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에 진심을 담은 감사 식사. 우리 부부가 지불한 중매비다.
남편과 나는 소개로 결혼했다. 내 대학 선배와 그의 남편이 주선한 소개팅이었다. 평소 확고한 스타일을 주장해온 덕에 그 언니는 배우자 회사의 신입사원 얘기를 듣자마자 나를 떠올렸다고 한다. 입사 두 달 만에 그 신입 사원은 회사 차장님 주선의 소개팅을 받게 됐다. 대학교 졸업도 썸을 타는 중간에 했다. 당시 나는 5년 차 회사원. 친구들이 나보고 도둑년이란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너희 다 루저!
보자마자 '아 사귀면 결혼하겠구나'를 직감했다. 역시나 혼인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이듬해 봄 결혼식을 하고 지금은 아이까지 낳아 잘살고 있다. 결혼하니 새로운 행복의 지평이 열렸다.
결혼할 상대를 찾았을 때의 기쁨과 안도감은 이전까지 연애와는 전혀 다르다. 머리에서 종이 울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마음 깊은 곳에 감춰뒀던 사랑이 뛰쳐나와 '너구나!'하고 꼭 안아주는 느낌이다. 식상한 말로 '반쪽'을 찾은 거다.
반쪽을 찾아 준 사례는 사람마다 다르게 책정할 수 있다. 금액이야 자기 사정에 따라 정하면 되는 거다. 중요한 건 감사의 마음이다. 결혼생활이 다 행복한 건 아니라고 하지만 어쨌든 인생의 큰 숙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준 사람들 아닌가.
중매 보수를 정하기가 어렵다면 결혼정보회사의 회원 가입비를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5~6년 전에 들은 바로는 소개팅 10회에 400만원 정도라고 했다. 회당 40만원꼴. 성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최소한 40만원은 챙겨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사람들이야 데이터베이스도, 인력풀도 많으니 찾기가 더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일반인들이 해주는 소개팅이 성혼으로 이어질 확률은 그만큼 더 어렵단 얘기다.
얼마 전 지인 한 명이 결혼한다고 약 1년 만에 연락이 왔다. 같은 지역에서 유학도 하고 나이도 비슷, 일하는 곳도 가까워 꽤 친하게 지냈던 지인이다. 간만에 연락이 닿은 데에 변명하자면, 육아 휴직으로 유배 아닌 유배 상태가 되는 바람에 지인들과의 연락도 쉽지 않다. 그 사이 그녀는 줄기차게 일하며 연애도 했을 것이다. 먼저 연락을 준 게 고마움도 잠시였다. '잠깐, 얘 누구랑 결혼하는 거지?'
1년 전까지 그녀는 내가 소개해준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와 연애를 한단 사실도 몇 달 후에 알게 됐지만. 하여튼, 그럼 피앙세는 누구인가. 그때 그 남자인가, 새로운 운명의 남자인가. 마지막으로 연락할 때까지만 해도 그런 얘기 없었는데?
조심스레 '앗 혹시 그분?'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오오. 주선자로서 이런 보람이 또 있으랴! 매우 기뻐서 같이 주선한 지인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아이를 보느라 정신이 없지마는 그녀의 결혼 이야기가 궁금해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내달 결혼인데 지금 알리다니 혹시..? 급하게 하는 결혼인건가. 슬쩍 언제부터 결혼 준비를 했냐고 물었다. '응 작년 초!'
그러니까, 그녀에게 결혼식 연락을 받았을 때는 이미 준비를 1년 가까이 한 시점이었다. 보통 결혼 준비를 1년~1년 반 정도 잡고 하니 아마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는 이보다 더 전일 것이다.
기쁨으로 들떴던 마음이 짜게 식었다. 카카오톡이라서 망정이지 얼굴 보고 말했으면 순간 표정이 굳었을 것이다. 미리 좀 말해주면 뭐 어떻다고. 주선자로서 꽤나 섭하네! 내 안의 옹졸샘이 터져버렸다.
같이 주선한 지인에게 혹시 결혼 소식 들었냐고 물었다. 본인도 얼마 전에 청첩장 받으면서 알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체념 되었다.
아하, 이 부부는 똑같은 사람들이구나. 주선자들에 대해 고마움은 딱히 없는 사람들이구나. 자기들이 좋아서 결혼하는 거지, 주선자는 그냥 번호 넘긴 것 말고 한 일이 있나. 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에게 직접 들은 말이 아니니 이렇다 결론지어서는 안 되지만 이미 내 속은 꼬일 대로 꼬였다.
소개팅을 주선할 때 대가를 바라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주선은 내가 믿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인연을 찾아주고 싶다는 호의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소개팅 후로 입 싹 씻고 지내는 건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 마음을 퍽 섭섭하게 하는 일이다. '호의 네가 좋아서 베푼 거지 내가 해달랬니?' 그런 마음이라면 할 말은 더 없어진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니.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인데. 굳이 당신을 위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상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라고 한다. 축하라도 할까 싶어서 카카오톡을 열었더니 잊고 있던 메시지가 눈에 띈다.
"네가 (결혼식 못 온다고) 보냈던 기프티콘, 배송지 입력을 못 했어. 다시 보내줘!"
미안. 그땐 애 보느라 제대로 못 봤나 봐. 인제 와서 다시 보내기도 뭐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 생일도 축하해!
이렇게 속으로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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