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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롱 May 13. 2023

개명

개명으로 완성한 소설같은 인생

그녀가 선택한 노래는 '나 어떡해'

산울림의 둘째 김창훈 씨가 작사인지 작곡인지를 했다는 그 유명한 노래 '나 어떡해'였다. 

컴컴한 어둠 속에 양손으로 움켜쥔 마이크는 고음에 따라 몇 번을 오르고 내렸다. 


다정했던 네가

상냥했던 네가

그럴 수 있나


나 어떡해 

너 갑자기 떠나가면

그건 안돼

정말 안돼 

가지 마라

누구 몰래 다짐했던 비밀이 있었나 

아~~~~

에 이르러 노래방책을 뒤적이던 동료들은 모두 일어나 떼창으로 그녀를 연호했다.


못 믿겠어

떠난다는 그 말을

안 듣겠어

안녕이란 그 말을


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에 이르러서는 모두 불콰해진 얼굴로 제각각의 방향으로 몸을 틀고, 목을 꺾었다.

노랫말은 빌미였다.

이제 마이크에 실린 그녀의 목소리는 동료들의 떼창에 덮히고 묻혔다.

모두가 노랫말에 자신의 우주에서 벌어진 걱정과 한탄과 비애를 소환하여 절절하게 불러 제꼈다.

사이키조명이 돌아가는 작은 방에는 서로의 우주가 부딪히고 엉키어 새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를 생각하면 한 사람의 우주가 따로 존재함을 느끼고 또한 상상한다.


이제 그녀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 한적한 시골 작은 슈퍼에 앉아있다. 하루 몇차례 지나가는 버스는 그녀가 내다보는 창밖의 유일한 흥미거리였다. 길 반대편에 펼쳐진 논에 자라고 영그는 벼는 그녀에게 관심밖이었다. 가끔씩 먹구름이 내려앉거나 비가 쏟아지는 것조차 그녀는 심드렁해한다.

버스가 서있는 사람까지 만석인 날은 일년 하루도 없었다.

그래도 그녀의 유일한 낙은 지나는 버스에 모처럼 차려입고 나서는 이웃들의 모습을 내다보는 일이었다.

가게에 사람이 들끓는 일은 없었다. 이웃의 아이들 몇이 몰려 과자나 사러와야 적막속 상상은 잠시 멈춰졌다.

이웃의 라면값이나 담뱃갑을 계산하다가도 사람이 뜸하면 구겨져 나뒹구는 포장지에 모나미 볼펜으로 낙서를 한다. 창에 내려앉은 먼지와 지나가는 낡은 버스를 바라보며 무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자신의 우주를 만들었을, 심심한 그녀는 20대 초반이다.

그녀는 도시를 꿈 꾼다.


다시 그녀

결연히 떠나 시작한 도시생활에서 그녀는 그야말로 소설 같은 사랑을 한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 그녀의 사랑이야기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은 이제 파마로 구불거리고 그녀는 행복한 얼굴로 꺄르르 웃기도한다.

목숨을 건 사랑은 다른 결말, 사나운 이별이 찾아온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은 이제 춤추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녀

또 새롭고도 뜨거운 사랑을 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그녀는 이제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새로운 우주가 필요하다.


개명


그녀는 개명을 통해 새로운 우주를 열었다.

개명한 그녀가 선택한 노래,


나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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