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카롱 Jun 23. 2023

주택살이

신중하고 침착한 그녀

" 안 살림도 힘든데  왜 바깥 살림까지 하려고 하세요?" 바로 딱! 그 말이었다.

내 집찾기 빈 걸음들을 멈추게한 말은.


몇 년 전 이사를 하고 싶어 2년 가까이 서울의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었다. 낡을 대로 낡아서 수리를 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주차문제로 아침마다 자는 이를 깨워 내보내야 하는 좁은 주차장이 나를 길로 내몰았다. 살고 싶은 동네 찾기에 일 이년을 꼬박 공들여 발품을 팔았다. 제일 먼저의 조건이 자금! 대출과 세를 끼고서라도 주택에 살고 싶었다. 집의 한쪽 끝에서 한쪽 끝이 훤하게 내보이는 단조로운 공간이 싫었고 주차문제가 싫었고 무엇보다 단지를 둘러싼 담도 싫었다. 나름 그 집은 공원을 끼고 있었고 작은 방 하나에서는 산의 형세가 기가 막혔다. 겨울의 스산함대신 맑은 하늘을 이고 있던 그 산을 방 창문으로 본 어느 해 12월, 나는 보자마자 가계약을 해서 식구들을 당황하게 했었다.


그렇게 사랑해마지 않던 집이었으나 주차장문제로 골머리를 안고 해를 더할수록 낡아오는 집에 큰 결심을 하고 이곳저곳을 돌았다.


식구들은 교통문제를 제일로 삼았지만 일터가 늘 집 주변이던 내게 교통문제는 뒷전이었다. 내가 제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걷고 싶은 길이 있는 동네를 찾는 일이었다. 일자로 늘어선 아파트가 참 싫었다. 단지를 폐쇄적으로 만들고 담과 담사이만 걷는 아파트단지가 만든 골목이 아닌 경사도 좀 있고 남의 집 담장너머 텃밭도 보이는 동네를 찾아 개발이 덜 된 동네만을 찾아다녔으니 집값을 운운하는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집 안의 시설보다 동네가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이 내가 파리를 좋아하는 이유란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오래돼서 낡고 불편한 집안보다 사회적 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외부의 아름다운 시설들유하는 파리의 길과 카페가 내게는 더 매혹적인 것이다.

어찌 되었건 우이동의 낡은 빌라단지마을-이 동네 진짜 기가 막힌데, 교통이 어렵긴 하다. 딱 50평씩 나눠지은 주택형 빌라에는 오래된 이웃들이 살고 있고 집집마다 아름다운 정원을 잘 가꾸고 있었다. 정릉의 교수마을도 가보았다. 동네에서 자치적으로 마을을 가꾸고 집마당을 개방하는 행사를 만들 정도로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매물로 나온 집이 내 예산으로는 턱없었고 예산 안에 든 집은 터널 코 앞인 데다가 조금 외져있고 집 자체가 덜 매력적이었다. 성북동 언저리에도 가보았다. 내가 볼 수 는 집은 경사진 길 끝위치한 땅콩주택이었는데 집을 보는 날 진눈깨비가 발걸음을 방해해서 간신히 걸어 내려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산동과 약수동도 가보았다. 역시 금액이 문제다. 내가 감당할 집은 경사의 끝에 방하나하나를 이어 붙인 듯 조악한 감이 들어야만 했다. 나중에 필동에도 가보았다. 오래된 라이프아파트-남산이 가깝다는 이유하나-는 식구들의 손사래에 접어두고 남산 한옥마을을 면한 -건너뛰면 될 듯 가까운-다세대주택을 보러 가보았는데 역시 공용주차장을 한 참 걸어 나와야 되는 뒷골목 집이었다. 외관만 보고는 그냥 돌아 나온 것은 그 집에서 걸어 나온 이의 험악한 인상? 덕?이었다. 다른 가족들과 함께 얽혀갈 생활이 두렵게 느껴졌다.


이 모든 노력을 상세히 말하지도 않고, 단지 "주택에 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그녀가 건넨 말

" 안 살림도 힘든데  왜 바깥 살림까지 하려고 하세요?"


그 순간 어머니의 만류나 가족들의 부정적인 모든 견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콕 들어왔다. 주택살이는 쉬운 게 아니라는, 구구절절이 계절별 해야 할 일들의 나열 또는 출근길 돌아보고 살펴야 하는 여러 개의 문 잠금장치들에 대한 충고의 말보다 간결하고 힘이 있는 말!

짧은 말에 실린 위엄이랄까!


그녀는 평소, 소리가 아닌 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그렇게 신중하다.

여간해선 목소리를 높이는 적도 서두르는 몸짓도 없는 진중한 그녀가 내게 한 그 말은 그녀를 기억하는 가장 큰 매개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날 이후 나는 주택으로의 이사를 단번에 접게 되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만난 이 아파트집에 만족한다. 동남향이라 떠오르는 해를 보는 일이 매우 즐겁다. 앞이 트여있고 뒤로도 산을 볼 수 있어 여러모로 만족한다.


해야 할 말이 있을  고개를 잠시 아래로 떨구었다가 입꼬리를 올리며ㅡ각오를 했다는 의미ㅡ 미소를 장착하고 나지막이 건네는 그녀의 말은 늘 힘이 있다.


"안 살림도 힘든데 왜 바깥 살림까지 하려고 하세요?"



이전 10화 이불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