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자매님 아파트를 2박 3일간 정리했다. 집을 뒤집어 들고 그 안의 물건을 탈탈 털은 후 모두 제자리에 넣은 수준이랄까.
집안의모든 물건을 꺼내 보니 시기마다 계속 증가하는 아이들 물건에 비해 어른 물건은 적었다. 물욕을 누르며 많은 물건들을 보이지 않게 잘 수납하고 정리하며 유지했던 나와는 달리 필요로 하는 물건의 수 자체가 많지 않다.
그런데 안 보이는 구석에서쇼핑백이자꾸 나온다. 그 안에이 집에 필요한 물건은 없다.
"아. 이거 누가 필요하다 그래서 주기로 한 건데. 한번 가지러 온다고 하고 안 왔네." 하는, 남을 위한 짐들이다.
"이 흑백 모빌 신영이가 애 낳으면 필요하다고 놔두라고 한 건데",그러나 이미 그 아이는 초등학생. 이런 식이다.
간절한 물건이었다면 어떻게든 가져갔으리라. '밥 한번 먹자'도 아니고 말만 던져 놓고 만나자거나 어떻게 달라거나 하지도 않으니 정작 필요로 하는 다른 이에게 주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한 채 미라처럼 몇 년 동안 공간만 차지하고 있었다.
성격이 다른경우도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인테리어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집을 꾸며 놓았다는 A는 친정에 수시로 물건들을 갖다 놓는다. 때 지난 아이 용품은 물론이고, 큰 것으로 교체했지만 아직 멀쩡한 텔레비전, 아이가 다칠까 봐 쓸 수 없다는 가구들도 친정으로 보냈단다. 신혼집에 아이가 생기며 집이 좁아져 그렇다며 부피를 차지하는 겨울 겉옷은 친정에 보관하고 딱 겨울에만 가져와서 입는다고 했다. 친정 베란다와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그녀의 짐들. 다시 그녀가 필요로 할 물건이 과연 있을까.
숨은 그림 찾기는 아니지만, 저 장난감은 자그마치 6개월을 저 곳에서 주인을 기다렸다
우리 집에는 우리를 위한 물건만 있으면 된다.
공간이 남아돌지 않는 한, 그중에서도 '지금의 우리'를 위해 꼭 필요한 물건들을 추려야 한다.
남을 위한 짐, 남에게도 딱히 필요하지 않은 짐까지 무기한 보관하고 있을 공간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작은 집에도 쓸모를 다한 물건이 '줄것' 상태로체류할 때가 있다.부피가 큰 건 인내를 요한다. 사진 속 숨은 그림처럼 삐죽 보이는 커다란 장난감 자석 세계지도는 장장 6개월 동안 저 안에 있었다. 가끔씩 빼서 저 안의 먼지를 닦는 수고도 들였다. 전선이 나와 있는 것도 거슬려하면서80권가량 되는 전집을 한 달 넘게 책꽂이 옆에 쌓아두기도 했다.
나에게 '그냥 남'이 아닌이의 물건에만예외로 나의 공간을 할애한다. 나는 반가운 이를 만나고,물건은 주인을 찾아가고 작은 집은 공간을 찾는 날은 몹시 신나고 뿌듯하고 마음이 개운해진다.그 예외가 아닌 것들은 가차 없이 비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들만 두기에도 넉넉지 않은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