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Aug 11. 2023

왜 집이 쪼그라들었어요?

 30평대에서 10평대 1.5룸으로 20평을 줄인 이사.

 결정할 때까지. 마음을 먹은 후에. 이사를 준비하고 또 실제 살면서지도. 

 언제나 신경 쓰이는 건 아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가 인생 최대의 맥시멀 시기였다. 유아 물건에는 '필수'라는 것은 왜 그다지도 많고 부피는 또 얼마나 큰지. 작은 집으로의 이사를 시도할 수 있던 것은 아이가 많이 자란 덕이다.

 정보를 핑계로 자그마한 동질감과 위안을 기대하고 부동산 커뮤니티에 소형평수와 초등생을 조합해 검색해 본다. 말리는 글 일색이다. '자존감'이라는 단어까지 서슴지 않고 나온다. 아이를 위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란다.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괜히 마음만 상했다 해놓고 댓글 하나하나를 정독하고 있다.

 어른은 사실 집이 작아진다고 해서 미친 듯이 불편하거나 못 견디게 답답하다거나 몹시도 슬퍼하며 왜 이리 집이 작은가 고민할 일이 없다. 참 쉽게 어질러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이 역시 조금만 파닥파닥 움직이면 원상회복 된다는 장점상쇄한다.


 히키코모리 갱년기는 카카오톡 친구가 20명이 되지 않는다. 가족 포함이다.

 그러나 소수정예. 어느 한 명 이렇게 집이 작아서 어쩌겠냐는 날 선 소리를 하지 않는다.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않지만 빈 말도 하지 못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훅 줄어든 집 크기에도 당황하거나 놀라지 아니하고 하나같이 어쩌면 집을 이렇게 잘 정리했냐며 전혀 좁아 보이지 않는다 칭찬을 해준다. 물론 크다고는 하지 않는다. 솔직한 사람들 같으니.


 그러나 이렇게 상대의 감정을 배려한 언행은 경험상 중학생은 되어야 자연스러워진다.

 예전 살던 큰 집에 종종 놀러 올 때마다 너무 좋아서 여기에 살고 싶다 말하던 친구의 5살 딸은 처음 작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깜짝 놀란 표정으로 집안을 둘러본다. 본인의 짧은 보폭으로도 몇 번만 움직이니 집 처음부터 끝을 섭렵하게 되자 "왜 집이 쪼그라들었어요?"라는 더 이상 솔직할 수 없는 질문을 한다. 초등학생 조카들도 1/3로 줄어든 집 크기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했다.

 그러나 같은 반 친구를 데리고 온다는 아이 말에 갱년기는 당황하고 만다.


 이사 전에는 친구들이 참으로 자주 왔다. 그때도 우리 집보다 넓은 집에 사는 아이들이었지만 너네 집은 너무 깨끗하고 좋다며 감탄들을 해 댔고 배운 대로 "너희 집도 좋아"라는 예의 바른 답을 하는 아이 표정에서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다.


 이사 후에는 코로나 덕에 집으로 왕래할 수 없음이 내심 고마웠고 친구들이 학원 스케줄로 바빠서 집에서 놀 수가 없다는 아이의 불만에 속으로 다행이라 했다. 아마도 근처에서 우리 집이 가장 작은 평수테다. 대형평수도 상당히 다. 그런데 방학을 하자마자 당장 친구를 부른단다. 그것도 두 명이나.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했다.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따로 있고 원하는 것도 각각이라 사는 모습도 다를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남들보다 작은 집에 살지만 얼마나 쾌적하고 좋으냐며 노래를 불러대던 갱년기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춘기가 간당간당한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어떻게 꼬드겨도 자기도 놀러 갔다 왔으니 데리고 오겠단다. 엄마가 놀러 가기만 하고 초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냐 되묻는다. 저번처럼 밖에서 놀다가 맛있는 걸 사주면 안 되냐고 이야기해도 집에서 논단다.


 병원 진료가 있어 휴가를 내놓고는 집안 청소에 매진한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청소한 적이 언제였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 혹시라도 집이 요만큼이라도 더 넓어 보일까 싶어 밖으로 나온 것은 다 안으로 넣고 작은 먼지 한 톨까지 닦아다.


 왜 내가 이렇게 두근거려야 하는 걸까 생각하는 순간 그들이 방문한다.

 말은 '안녕하세요' 하는데 눈은 어른을 보지 않고 집을 본다. 간식을 내어주고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크게 놀란 소리가 들린다.


 "야, 집이 너-무 작은데?"

 혈연관계가 없는 남자 초등학생은 우리 집처럼 작은 집을 보면 깜짝 놀라는 거였다.

 자꾸만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에 쫑긋하고 있는 소머즈귀가 밉다.


 두 아이 모두 놀란 건 매한가지지만 한 명은 충격이 컸나 보다. 어떻게 이렇게 집이 작냐, 그럼 목욕은 어디서 하냐, 너 방은 어디냐, 침대가 없는 거냐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병원 갔다 온 것보다 청소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진해 버린 갱년기의 얼굴은 점점 더 뜨거워진다. 예상해 놓고 뭘 이렇게까지 온도가 올라가나 스스로가 못나 보인다.


"집이 왜 이렇게 작은 거야?"

 결국 이 질문까지 나온다. 그러고 보니 왜 갑자기 이렇게 작은 집에 살게 됐는지 아이에게 자세하게 설명한 적이 없다. 그러기엔 경제, 사회 전반을 시작으로 한국 부동산의 특수성, 가계부채의 위험까지 주절거릴 말이 너무나 많다.


 그 많은 질문에 오락을 하면서도 또박또박 대답을 해가던 아이는 단박에 답한다.

"너네 집이 우리 집이랑 건물 크기는 똑같은데 너네는 한 층에 두 집이 들어있고 우리 집은 여섯 집이 들어있으니까 당연하지."

@pixabay

 와. 이렇게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반박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구나.

소머즈 귀를 팔랑이고 있던 갱년기의 얼굴은 깊은 깨달음과 뭔지 모를 미안함과 고마움에 아까보다 더 뜨거워지고 만다.


이전 01화 1순위 너구리 33순위 엄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