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레슨을 받고 있는 이분, 능력이 엄청나다. 몸을 저렇게 움직이면서 어쩌면 저리도 쉬지 않고 강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중간중간 기합 소리와 공 소리로도 충분한데 힘차고 우렁차며 호흡이 가쁜 두 사람의 목소리는 마이크를 대고 이야기한 듯 길게 남는다.
예전에 OO아파트 근처에서 배우다가 오늘 처음 왔다는 그녀.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아파트 이름을 힘주어 댄다.
강사가 반색을 한다.
"어우, 거기 사세요? 거기 엄청 비싸지요?"
안 그래도 컸던 그녀의 목소리에 갑자기 힘이 실리며 더욱 커진다.
"내 베프가 거기 살거든요. 거기 비싸지. 시댁이 모태 부자야 모태 부자. 걔랑 같이 배우러 다녔거든요. 거기 요새 더 올랐어요~"
"곧 재건축하겠지? 그땐 또 얼마나 더 비쌀까?"
"재건축하면 당연히 지금 가격이랑 비교도 안되지."
"근데 살기도 괜찮나? 너무 오래돼가지고?"
갑자기 그녀가 발끈한다.
"그게 사람들이 몰라서 하는 말이라니까. 안에 들어가 봐요. 겉에만 그러는 거지, 안에는 다 새집이야. 친구네도 싹 다 뜯어고쳐가지고 진짜 삐까번쩍하다니까"
자기 집도 아닌데 저런 반응인 걸 보니 진짜 둘도 없는 친구인가 보다.
"하긴 나 아는 사람도 ㅁㅁ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리모델링만 1억을 들였다잖아. 그러면 뭐 새집이겠지?"
이번엔 강사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 역시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다른 아파트 이름이 나온다.
"ㅁㅁ아파트에 우리 언니 살잖아."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고 목소리 톤이 한 단계 상승한다. 강사의 말은 꼬리를 내린다. 뭔가 보이지 않는 배틀에서 그녀가 승리한 듯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제 강사는 싸우려는 의지를 버린 듯 저자세가 됐다.
"언니가 거기 살아요? 아유 잘 사시네. 나 아는 사람은 의사야. 근데 거기는 다 의사 뭐 이런 사람만 있다네"
"우리 언니가 ◇◇병원 의사잖아. 병원이 가까우니까 많이들 살지~"
"아이고 진짜 다 의사네. "
아파트 주민이 몇인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아는 의사가 두 명인 바람에 난데없이 '다 의사'로 탈바꿈한다.
"조카한테 물어보니까 부모 직업이 다 의사, 변호사 그러더라구."
"와아, 그럼 평범한 사람들은 누가 ㅁㅁ 아파트에 살라 그래도 기죽어서 못살겠네. 그런 사람들은 완전 '틀릴' 거 아냐?"
"아이고, 안 그래요. 오히려 그럴수록 수수하고, 티 안 내고 그렇지 뭐~"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 애써 겸손하려고 하는데 미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까지는 처리하지 못한 바로 그 표정이 나온다.
자신의 언니가 사는 아파트의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주민들에게까지 감정이입을 하시는 이분의 탁월한 공감능력과, 대화 상대도 아니고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 부자라는데 자세를 낮추는 저분의 겸손함에 경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