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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y 17. 2022

소머즈와 600만 달러의 사나이


 제목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아니 전격 Z작전은 왜 없는 것인가!' 했는가, 아니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는가?  

 후자인 '젊은이'를 위 네이버, 다음, 구글을 뒤져 보았지만, 당대 엄청난 히트작이음에도 생각보다 정보가 없다.  


 부실한 검색 결과를 종합하자면, 600만 달러의 사나이는 우리나라에 1988-1989년에 방영 미국 드라마다. 사고로 한쪽 눈과 팔, 두 다리를 잃은 주인공이 600만 달러를 들인 사이보그 시술 프로젝트로 생체공학 인간(Bionic man)으로 재탄생해 활약하는 이야기이다. 소머즈  600만 달러의 사나이의 여성버전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테니스 선수였던 소머즈가 사고로 중상을 입 양다리, 오른쪽 팔, 오른쪽 귀에 생체 공학 수술을 받으며 600만 달러의 사나이에 이 생체공학 인간(Bionic woman)이 된다.


 소머즈는 수술로 오른쪽 귀에 뛰어난 청각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찰랑이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면서 미간을 살짝 찡그려 집중하는 표정을 지으면 '뚜뚜뚜뚜'하는 효과음과 함께 저 멀리서 속삭이는 소리 크게 들린다. 그래서 '소머즈 귀'는 이렇게 작은 소리도 잘 듣는 청각의 소유자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소머즈 귀'인 나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이렇게 길게 설명을 했다.

 

  미취학 아동인 나를 데리고 언니 학교에 다녀오신 엄마는 그날 학교 운동장에서 흘러나오던 '국민체조'를 피아노로 치고 있던 나를 보면서 음악 천재를 낳은 게 아닌가 하셨단다. 지금 냉정하게 생각하면 안타깝게도 그 정도의 청음 능력은 영재라고 불리기에도 미미한 것이었으나, 당시 동네에서는 악보 없이 방금 들은 멜로디를 바로 피아노로 쳐내는 나의 실력을 아주 신기하게 여겼다. 직업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한 앞집에 사시던 아줌마는 자주 나를 불러 피아노에 앉히셨다. 본인이 한 소절씩 노래를 부르며 내게 피아노로 쳐달라 하고 계이름을 종이에 적어달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소머즈가 방영되고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가족들에게 '소머즈 귀'라고 불다. 청음 실력뿐 아니라 표현 그대로 귀가 밝았다. 특별히 소머즈처럼 머리칼을 뒤로 넘기지 않아도 거실에 있어도 방에서 가족들이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했는데 그 사람은 듣지 못하고 멀리 있던 내가 듣고 물건을 갖다 준다거나 하는 일들이 많았고, 같이 옷을 사러 가서 피팅룸에서 옷을 갈아입던 내가 밖에서 나눈 대화에 대답을 하면 깜짝 놀라기도 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손뼉을 치고 웃으며 역시 '소머즈 귀'고 했다.

 

 소머즈 귀가 피곤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이를 낳고 난 후였다. 가뜩이나 예민한 나의 귀는 아이가 '이잉'하 이제 울어보려고 시도만 해도 이미 잠에서 깨 수유를 했다. 조금씩 배고픔을 참아가며 뱃고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저릴 만큼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밤중 수유와 모유수유를 기록적인 기간 동안 하게 됐다. 그 뒤에도 아이 울음소리가 너무 힘들었던 나는 '둔감력'이란 책을 보고 나서야 나의 이 예민한 청각이 나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듣고 싶지 않아도 주변 소리가 들린다는 것, 담담하게 넘겨야 할 소리가 귓속을 찌를 듯이 들려온다는 것은 나를 더 예민하게 했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언뜻 들어도 거슬리는 옆 자리 사람의  마치 스피커폰처럼 상대방의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것이 참 싫은 날도 있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주였지만, 주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이어폰은 내게 외출 필수품이었다.


 

 그날 음식점에내 앞에 줄을 서 있 일행은 분명 비장애인인데 중간중간 수어를 사용했다. 관련 기관에서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가게 안쪽의 소음과 대기줄로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러운 상태였는데, 한 명이 일행에게 질문했다. '수어로 시끄럽다가 뭔 줄 알아?' 다들 '어? 뭐지?'하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수어에는 시끄럽다는 표현 자체가 없어.' 나는 늘 그렇듯이 그 뒤에 서서 마치 그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의 에 나도 모르게 '아....'하 말았다. 순간 다른 소음이 들리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많은 반성을 했다.


  이후 소머즈 귀에 대 없다.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으며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는지 잊고 있었다. 소심한 나의 성격상 모르는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소머즈 귀 덕분에 마치 혼자 밥 먹는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사람들이 나누는 신기한 세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물론, 여전히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많다. 최대한 들리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신기하게도 상당히 효과가 있. 생각해보면 회사에서는 따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할 일은 쌓여있고 주변에 관심이 없으니 가능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에만 소머즈 귀를 작동시키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소머즈 귀로 본 세상 이야기,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




 











참고자료

http://naver.me/Gbx1Ycnm


https://www.hellodd.com/news/articleView.html?idxno=13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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