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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학이 Oct 22. 2023

귀머거리라고 '몸머거리'는 아니다

친구의 괴롭힘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 일이다. 두꺼비처럼 생긴 얼굴에 안경을 쓴 50대 여성 영어 선생님은 학생들의 수업 태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혼자서 영어 교과서를 읽고 혼자 설명하면서 떠들다가 수업을 마쳤다. 학생들은 당연히 수업 시간 내내 고개 숙이고 책만 보다가 수업이 끝났다. 대부분 졸려 죽겠다는 표정들이었을 거다.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나는 선생님이 설명하는 것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하기만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선생님은 이 주에 한 번꼴로 스무 개 정도가 되는 문제가 있는 영어 문제지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그 문제지를 잘 모아놨다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 활용했다. 이 문제지에서 시험에 그대로 베낀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덕분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우리 반 중 유일하게 만점을 받았다. 문제와 답의 상호관계가 법률의 규칙이나 수학의 공식 같은 느낌이어서 친근하게 다가왔다. 지문을 오롯하게 해석할 수 없더라도 장난감을 조립하는 것처럼 어떤 규칙을 찾아내면 답은 바로 나오게 되어 외우기도 쉬웠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거의 마지막 수업에서 영어 선생님은 혼자 읽고 혼자 해석하던 수업방식에서 처음으로 나에게 책을 읽어보고 해석하라고 지시하였다. 나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내가 만점을 받았으니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의 발음은 당연히 부정확할 수밖에 없었고 우물쭈물하게 읽어 나가는 모습, 설명도 정확하지 못하니 영어 선생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의 존재가 인식이 된 듯 어떻게 공부했냐고 쪼아 부쳤다. 아마 선생님은 문제지를 그대로 베낀 행동에 대한 부끄러운 감정을 나에게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문제지를 보고 공부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영업비밀이 들통나 선생이 학생들에게 망신당하게 되면 나에게 해코지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학기에는 두꺼비 선생님을 안 본다는 보장도 없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통제 없는 체벌이 가능하였기에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체벌을 무기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선생님들은 반성할 줄 모르고 자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라, 만약 내가 망신을 주었다면 약자인 나를 괴롭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사건 이후 그분을 뵌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볼품없게 마르고 왜소하며 키가 작은 아이였기에 맨 앞 좌석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앞좌석은 내 자리였다. 중학년 1학년 시절 내 뒤에 있는 친구가 수업 시간만 되면 자꾸 나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손으로 내 옆구리를 찌른다든지, 발로 내 다리를 친다든지, 머리를 잡아챘다든지 말이다. 몇 달은 계속되었다. 참다 참다 따로 불러 화를 내며 따졌다. 겁도 많고 얌전이였던 내가 그런 용기는 어떻게 나왔을까. 끊임없는 고통을 참으면 살 수 없으니까 생존하려는 본능을 자극한 것일까. 그 친구는 내가 귀머거리이니 몸도 반응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 친구의 핑계가 나는 황당했다. 귀가 잘 안들리뿐 나도 사람이라 몸은 너랑 똑같이 반응하니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며 요청했다. 그 친구는 또 다른 사냥감을 찾으러 갔으니 그 이후 잠잠해졌다. 누구에게도 무엇을 요구한다는 거 자체를 전혀 하지 못했던 나에게는 이 사건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찾아오는 쾌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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