 있었다.
세상과 연결된 끈이 끊어진 것처럼,
내 안으로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날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왜 꾸준하지가 않아?”
“한 번에 너무 열심히 하고, 또 왜 쉬어?”
“적당히 해야지.”
나도 알고 있었다.
적당히 해야 한다는 걸.
적당히 살면 덜 힘들다는 걸.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적당함이 잘 안 됐다.
0 아니면 100이었다.
아예 못 하거나,
아예 다 써버리거나.
그리고 100을 쓰고 나면
나는 며칠 동안 0이 됐다.
그때 나는
내가 정말 망가진 사람 같았다.
사람들은 잠깐 열심히 한 걸 칭찬하지만
그 뒤에 무너지는 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남는 건
칭찬이 아니라 낙인이었다.
“쟤는 들쭉날쭉해.”
“감정이 너무 왔다 갔다 해.”
“책임감이 없어.”
나는 그 낙인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반박하는 대신, 숨었다.
그런데 정신과에서 들은 말은
내가 상상하던 진단보다 더 현실적이었다.
“집중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집중 조절이 어려운 거예요.”
그 말은 단순히
“너는 ADHD야”라는 판정이 아니었다.
내 하루가 왜 이렇게 무너지는지,
내 삶이 왜 ‘균형’이 어려운지,
그 구조를 설명하는 말이었다.
집중이라는 건
단지 오래 하는 능력이 아니라
켜고, 끄고, 옮기고, 멈추는 능력이었다.
나는 그 기능이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나는 조금 덜 수치스러워졌다.
나는 게으른 게 아니라
내 브레이크가 약한 사람이었고,
나는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내 페달이 너무 깊게 눌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멈추는 연습을 한다.
대단한 방법은 아니다.
내가 빠질 것 같은 순간
작게라도 끊어주는 것.
타이머를 맞추고,
물 한 컵을 마시고,
잠깐 창문을 열고,
몸을 한 번 일으키는 것.
‘완벽한 집중’이 아니라
‘중간의 쉼표’를 만드는 것.
내가 나를 다시 현실로 데려오는 것.
그게 내 하루를 살린다.
가끔은 여전히 실패한다.
또 빠지고, 또 잃고, 또 무너진다.
그럴 때 나는
예전처럼 나를 벌주고 싶어지지만,
나는 그 대신 이렇게 말해본다.
“오늘도 나는 멈추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내가 무너진 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조절이 어려워서다.”
나는 아직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수 있다.
설명이 생긴 사람은
조금 더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