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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Apr 16. 2020

젓가락질 잘해야만 결혼하나요

점심부터 요란뻑적지근하게 먹고는 커피 한잔 들고 기자실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이 끝나고는 엘리베이터부터 기자실까지 몇 명의 기자들을 지나쳐야 하는지. 연거푸 인사를 하고는 마침내 목적지인 내 좌석까지 왔다.


바로 근처에는 비슷한 또래의 남자 기자가 앉았다. 매우 사교적인 분인데 그날은 자리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모양이다. 파티션 안에서 노상 젓가락질을 하고 있다. 모르는 사이도 아닌지라 가볍게 '식사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이게 웬걸. 그의 책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밥이라도 먹고 있는 줄 알고 봤더니 유튜브를 보며 젓가락질 연습을 하고 있다. 그도 당황 나도 당황. 허공에 떠다니는 젓가락이 애처롭다.


"앗 식사는 다 하셨나 봐요! 하하!" 정말 객쩍게 뭐라도 던져본다. 대체 뭐지 이 상황은.


"아 혹시 젓가락질 잘해요?"


"아뇨 저 완전 못하는데요. 노력해도 안되더라고요. DJ DOC 좋아해요 그래서."


"내말이. 밥상머리에서 밥만 잘 먹으면 되는 거 아냐? 근데 저 지금 젓가락질 연습하잖아요."


밥만 잘 먹으면 됐지. 아무렴. 그럼 밥상머리에서 뭘 더 해야 할까? 돌도 안된 우리 아기는 죽을 손으로 퍼먹어도 예쁘기만 하던데. 서로 '맞아 맞아'하는데 영 시원치 않다.


 나와 그가 간과한 게 있다. 여기는 한국이라는 걸. 밥상머리 예절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걸. 우리가 막내 시절 얼마나 많은 수저를 놓고 휴지를 깔았는지. 몇 잔의 물을 따랐으며 얼마나 열심히 맛집을 검색했는지.


조용한 기자실에서 빠져나와 잠깐 의도치 않은 티타임을 하게 됐다. 지난 주말 여자 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연애하는 줄 몰랐던 터라 적잖은 충격. 그보다 더 충격은 젓가락질 때문에 앞으로의 결혼 생활이 어떨지 모르겠다는 그의 고백이었다.






삼청동의 어느 한정식집이 사건의 발단지였다. 아니 젓가락질도 못하면서 왜 한정식? 그의 회사 사람들이 말하길, 한정식 코스로 먹으면 중간중간 음식이 들어와서 어색한 분위기가 상쇄된다고 해서다. 젓가락질이 도마에 오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여자 친구 분의 아버지는 듣던 대로 교장선생님 상이었다. 교장선생님 상이 뭐냐면, 짙은 눈썹에 미간의 주름, 나이에 비해 관리된 몸이다. 그렇다고 교단에 있던 건 아니고 사기업에 다니셨다고 한다. 


어색한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바로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먼저 전채 요리와 밑반찬들이 상에 깔렸다. 각종 나물부터 탕평채, 흑임자죽까지 하나같이 맛깔스러워 보인다.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기 전에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배웠다.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먼저 드시길 기다렸다.


아버지가 미간에 살짝 주름을 잡으며 입을 연다.


"수저가 없네."


식당 측에서 수저 놓는 걸 깜빡했나 보다. 그는 부랴부랴 벨을 눌렀다.  종업원이 오기도 전에 아버지가 말을 잇는다.


"이런 건 원래 젊은 사람이 해놓지 않나?"


첫 만남부터 식은땀이 난다. 그러게. 제일 막내가 해놓는 건데 왜 안 했을까. 속으로 자책한다. '응 나 마이너스 1점.'


식사를 시작했다. 깎인 점수 좀 만회해보려고 탕평채를 개인 접시에 나눠 드렸다. 아버님부터 어머님, 여자 친구 순서로. 우리나라는 장유유서지. 암암.


한참 식사 중인데 아버님이 아무 표정 없이 툭 한 마디 한다.


"자네는 젓가락질이 서툴군."


