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게으른 게 아니었는데, 늘 그렇게 불렸다

by 새벽

나는 “게으르다”라는 말에 꽤 오래 길들여진 사람이다.
누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먼저 그렇게 말해버리는 사람.

해야 할 일은 늘 있었다.
머릿속에서도 계속 떠올랐다.
그런데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지금 해야 하는데.
지금 하면 더 편한데.
지금 움직이면 오늘이 덜 무너지는데.

그런데도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걸 의지 부족이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성격 문제라고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꾸준하지 못해?”
“계획만 세우고 실천을 안 해.”
“시작은 하는데 끝을 못 보네.”

나는 그 말들을 반박할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그랬으니까.

문제는,
그 ‘겉’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었다.
내 안에서는 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리를 때렸고,
해야 하는데 못 하는 나는 나를 계속 깎아내렸다.
결국 밤이 되면 지쳤다.
몸을 움직인 적도 없는데,
마음이 먼저 닳아버린 날들이 많았다.

가끔은 이런 날도 있었다.
낮에는 아무것도 못 했는데,
새벽이 되면 갑자기 손이 움직이는 날.

불이 꺼져야 집중이 시작되는 것 같은 날.
세상이 조용해져야 내 머리도 조용해지는 날.

그때의 나는 너무 자연스럽게 흐르다가도,
문득 다시 멈춰버렸다.

그래서 나는 늘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왜 이럴까?”

그리고 늘 같은 결론으로 도착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가 봐.”
“나는 꾸준하지 못한 사람인가 봐.”
“나는 게으른 사람인가 봐.”

그 결론은 쉬웠지만 잔인했다.
설명은 없고, 비난만 남으니까.

그래서 나는 더 많은 걸 숨겼다.
대신 더 멀쩡한 척을 했다.

해야 할 일을 미뤄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사람을 만났다.
약속을 잡고, 웃고, 잘 지내는 척을 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내가 숨겼던 것들이 한꺼번에 덮쳤다.

밀린 일.
어지러운 방.
지키지 못한 약속.
깨어 있는 시간.
무너진 자존감.

그리고 그 사이에 가장 크게 남는 한 문장.

“내가 문제다.”

이 말은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망가뜨린다.
왜냐하면 “나”는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탓하기 시작하면,
나는 24시간 내 옆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된다.

나는 그 시간을 꽤 오래 살았다.

그런데 정신과에서 처음으로 들은 말이 있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실행 기능의 문제일 수 있어요.”

그 말은 한 번에 나를 구해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삶에 처음으로
‘설명’이라는 걸 만들어줬다.

게으름은 인격의 문제처럼 들리지만,
실행 기능은 시스템의 문제처럼 들렸다.

나는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의지가 작동하기까지 과정이 더 복잡한 사람일 수 있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얻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못 한 일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왜 못 했지?”가 아니라
“어디서 막혔지?”로.

“왜 이렇게 한심하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무너졌지?”로.

그러자 미뤄둔 일들이
나의 게으름 증거가 아니라
내가 버티며 살아온 흔적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미룬다.
여전히 늦는다.
여전히 하루를 망칠 때가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예전엔 내가 나를 심판했지만,
이제는 내가 나를 관찰한다.
그리고 관찰은, 생각보다 사람을 살린다.

나는 요즘
“나는 게으르다”는 말 대신
이렇게 말해보려고 한다.

“나는 지금 멈춰있다.”
“그리고 멈춘 나에게 필요한 건 벌이 아니라, 방법이다.”

이전 01화00화. 나는 약해진 게 아니라, 나를 살리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