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Sep 19. 2022

가을 한낮에 먹는, 라면보다 쉬운 열무국수

 어제, 올해 첫 코스모스를 봤다. 렇게 샛노란 코스모스도 있었다.


 그렇게도 가을이었는데 하루 지난 오늘여름 더웠다. 말 반나절을 혼자 보낼 수 있는 흔치 않은 . 히키코모리는 약속을 잡는 대신 그간 귀찮아서 미루고 또 미루고 또또 미뤘던 욕실 청소를 한다. 전에 그 큰 집 화장실 두 개를 어떻게 주말마다 닦았을까. 엽게도 작은 화장실 하나 닦으면서 듣는 사람도 없는데 '아이고 귀찮다. 와우 진짜 귀찮다'  궁시렁거렸.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를 대충 닦고 서큘레이터 앞에 앉는다.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릴 때의 목적은 출근과 외출을 위한 신속함. 약한 바람에 서서히 머리카락을 말리며 내가 지금 매우 한가하고 몹시 여유 있다는 것을 일부러 노력을 기울여 가득 느낀다. 반곱슬인 머리는 선풍기로 말리면 굽실거리지만 뭐 어떠한가. 바람 앞에 반쯤 널브러져 이미 몇 년 전에 끝난 드라마 '도깨비'이제서야 나 혼자 긴장감 최고조로 보고 있다.


 딱 두 살 어린데 겉모습도 마음도 생각도 나와는 달리 이지도 젊은이인가 늘 감탄하게 되는 그녀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이 드라마가 한참 방영 중이었다. 그녀는 그날 나에게는 인터넷티브이가 필요하다 . 육아 스트레스는 덕질과 드라마로 풀어야 한단다. '아무 생각 없이 고 앉아 있잖아?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고 있어. 잇몸이 마른다니까. 그렇게 생각 없이 쉬 시간이 있어야 하는 거야' 잇몸이 마른다는 표현을 처음 들은 나는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이러다 곧 케이블을 달 기세다. 일단 '도깨비'는 꼭 정주행 해야 한다며 적극 하고 있는데, 그녀의 어린 아들이 놀다 말고 이야기한다.

"엄마 어저께 '도깨비' 보다가 소리 질렀잖아"

"엄마가?"

"응. 아아아악~~~ 어떡해~~ 너무 잘생겼어! 그랬잖아."

 

 그때 그녀언을 이제야 실천하며 아무 생각 없이 '도깨비'를 보니 그녀의 주장도, 또 그녀의 그 비명도 몹시 타당다.


 집에 혼자 있으면 싱크볼에는 컵만 또 컵만 쌓여 간다. 아침은 방탄 커피였고, 어제 끓여서 냉장고에 넣어둔 작두콩 차와 과일 주스를 마셨으며 덥다고 탄산수에 매실청을 타 마셨다. 오늘은 처음으로 햅쌀 개봉하는 날이니 점심은 대충 먹고 저녁에 같이 새 밥 해 먹어야겠다. 햅쌀이 아니라도 사실 혼자 먹기 위해 새 밥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만약 밥을 해 먹여야 할 가족이 없었다면 나는 음료수와 과일만을 위한 아주 작은 냉장고만 고 요리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모두 매식으로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떠오르지 않고 마땅히 먹을 것도 보이지 않는다. 냉장고가 좀 비었다 했더니 열무김치에 살얼음이 생겼다.


열무국수를 해 먹어야겠다.


냄비에 물 끓이고 소면을 둘러 넣은 후 물이 끓어오르면 얼음 세 조각 넣는다.

다시 끓어오를 때 불을 끄고 얼음물에 헹군다.

멸치장국을 8배의 물로 희석하고 얼음을 띄우는 것으로 육수 준비 끝..

물기를 뺀 소면을  그릇에 담육수를 붓고 살얼음 열무김치를 넣으면 라면보다 더 쉬운 열무 국수가 완성된다.

 여름처럼 더운 가을 한낮에 집에서 혼자 얼음 띄운 열무 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창밖을 보니 하늘은 그저 가을이다. 구름이 가만 있는 듯 하면서 아주 천천히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게으름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한번 게으름을 피웠더니 갈수록 게을러진다. 설거지하러 싱크대 앞에 섰다 돌아선다.

 

 커피 마시며 구름 보다 스르륵 자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