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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봉 May 17. 2022

육아하며 엄마가 그리운 날

엄마만큼 살기도 어렵다

“엄마는 매일 혼내기만 하고......”


“내가 너 밥도 챙겨주지, 빨래도 해 주지, 아침에 깨워주지, 해 주는 게 얼마나 많은데.”


말을 하면서도 내가 참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큰딸이 중학교 2학년 때 나와한 대화이다. 그때 큰딸은 사춘기의 문턱을 들어서는지 삐딱선을 자주 탔다. 도무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행동들을 했다.


식탁 주변이 우리 집에서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곳이다. 그래서 자주 식탁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스마트폰에 푹 빠져서, 여자아이여서 그런지 게임은 하지 않는데,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덕질을 했다.


“핸드폰 좀 그만해.”


내가 소리를 치면 그제야 못 이기는 척 식탁 의자를 질질 끌며 일어서선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더운데 문을 꽉 닫고 방에서 뭐 하는 것일까?’


궁금증을 못 참고 노크를 하며, 문을 열어보면 책상 위에 종이가 너저분하고, 딸은 뭔가 열심히 오리고 있었다. 새벽 2시까지 딸의 방에선 불빛이 새어 나왔다.


‘아휴~ 저 애는 아직도 잠을 안 자고, 정말 맘에 안 들어.’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딸을 깨우러 갔더니 세상에!


방문을 열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가득 찬 아이돌 가수의 사진이었다. 빽빽하게 사진과 사인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엄마에게 큰딸과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너도 다 그렇게 컸다. 그걸 알면 어른이지 아이겠냐?”


항상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다. 부처님이다.


엄마는 터울 없이 딸 셋을 기른다고 그 시절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그제야 그 마음을 조금 알았다. 나는 터울이 많아서 한꺼번에 전쟁을 치를 일이 없는데도 큰딸이 사춘기에 접어들고서는 뒷목이 뻣뻣해져 오는 일들이 자주 생겼다. 머리로는 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지.’, ‘사춘기니까.’, ‘성장호르몬 때문에 그런 거야.’ 하며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았다.


딸은 초등학교 때까지 스스로 뭐든 척척 알아서 잘하는 소위 엄친 딸이었다. 배려심도 깊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여름부터 갑자기 달라졌다. 북한도 무서워서 못 쳐들어온다는 중2가 되자 나는 눈앞이 깜깜, 머리가 하얘졌다. 그 아이가 고3인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인 내가 그 당시 적응을 못하고 헤맸던 것은 아니었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이럴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 친정엄마다.


‘나도 그때 저랬을까?’


희미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도 고등학교 때쯤 사춘기를 겪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툭툭 말을 내던졌고, 내가 알아서 다 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주 까칠했다.


나와 동생들이 해 달라고 조르고, 짜증을 내도 엄마는 항상 받아주셨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단 한 번도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으셨고, 큰 소리도 내지 않으셨고, 더 잘해 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셨다.


그 당시에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싫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자식들에게 온전히 당신의 삶을 받치고 사셨다. 그래서 나는 절대 엄마처럼 자식에게 인생을 희생하며 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컸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보니까, 우리 엄마만큼 살기도 참 어려운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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