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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롱 May 14. 2023

이불집

꾀꼬리 같은 당신의 목소리

당신을 다시 만난 건 우연이었지요. 이불집이었어요. 당신은 이불을 찾고 있었고 나는 커튼을 하고 싶어 몇 마디 물어볼 참으로 커다란 이불가게에 들어섰지요.

우리가 반갑게 만난 것은 틀림이 없고 서로가 좋은 감정만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우리는 왜 그리 볼일을 보기가 무섭게 작별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인사나 제대로 했었는지 기억도 불확실한걸요.


이불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난 당신을 떠올려요.

이제는 이불가게를 지나칠 리 없는 당신의 최근 소식을 알기에 그날의 무심한 인사가 더 후회가 돼요.

당신은 유난히 목소리가 아릅답죠. 그뿐인가요? 당신은 다른 사람의 말을 다 들어주는 능력이 탁월하지요. 당신은 알고 있을까요? 당신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언제나  다시 한번 반드시, 읊어주는 습관이 있어요.

대화의 기술에서는 그것을 그렇구나! 법칙이라 부르더라고요.

"지난 일요일 너무 속상했었답니다."

"지난 일요일 많이 속상했군요."라고 제 말을 다시 읊어주고 귀를 쫑긋 하며 들을 준비가 됐다고 말하죠.

누군가 그래야 한다고 일러주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한마디 한마디 모든 사람의 말을 그렇게 듣고, 다시 말해주는 습관은 놀라워요.

당신은 섣불리 조언하거나 가르치지 않아요. 그저, 그렇군요.라고 응수할 뿐인데 말하는 사람은 모두 나처럼 당신의 매력에 흠뻑 빠져 당신에게 털어놓기를 좋아했어요.


게다가 당신의 목소리는 무심코 정신을 놓고 있다가 들으면 잠이 달아날 정도로 청아해요.

나는 목소리가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놀랐었어요.

크지도 않건만 주변의 소음을 잠재우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아주 묘한 매력이 있어요.


그런 당신을 이불집에서 잠깐 만난 것은 십 년을 훌쩍 뛰어넘어 정말 특별한 일이었는데, 왜 그리 빨리 가게를 나왔는지 의아하기가 이를 데 없어요.


아직도 당신의 목소리를 기억해요.

그리고 그렇군요! 하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미소 짓던 모습도 그대로 남아있죠.

당신을 붙들고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할 말이 가득한 건 여전한데, 그래서 당신의 그렇군요! 가 위로가 될 일은 차고 넘치는데 왜 당신의 전화번호를 묻지도 않았을까요?

다음 만남을 기약하지도 않았을까요? 대체!


당신은 기억이나 할까요? 이런 나를, 그날을 되돌리고 싶은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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