"아 네. 어릴 때부터 이렇게 습관이 들어서요... 그래도 밥은 잘 먹습니다!"


그는 어색하게 웃어본다. 잘 빗어 넘긴 머리에 단정하게 맨 넥타이, 반짝이는 커프스 버튼까지 완벽하게 단장했는데 젓가락이 안 도와준다.


젓가락질 잘 못 해도 밥 잘 먹는다. 어른들은 밥 잘 먹는 사람 좋아한댔다. 못하는 젓가락질로 열심히 잘 먹었다. 잘만 먹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부모님 얘기가 나온다.


"부모님이 집에서 안 가르쳤나 보지."


아빠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는 딸의 만류에도 이 송충이 눈썹의 아저씨는 독불장군이다. 젓가락질 비난이 계속된다. 본인은 비난인지 모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마치 어릴 때 추억을 말하듯 줄줄 이야기를 계속한다.


"우리 때는 젓가락질 못하면 못 배운 자식이라고 그랬는데 말이야. 요즘에는 서구화되어서 그런지 식사 예절에 별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아." 부모님 비난으로 비수를 꽂는다.


그날 이후로 그는 틈만 나면 젓가락질 연습을 했다. 30년 가까이 같은 방식으로 먹어온지라 고치기가 쉽지는 않을 거다. 결혼 생활이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연습하고 있다는 걸 보면 여자 친구 분을 정말 사랑한 모양이다. 아, 물론 지금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장인어른과의 관계는 어떤지 들은 건 없지만 지금쯤이면 젓가락질도 잘하지 않을까? 내가 장인어른이었으면 사위의 노오력이 가상해서라도 예뻐해 줄 거 같은데.


보통은 대학생 때부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식사 예절을 강요받는지 모르겠다. 냅킨 깔고 위에 수저 올려놓고. 물 따라놓고 반찬 비면 추가로 시키고. 술자리에선 잔 비우고 돌리고 마시고 또 채워드리고 비워드리고. 이게 정말 한국의 식사 예법인지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이렇다 할 답은 없다. 구전된 풍습 같은 셈이다. 


밥 먹을 때 맛있게 먹으면 차려준 사람, 밥 사 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충분히 표현하는 게 아닐까. 여기다 조금 더 예의를 갖추자면 쩝쩝거리지 않기, 이 드러내지 않기, 반찬 휘집지 않기, 숟가락으로 반찬 뜨지 않기 정도 지켜주면 좋을 듯하다.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하는 건 만국 공통의 예의고 반찬과 관련해선 위생 문제가 걸려있다. 요즘 같은 시국엔 더욱더 지켜줘야 하는 예절이다.


새삼스레 젓가락질도 못하는 며느리한테 별말 안 해주시는 우리 시부모님이 고맙다. 넌 말랐으니 잘 먹어야 한다며 고기 직접 구워서 앞에 놔주시고 장어도 사주시는 그런 시부모님이다. 반주 마실 때도 고개 돌리나 안 돌리나 노려보지도 않는다. 당신이 즐거우시면 된다며 술도 혼자 따라 드시는 데에 거리낌 없는 시아버지다. 우리 부모님은 어떤가. 사위 밥 잘 먹는다며 두 마리 시킬 오리 고기를 세 마리 시켜주고 4캔에 만원 하는 맥주 3만 원어치 사다 놓는 분들이다. 그래서인지 나와 남편은 양가 어른을 대할 때 그리 큰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먼저 뭐라도 해 드려야 하는 거 아니냔 얘기를 한다.  흑 그런 부모님, 시부모님이 고마우니 다음에 만나면 아기 핑계 대지 말고 한잔 따라드려야겠다. 아니다, 젓가락질할 필요 없는 스테이크 집에서 만나자고 해봐야겠다. 세상의 모든 아버님 어머님, 이유식 손으로 퍼먹던 아기들이 이만큼 커서 이 정도 하면 잘하는 거잖아요. 젓가락질 잘 못해도 예뻐해 주세요~


Photo by Adrien Brunea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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