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정신과에 가는 사람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늘 한쪽으로만 생각한다. 무너진 사람. 망가진 사람. 감당 못해서 도망친 사람.
그래서 나는 한동안, 그 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들어가면 내 인생이 끝날 것 같아서. 밖으로 나오면 나는 더 이상 “정상”이 아닐 것 같아서.
사실 나는 끝나지 않았다.끝나가고 있었을 뿐이다.
하루를 시작하면 할 일이 분명히 있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해야 할 것들이 머릿속에서 소리만 커지고, 몸은 더 굳어졌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싶은데, 그 마음만으로는 하루가 굴러가지 않는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나는 나를 더 미워했다. “왜 이 정도도 못 하지?”“왜 자꾸 미루지?”“왜 나는 이렇게 의지가 없지?”
나는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불렀다.
철이 없다고 불렀다. 약하다고 불렀다. 하지만 정말 이상했던 건, 나는 언제나 “할 수 있는 순간”도 있었다는 거였다.
가끔은 밤새도록 무언가에 빠져들기도 했고, 가끔은 말도 안 되게 에너지가 솟아오르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사람들 눈에 꽤 괜찮아 보였을지도 모른다.
뭔가를 해낼 것 같은 사람. 밝은 사람. 강한 사람. 그런데 그 밝음이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날은 이상할 정도로 가벼워졌다가, 어느 날은 이유 없이 깊어졌다. 어느 날은 말이 많아졌다가,어느 날은 아무것도 삼킬 수 없었다.
내 감정은 자주 너무 빨리 변했고,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느라 지쳤다. 사람들은 기분이 왜 그러냐고 물었고,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못 했다.
나도 모르니까.그게 가장 무서웠다. 내가 나를 모른다는 사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괜찮아지고 싶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괜찮음이 아니라, 내가 나를 덜 미워하는 괜찮음. 내가 내 하루를 책임질 수 있는 괜찮음.
그런데 이 사회는, 정신과에 가는 순간 그 소망을 한 번 더 의심하게 만든다.
“너 그 정도면 멀쩡한 거 아니야?”“약은 너무 이르지 않아?”“마음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정신과 다니는 거 남들한테 말하지 마.” 나는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마치 내가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아픈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하고,아픈 거라면 참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티 나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내가 제일 잘 숨기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늘 멀쩡한 척을 잘했다. 정상인 척을 잘했다.
괜찮은 척을 잘했다.
그 척들은 조금씩 나를 갈아먹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끝나지 않기 위해” 정신과로 갔다. 그곳은 내가 상상하던 곳과 달랐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감정”으로만 듣지 않는 곳이었다.
게으름이 아니라 패턴을,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을,
성격이 아니라 증상을 하나씩 분리해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처음으로, 내 삶에 설명을 얻기 시작했다.
나는 ADHD가 있다. 그리고 혼재성 삽화도 겪는다.이 말은 나를 규정하려는 말이 아니다. 나를 해방시키는 말에 더 가깝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가 붙잡고 있던 죄책감의 대부분이
“내가 문제라서”가 아니라 “내가 이해되지 않아서” 생긴 것들이었으니까.
나는 누구보다 진심이었고,누구보다 노력했는데,
자꾸만 똑같은 자리에서 넘어지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
그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혼자였다는 걸 알아서.
이 연재는 그 혼자였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내가 조금씩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글은 “정신과를 추천하는 글”이 아니다.
대신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정신과는 망가진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의 마지막 자존심이 가는 곳일 수 있다고.
약을 먹는 건 약해지는 일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다리를 하나 더 세우는 일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무서운 건 병이 아니라 설명 없는 고통이라는 걸.
나는 아직 완벽히 괜찮아지지 않았다.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내가 왜 무너지는지 알고,어떻게 다시 일어날지 배운다.
내가 나를 벌주지 않는 방법을, 오늘도 연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