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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몸은 자는데, 위장은 야근 중입니다”

– 저녁식사가 건강을 망치는 다섯 가지 이유

by 유찬규

“그냥 저녁 한 끼 좀 많이 먹은 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요?”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 잔 날, 다음 날 속이 불편하거나 몸이 무겁다고 느끼면서도, 그게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는 분은 드뭅니다.

“전날에 뭘 먹었는가”보다는 “요즘 스트레스 때문인가?”,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문제는 ‘무엇을 먹었는가’보다 ‘언제 먹었느냐’입니다.”


저녁 식사는 하루의 하이라이트가 아닙니다

현대인의 하루는 역설적입니다.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아침엔 식사를 건너뛰고,

가장 피곤하고 쉬어야 할 저녁엔 오히려 가장 푸짐하게 먹습니다.


저녁은 하루 중 우리가 가장 긴장을 푸는 시간이기도 하죠.

가족과 식탁에 앉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때로는 맥주 한 캔이나 라면 한 그릇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몸이 이 시간대에 그 어떤 음식도 반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위장은 낮에 일하고, 밤에는 쉬어야 합니다

우리 몸은 놀랍도록 정교한 생체시계를 갖고 있습니다.

위장과 췌장, 간과 장은 낮 동안 활발하게 소화와 대사를 담당하고,

밤이 되면 그 기능을 천천히 ‘절전 모드’로 전환시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밤 9시나 10시에 고기, 국물, 탄수화물이 가득한 식사를 한다면?

쉴 준비를 하던 소화기관들이 갑작스럽게 소환당합니다.

위장은 펌프질을 하고, 췌장은 인슐린과 소화효소를 쏟아냅니다.

마치 퇴근한 직장인을 다시 불러 회의시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결국, 우리 몸은 자고 있지만 소화기관은 야근을 하고 있게 되는 셈입니다.


수면 중에도 위장은 ‘과로’ 중

이처럼 늦은 시간의 과식은 단지 위장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수면의 질까지 직접적으로 떨어뜨립니다.


우리 몸은 잠든 동안 세포를 재생하고, 면역 시스템을 조율하고, 뇌를 정리합니다.

하지만 소화에 에너지를 쓰고 있는 상태에서는 깊은 수면 단계로 진입하기 어렵습니다.

잠은 잤지만 피곤한 아침, 깨고 나서도 잔 것 같지 않은 느낌…

이 모든 게 저녁 한 끼의 ‘야근’ 때문일 수 있습니다.


매일 밤 반복되는 ‘야근 지시’

사실 문제는 하루의 한 끼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이 ‘매일’이라는 것입니다.


“저녁에 한 끼 정도 괜찮잖아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 끼가 매일 반복되면, 그건 습관이자 패턴이 됩니다.

그리고 이 패턴은 결국 위장기능의 만성 피로, 췌장의 과부하, 대사의 혼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오늘부터의 작은 전환

우리가 매일 밤 푸짐한 저녁을 먹는 이유는 단순한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습관이 그렇고, 가족의 식사 시간도 그렇고, 하루 중 유일하게 여유가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를 위해’, 그리고 ‘내 몸의 내일을 위해’

식사량을 줄이고, 식사 시간을 앞당기는 작은 시도는 분명 큰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매일 진료실에서 이 변화를 눈으로 목격합니다.

저녁 식사 시간을 1~2시간만 앞당기고, 양을 줄인 분들이

며칠 만에 소화가 편해지고, 수면이 깊어졌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을요.


지금 우리 몸에게 필요한 건 ‘퇴근 시간 보장’

하루를 마무리할 때, 이렇게 자문해보면 어떨까요?


“내 위장은 지금 퇴근할 준비가 되었는가?”


“오늘도 야근시키지 않을 수 있는가?”


몸의 회복은 거창한 약이나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이런 작고 일상적인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마무리하며

저녁을 많이 먹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 타이밍이 잘못되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쉴 때, 몸도 함께 쉴 수 있어야 진짜 회복이 시작됩니다.


저녁을 일찍, 가볍게.

몸에게도 ‘퇴근’을 허락해주세요.


#저녁소식 #공복수면 #생체리듬 #대사건강 #위장휴식 #건강습관


이 글은 『저녁을 줄이고 건강을 되찾다』(교보문고 퍼플) 중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전체 이야기는 책에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407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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