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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y 02. 2022

양말이 부엌으로 가면 벌어지는 일

 나의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1학년 첫날 엄마가 직장에서 돌아와 보니, 내가  숙제를 마치 내일 시간표 순서대로 교과서를 겨 넣은 가방을 현관 중문 앞에 딱 놓아두고 밖에서 놀고 있더란다.


 그런데 나의 아이는 어느 날은 책가방도 없이 가벼운 몸으로 하교를 하고, 어느 날은 아침에 입고 갔던 겉옷 없이 돌아온다. 우산과 물통은 시작하지 말자. 어디에 두고 왔는지를 정확하게 알면 그나마 다행이다. 함께 앉아 과연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추리해야 한다.


  아이가 가장 많이 잃어버리는 것은 단연코 양말이다. 스스로 양말 벗기도 힘들던 어릴 때부터 어디만 들어가면 양말을 벗다. 발바닥이 답답하단다. 학교에서까지는 참는데, 학원 가는 순간 양말을 벗는다. 분명히 아침에 출발할 때는 양 발에 한 개씩 신고 갔거늘, 돌아온 아이의 가방 안에는 어느 날은 양말이 한 짝 있고, 한 짝도 없는 날도 있고 어느 날은 세 짝이 있다. 네 짝이 기록이다. 새로 사 처음 신은 양말도 예외가 아니다.


 한 짝만 돌아왔다고 또 바로 버릴 수가 없다. 일주일 전에 놓고 온 그 양말 한 짝이 마치 오늘 신고 갔던 것마냥 가방에 들어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짝만 있어도 일단 넣어둔다. 한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그 양말은 이제 부엌으로 간다.


  이사 전이나 지금이나 부엌 싱크대 하부장과 냉장고 문 서랍에 소스를 보관한다. 뚜껑을 잘 닫고 옆에 흐른 것을 한번 닦아 넣는데도 음에 쓸 때 꼭 손에 뭐가 묻는다. 예전에는 키친타월을 접어서 노랑 고무줄을 끼워 썼는데 바닥이 해결이 안 된다. 바닥에 소스 자국이 동그랗게 병 모양 그대로 나있다. 끈적거린다. 들어 올려 바닥을 닦아줘야 한다. 하나를 들면 옆에 것도 거슬린다. 싹 다 꺼내서 치우다 보면 어느 순간 부엌 대청소로 이어진다.

양말을 씌워두면 청소를 따로 하지 않아도 끈적이는 게 없다

 집 안에  한두 번 신은 새 양말들이 한 짝씩 남아 돌기 시작한 후로는 깨끗하게 세탁한 양말을 씌워준다. 잼, 시럽, 기름, 간장, 매실진액, 도라지 차 등 끈적이거나 미끌거리는 내용물을 담은 병들은 모두 양말을 신고 있다. 아무리 해도 조금씩 묻어나는 것들은 이제 양말이 커버한다. 천이라 묻어도 흡수가 되니 끈적거리지 않는다. 병을 비울 때 양말도 같이 비운다. 다 쓰기 전양말이 너무 지저분해지면 바꿔 신겨 준다. 수면양말처럼 두껍고 보들보들한 것이  더 좋다.

 부엌 대청소의 시작은 대부분 냉장고와 서랍 바닥에 끈적하게 묻어 있는 소스 자국이는데 양말 덕에 지금 바닥은 늘 보송하다.

 말이 부엌으로 간 이후에는  닥에 묻는 게 없으니 대청소 일이 없다.


 물론, 보통의 가정에서는 구멍 난 양말을 활용하면 된다. 우리 집은 부엌에 사용할 깨끗한 양말이 차고 넘치니, 이것도 좋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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