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정신과에 다닌다고 말하지 못했던 이유

by 새벽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치료”를 배운 게 아니었다.

숨기는 법부터 배웠다. 병원에 간다는 말은
생각보다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오늘 병원 다녀왔어.” 그 한 문장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나도 이상할 정도였다.

그저 진료 하나 받는 건데, 그저 내 몸을 돌보는 것처럼 마음을 돌보는 건데. 그런데 정신과는 다른 병원과 달랐다.

감기 걸리면 “감기네” 하고 말할 수 있다. 치과 예약은 누구나 당당하다. 피부과는 오히려 관리처럼 말해도 된다.

그런데 정신과는 이상하게 숨겨야만 하는 것이 된다.
왜일까. 아마 사람들은 아직도 정신과를 치료가 아니라 “낙인”으로 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신과에 간다는 말은 내가 “정상”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처럼 들린다. 마치 한 번 발을 들이면 다시는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것처럼.

그래서 나는 말하지 못했다. 말하는 순간,
사람들이 나를 다른 눈으로 볼까 봐.

나는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주는 것보다 그 걱정 뒤에 따라오는 표정이 더 무서웠다.

“어… 그래?” “많이 힘들었구나…” 그 다음에 잠깐 멈칫하는 순간. 그 멈칫은 말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나는 너무 잘 읽을 수 있었다.

아, 이 사람도 나를 조금은 다르게 보겠구나. 나는 그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정신과에 다닌다는 말은 사람들 안에서 너무 많은 의미로 변형된다.

누군가에겐 “불안정한 사람”이 되고, 누군가에겐 “예민한 사람”이 되고, 누군가에겐 “관리 안 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나는 나를 설명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나를 정의해버리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더 완벽해지려고 했다.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티 내지 않기 위해서, 불안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 나는 멀쩡한 척을 했다.

그 척이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면서. 웃고, 맞장구치고, 일을 해내고, 괜찮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내가 끌어올린 에너지가
바닥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정신과를 다니는 게 힘든 게 아니다. 정신과를 다니면서도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게 힘들다.

나는 어느 날 약을 챙겨 먹는 내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왜 숨겨야 하지? 혈압약은 숨기지 않는다.
당뇨약도 숨기지 않는다. 잠을 못 자서 수면을 돕는 약도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내 삶을 지탱하는 약은
왜 숨겨야 하는 걸까.

그 질문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너 그 정도면 멀쩡해 보이는데?”
“정신과까지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스트레스 아니야?”

그 말들은 겉으로는 가볍지만 내 마음에는 무겁게 떨어졌다.

그 말 속에는 이런 뜻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네가 아픈 게 확실해질 때까지 참아봐.”“너 자신이 망가진 증거가 더 필요해.” “정상처럼 보이니까, 너는 아직 도움을 받으면 안 돼.”

하지만 나는 알았다. 정말 위험한 건 무너진 뒤에 치료받는 게 아니라, 무너지기 전에 버티다 버티다

아예 돌아오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는 거. 정신과는
끝나고 나서 가는 곳이 아니라 끝나기 전에 가는 곳이어야 한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배울 뻔했다. 나는 아직도
다 말하지는 못한다.

상황을 보고, 사람을 보고, 내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범위를 계산한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건 하나 있다. 나는 더 이상
정신과에 다닌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나를 살리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책임이기 때문이다.

치료는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나를 덜 미워하게 만들었다.

그게 내가 얻은 가장 큰 변화다. 예전에는 “정신과에 다닌다”는 말이 나를 작게 만들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말은 내가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내가 내 삶을 다시 붙잡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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