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Nov 08. 2022

회사 책상을 깨끗이 비워야 하는 이유

  영화 '공공의 적'. 20년 전 개봉 당시 어쩌면 연기를 다지도 찰지게 할까 감탄해 마지않았던 조연들. 지금 다시 보면 이 대배우들이 한 작품에 렇게나 대거 출연었다는 사실놀라게 다.

 또 한 가지, 그때 웃음이 터졌던 도입부 장면. 새로 온 반장(강신일)이 형사들의 책상 상태를 점검한다. 옆 형사를 시켜 자리에 없는 강철중(설경구)의 서랍여니 모나미 볼펜 단 한 자루가 데구루루 굴러 나온다. 이제 보니 롤모델이 여기 있다.

'공공의 적'의 강철중 책상 장면. 쿠팡플레이 재생화면을 촬영했다.

 회사에 내 물건 하나 없는 것, 참으로 받고 싶다.

 내 몸과 마음이 편한 것추구하다 보니 미니멀 라이프 근처에 있게 된 나에 '회사에서의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서'는 결코 그 이유가 아니다. 출근면서 심신 안정은 리 집에 두고 나나 보다. 내게는 은 세계에 있을 수 없는 조합이다.


 사무실에서까지 물건을 정리하기 귀찮다 단순한 이유회사에 물건을 늘리지 않는다. 퇴근과 동시에 회사와 분리되고 싶은데 그곳에 내 개인 물건이 남아있 것이 싫 것이 그 귀찮음의 이다.


 출근할 때마다 가방 바꾸는 것도 귀찮아서 회사에 들고 다니는 가방은 한 가지로 고정한 지 좀 됐다. 안에는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 담는 텀블러뿐이다. 커피만 아니면 다른 외출에 그렇듯 핸드폰과 이어폰만 가지고 가면 다.


 컴퓨터, 연필꽂이 같이 기본적으로 세팅된 사무용품 외에 사 책상 위에 내 물건은 텀블러와 핸드크림뿐이다. 도대체, 어째서, 왜 회사에서는 손 씻고 올 때마다 빼먹지 않고 잘도 바르는 핸드크림을 집에서는 단 한 번을 못 바르는지 모르겠다.


 어떤 작업이든 필요한 그 순간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거실 테이블과 방의 책상 위도 언제나 비워둔다. 마음 잡고 공부 좀 해볼까 하다가 책상 정리와 방청소에 기력을 소모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으로 충분하다.

어떤 작업이든 필요한 그 순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이 상태가 좋다

 사무실 책상 위에 잔뜩 올라와 있는 서류는 마음의 짐이 되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다는 치명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으니 지금 작업하는 서류만 남기고 의식적으로 비운다.

 자리에 오는 사람들의 '여기는 뭐가 이렇게 없냐'는 멘트는 익숙하다. '혹시 이 책상이 더 큰 건가요?'라는 말도 들어봤다. 캐비닛도 없다. 예전 사무실에서 인원이 늘면서 캐비닛이 부족하다 해서 양보를 했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아 그 뒤로는 일부러 쓰지 않는다. 거의 전산 작업이고 서류도 스캔해서 보관하니 책상에 달린 서랍장과 작은 책꽂이 하나면 충분하다. 


 직원들이 찾는 어떤 물품도 그 자리에 가면 다 있어 다이소라고 불렸던 직원 M. 그가 부서 이동으로 다른 층으로 옮기게 되자 이삿짐센터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나왔다. 같은 시기 사무실을 옮기며 택배로 보낸 내 작은 상자 한 개에는 책 몇 권과 실내화 그리고 점심 후 먹는 영양제가 다였다.

'리틀포레스트'에서 재하가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장면. 쿠팡플레이 재생화면을 촬영했다.

  다음 이동에는 보낼 짐 없이 몸만 옮겨야겠다 생각하지만, 훗날 아주 가뿐하게 핸드폰 하나만 주머니에 넣고 빈손으로 사를 떠나는 것이 궁극목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막말을 해대는 상사를 뒤로 하고 자기 책상에서 지갑과 핸드폰, 작은 수첩만 단박에 집어 겉옷을 들고 사무실을 박차고 나오던 재하(류준열) 보희열마저 느꼈다. 제 분을 못 참고 또라 운운하고 있는 상사는 개의치 않고 결연하면서도 모든 고뇌가 사라진듯한 개운한 표정으로 걸어 나오재하. 만약 폼나는 상황에서 재하가 엉거주춤 자리에 다시 앉아 책상 서랍들을 열어 주섬 주섬 짐을 챙긴다고 생각해보라. 전혀 멋지지 않다. 사 책상을 깨끗하게 비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영화 속 재하와 같은 용기 천한 행동을 할 수 있는 확률은 희박해 보인다. 퇴사를 하더라도 인수인계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매달려 있 않으면 다행이다.

 현실에서는 멀리 있는 퇴사. 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주섬 주섬 챙길 짐은 없으니 퇴사를 위해 큰 거 하나는 이미 비해 놓았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확진보다 더 무서운 출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