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전한 1인 가구 가장 되기
(22.03.28)
멋지고 속상한 밤이었다. S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왔고, 전혀 기대도 안 했던 호텔이 꽤나 근사했으며 내가 좋아하는 시를 쓰신 작가님께 인터뷰를 요청했다. 작가님은 흔쾌히 응해주셨다. 아주 재미있는 시간이 되어야 할 텐데. 지금부터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로선 아주 즐겁고 자랑스러운 하루가 딸로선 무척이나 마음 아픈 날이 되었다. 약 4-5시쯤 시작할 거라던 수술은 3시에 시작했다. 수술실에서 가까울수록 물품 보관함은 꽉 차있었고, 지하 6층 주차장까지 캐리어와 짐 꾸러미를 지고 내려가야 했다. 엘리베이터는 느리고 그 안에 가득 찬 사람들은 저마다 급한 목적이 있었다. 수술은 4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예상한 시간을 1시간 남기고, 나는 밥을 먹고 있었다. 수술이 끝났다는 문자를 받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서둘러 계산하고 육교를 건너 병원에 향했다. S를 찾아야 하는데 도무지 어디에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일단 수술 장소에 갔다가 별관에서 본관으로 가야 한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도움에 간신히 흉부외과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랐다. 환자들의 얼굴을 보며 S를 찾는데 왠지 그분들을 너무 당당히 쳐다보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S의 보호자일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사람이니까, 그곳에서는 내 건강함이 죄송스러웠다. 숨 한 번을 내뱉는 데에 수많은 관과 호스와 간호사 선생님들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 앞에서 나는 숨이 막혔다. 그냥 S를 얼른 빼내 오고 싶었다.
S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본 S의 낯선 모습. S는 나와 조금만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도 마치 10년은 못 보았던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가워하니까.
-나 왔어.
살금살금 이야기하고는 조금 더 크게 S를 불렀다. S, 나 왔어. 조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처음 온 병원도 아닌데 길을 계속 헤매서 생각보다 늦게 간 나에게 화가 나서 이은 지, S가 안되어서인지, 그냥 이 모든 상황이 내 것이라는 실감이 안 나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자책할 일이 또 하나 생겼다. 분명히 되새기고 명심했는데. 중환자실에 갈 때 준비해야 한다고 안내받은 것 중 계량컵 하나와 슬리퍼를 챙기지 않았다. 계량컵은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것 같고, 슬리퍼는 물품 보관함에서 준비해놓은 것들을 꺼낼 때 깜빡하고 빠뜨린 것이었다. 밖으로 나오면서 길을 한 번 더 잃었다. 다시 편의점에 내려가서 계량컵을 사고 지하 6층 물품보관함에 가서 슬리퍼를 꺼내 왔다.
-중환자실에서 쓸 슬리퍼는 새 거여야 해요?
내 손에 들린 슬리퍼가 너무 낡고 까맣게 때가 탄 듯해 중환자실 앞에서 선생님께 물어봤다. 왠지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물품들은 아주 깨끗하고 희어야 할 것만 같았다. 선생님은 아주 가볍게, 뭐 그렇지는 않죠, 하고는 문을 열어주셨다.
S. S와 진짜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다짐하고 S 옆에 섰다. S,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지만 살면서 와볼 기회가 흔치 않지. 아주 중요한 경험이고 특별한 기억이 될 테니 일단 건강해야 해. 이 모든 말들이 언어로만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아 계속 눈을 끔벅거리며 S를 불렀다.
-많이 사랑해.
S가 처음으로 한 말. 그리고 그다음에는 자기 전 약 잘 챙겨 먹어,라고 했다. S, 당신 몸이나 잘 챙겨. 몸에 수도꼭지 같은 것이 달려있고 아마도 피인 것이 분명한 빨간 액체가 그것과 연결된 호스를 타고 넘실대고 있었다. S가 아주 고통스러운 기침을 내뱉을 때마다 액체가 위로 아래로 이동했다. 8시쯤, 원래는 면회 시간이 아니니 이제 나가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급하게 오느라 거슬리는 짐들은 수납하는 장소에 벼려놓았는데, 그것들이 모두 그대로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나가면 정말 S는 이 큰 병원에 혼자 있게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바로 밖에 나가 호텔을 찾아갈 기운이 남아있지 않아서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재빨리 괜찮아지는, 혹은 진짜로 괜찮지 않아도 그런 척을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방법이 있다. 친애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K와 1시간 통화를 했고 Y와 자기 전 통화를 했고 A에게 격려를 받았고 S에게 사랑으로 연성한 응원과 바나나우유 기프티콘 두 개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11시가 되기 전에 씻었고 1시가 되기 전에 잤다.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S를 열심히 돌보았다. 그러고 소진되거나 가라앉은 상태로 나를 방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몇 년간 당연하지 않았던 것, 나를 돌보는 일을 충실히 매듭짓고는 흰색 베딩 위에 몸을 뉘었다. 아주 확실하고 절박한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