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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Jul 21. 2023

평수 줄여서는 절대 못 간다던데

 중론은 가끔 일반 지위를 다.

 '넓혀서는 가도 평수 줄여서는 못 간다.'

 이건 거의 속담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평 줄인 이사를 결심하게 된다. 아주 큰 집에서 보통 집으로가 아닌 30평대에서 10평대로의 이사. 미니멀 라이프의 경지에 올라 간소한 삶을 위해 도전했다면 폼이 났을 텐데 비자발적이다. 여지가 단 하나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유일한 현실적 선택지였다.


 작은 집으로 간다고 하니 얼마나 작은지 묻는다. '지금 집에 안방 말고 작은 방 두 개 있잖아' 하니 '그거 뺀 거만 해?' 다. '아니, 집 크기가 그 방 두 개 합친 거만 해'라고 하니 크게 웃는다. 는 나도 막막함에 이 난다.

큰집의 보조주방과 가장 작은방의 크기는 작은 집의 주방과 거실크기보다 크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30평대 신축, 이사 가는 집은 15평이 채 되지 않는 구축이다. 준공연도 17년 간극의 두 아파트는 크기만 다른 것이 아니다. 건축기술의 진보를 새삼 실감한다.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 신축 아파트는 곳곳이 수납공간이다. 안방 큰 벽면을 차지하는 붙박이장에는 옷들이 낙낙하게 들어가 숨을 쉬고 있다. 하부장도 넉넉한 주방에는 보조 조리대와 아일랜드 식탁, 심지어 팬트리룸까지 있다. 작은 집에는 붙박이장이나 빌트인 가전이 하나도 없다. 거실 내력벽 옆 애매한 공간의 장 하나가 끝이다. 위아래로 작게 세 칸뿐인 부엌 수납장 안마저 환기구와 보일러 시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두 아파트의 도면을 번갈아본다. 똑같은 A4용지에 출력됐는데 이사 갈 집에 적힌 치수가 참으로 작고 귀엽다. 20평 줄인 이사, 이건 진짜 미니멀리스트라도 힘들 다.


 뇌의 3분지 1 이상을 평수 줄인 이사가 상시 령하고 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거 가져갈 수 있을까?' '저건 버릴까?' 하는 사고 회로만 작동한다. 지인이 수업시간마다 칠판이 초록색 당구 다이로 보여서 앞자리 애들 머리통으로 각도계산을 했다더니만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눈을 감아도 떠도 작은 집 도면이 둥둥 떠다닌다. 식탁을 여기 넣을까 책상은 저 사이에 들어갈까.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서랍 칸칸을 열어보고 있다.


 제목에 '작은 집'이 들어간 책들을 정독한다. 이분들은 간소한 삶을 위해 스스로 소유하던 것들을 싹 버리고 작은 집으로 가셨다. 필수품 자체가 심하게 없으시다. 어떤 분은 전기도 안 필요하시다. 나 같은 사람이 범접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필요한 물건은 많은데 이사 갈 집이 너무 작아 어쩔 수 없이 비워야 했다는 분은 안 계시다.

 

 '작은 집 인테리어', '평수 줄여 이사' 등으로 검색을 시작한다. 밤마다 남의 집 사진을 그렇게 들여다본다. 자꾸 20평대 집이 나온다. '인간적으로 20평대 후반은 작은 집이라고 하지 말자!' 혼자 욱한다. 사람이 이렇게 옹졸하면 못쓴다. 10평대 사진은 대부분 혼자 사는 사람들의 집이다.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며져 있거나 미니멀 라이프의 진. 10평대에 학령기 아이가 있는 집 사진은 찾기 힘들다.


 생활을 위한 필수품을 제외하고 어른의 물건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옷도 신발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적다. 하지만 아이의 물건은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책상과 책, 어느 정도의 장난감은 필수다. 많이 정리했다 생각한 어른의 책은 두고두고 보고 싶은 책 10권 미만으로 추려진다.

치수를 적어두면 매번 재는 수고를 던다

 모든 물건이 이렇다.

 무엇을 버릴까 고민하면 안 된다. 뭘 가져갈 수 있을까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엑셀까지 동원해 물건의 우선순위를 매긴다. 훅 줄어든 공간으로의 이사는 불필요한 것을 비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함에도 가지고 올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눕는 것과 앉는 것의 중간 자세로 널브러져 쉴 수 있던 소파의 가로길이는 작은 집 거실 너비를 넘긴다. 오래 사용해 반질거렸던 나무 식탁의 의자를 빼면 지나다닐 공간이 없다. 작은집에서 단 10cm는 동선이 나오냐 안 나오냐를 결정짓는다.


 '어릴 때 잘 가지고 놀았는데, 예전에 잘 입었는데'처럼 과거시제가 붙는 순간 가차 없이 비워진다. 당장 쓸 물건도 기로에 있는 판에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 어쩌다 한번 쓸 것들, 추억을 위한 물건 따위는 안중에 없다.


 큰 집에 있는 붙박이장과 수납장의 수를 세본다. 이사 갈 집의 그것들의 수를 세본다. 여기서 4분의 3만 비우면 다 넣을 수 있다. 긍정적 계산법이다. 일부러 수납장 물건을 다 빼 몇 개의 수납장에 몰아넣어보면서 시뮬레이션까지 거친다.


 내 공간인 집이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고만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포개놓고 물건 하나를 꺼내기 위해 매번 앞에 겹쳐 놓은 물건 두 개를 꺼내며 지낼 수는 없다.

 이사 다가올수록 우리 집의 물건들은 빠른 속도로 비워다.  '하루에 한 개 버리기' 같은 방식으로 비운다면 이사 못 갈 테다. 용달을 불러 가구와 가전을 싹 실어간 이를 포함해 지인들이 몇 차례 빈 트렁크로 왔다가 뒷자리 발 밑까지 꽉꽉 물건을 채워 간다. 기부 간격은 점점 짧아진다. 폐기물 스티커 구입비용도 상당하다. 중고판매와 비대면드림까지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다.

집이 울린다

  침대, 큰 소파, 식탁, 책장 세 개, 책상 두 개,  체어 두 개, 서랍장, 화장대, 소파의자, 레인지 수납장 같은 큰 물건부터 그 안을 채웠던 물건들까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니 막판엔 집안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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