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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학이 Oct 22. 2023

장래가 없던 모범생

감옥이자 도피처, 학교


중학교 3학년 때는 고등학교 진학 준비를 위해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시기였고,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 공부하는 시절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은 시험을 통과해야만 입학할 수 있었다. 반에서 중간 순위만 되면 입학은 어렵지 않은 시절이었고, 하위권 학생들은 공고나 농고로 진학해야 했다.


학생들은 중학교 3학년 정도 되면 장차 진로에 대하여 고민했다. 서울대나 포항공대를 목표로 하는 친구도 있었고 체대나 예대, 육군사관학교를 준비하는 친구도 있었다, 공부에 취미 없는 친구들은 불량써클을 운영하기도 했다. 늦은 밤에는 가로등도 별로 없던 시절이었기에 집에 가는 길은 어두컴컴하여 무섭기는 하였다. 야간 자율 학습 후 집에 가는 어느 날 불량써클에 걸려들었다. 나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서 나를 집단 폭행하려고 하는 찰나, 써클 멤버 중 나와 같은 반 친구가 가로막았다. 그 친구가 불량써클 두목에게 나는 귀머거리이고 집도 가난하다면서 불쌍하니 그냥 돌려보내자고 하는 듯했다. 다행히 폭행당하는 것은 면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밀려왔다. 그 슬픔의 원천은 연민이었다. 나중에 그 친구가 나에게 와서 그 길은 항상 피해 다니라고 조언해주었다.


주말에 공부하는 학생은 한 반에 수십 명 정도 되는 듯했다. 나도 물론 그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국·영·수 위주의 공부를 하면서, 암기과목도 틈틈이 공부했다. 특별히 어떤 목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집에 있으면 막내 형의 군대식 훈련이 있으므로 피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막내 형은 학비가 전액 국비로 운영했던 공고로 진학했다. 인문고를 가고 싶었지만, 그 화풀이를 부모에게 할 수 없으니 막내인 나에게 풀었다. “엎드려뻗쳐”, “우향우 좌향좌”, “무릎 꿇어” 등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한 그 훈련이 맛이 들었는지 계속되고 있었다. 학교에서 늦은 시간까지 있다가 집에 가더라도 훈련은 그리 길지 않았고 패스하는 날도 많았다. 집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고, 학교가 나에게는 도피처였다. 나중에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막내 형이 결혼하면서 군대식 훈련은 끝났다. 너무나 행복했고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물리 과목을 가르치는 여선생이었다. 우리 중학교는 남자 중학교였는데 선생님 중에서 최고의 미인으로 꼽혔고 인기도 많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의외로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반 평균 점수도 전체 일 등반이었다. 학생들의 공부도 선생님의 미모 따라 움직이는가 보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도내 과학 경시대회에 제출할 실험 숙제를 내는 일이 있었다. 나는 양파를 가지고 물을 주는 것과 안 주는 것의 비교 실험하는 과제를 제출했고 선생님은 내 작품을 과학 경시대회에 출품하여 우수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 실험은 이전에 했던 작품의 모방을 한 것이라 내심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끝내 선생님에게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아마 선생님도 알고 있었을 상황이지만 내가 장애도 있고 하니 출품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자기 반 학생이 경시대회 등에 수상하면 선생님 평가점수에 이득이 가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 중학교 과학 학과장으로 승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마따나, 나는 어딘가 모르게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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