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전한 가장은 가치를 파악해야 한다

가장 완전한 1인 가구 가장 되기

by 성당

'쉬지 않고 교수 경력을 쌓았어요.'

가장 처음 이 문장을 쓴 것은 작년 대입 논술 과외 모집 공고를 작성하던 때였다. 삶의 어떤 정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쉼표 정도는 찍어도 될 듯한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열심히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꾸준히는 살아왔으니. 그것이 나를 소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줄 이상의 이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간 사교육 시장에서 오래 일했다. 올해로는 햇수로 4년 차다. 나는 19학번이고, 올해는 2022년이니까 대학교 1학년이던 2019년부터 계속 일한 것이다. 19년 3월부터 글을 쓰는 오늘 밤 10시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물론 어떤 타개책이 있지 않는 이상, 이 일로 계속해서 생계를 유지할 것이다.

나이에 비해 너무 오랜 시간 사교육 현장에서 일했다. 나는 경력이 꽤 된다. 친구들이 대외활동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고 학교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팀플을 하는 동안, 나는 수업을 하고 수업 자료를 찾고 그것을 연구했다. 물론 내가 선택한 일이고 그것에 최선의 책임을 다한 것뿐이다. 그렇지만 특수한 케이스임은 분명하다.

내가 사교육 현장에 거의 묻히듯 일하게 된 계기는 분명하다. 생계를 스스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계에서 더 나아가 모든 재정적 이슈의 책임을 내가 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계를 스스로 책임진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말한다. 내가 받아야 할 수업료 얼마가 밀리면, 그 기간 동안 카드 값을 못 낸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기간 동안 병원에 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조금씩 저축해놓은 것이 있고 정 필요하면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가까운 가족이 있다. 그렇지만 아주 본질적으로는 그렇다는 뜻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학교도 갈 수 없다. 심지어는 노동 현장에도 갈 수 없다. 심하게 노동 착취를 당했던 2019년에는 퇴근할 때 타고 갈 지하철 값이 없어서 밤 10시 반에 퇴근해 12시에 집에 도착했다. 문자 그대로 교통비를 아끼려 한 것이 아니라, 돈이 '없었다'.

그때를 회고하면 할 이야기가 무척 많다. 불필요할 정도로 많아서 많은 부분 축약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돈이 없었고, 그래서 쉼 없이 일을 했지만 늘 노동에 정당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해서 돈이 또 없었다. 보편적인 성인이 한 달을 나는 데 충분한 돈을 벌지 못했을뿐더러 거의 빈곤한 수준이었다. 하루 종일 굶다가 출근한 학원에서 준 간식이 유일한 끼니였던 시절도 있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 알바를 했는데, 돈을 벌려면 학교를 쉬어야 했다. 그래서 학교를 쉬었다.

아직 20살이지만, 약 4번째로 일하게 된 곳에서 전업 교수 노동을 시작했다. 고향에 있는 영어학원이었다. 경력이 없고 가르쳐야 할 것이 많다는 이유로(그렇지만 수업 연구는 늘 혼자서 했다) 기본 월급에서 20만 원을 삭감한 금액을 받았다. 당시 나는 그것도 너무 큰 금액이라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그때부터는 친구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알바'라는 워딩을 사용하는 것을 금했다. 이제 내가 하는 경제적 활동은 단순히 용돈벌이를 넘어 생계를 안정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일이 되었고(그 이후에는 집을 구할 수 있을 정도의), 그것을 '알바'라고 불리는 것은 내 노동의 무게를 너무 얕잡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돌아가야 할 시점이 되어 다시 서울에 올라왔다. 그리고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프랜차이즈 영어학원에 취직했다. 당시에는 엄마가 편찮으셔서 내가 돈을 벌어야겠다는 압박에, 이상하지만, 짓눌려 살았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가 많았고 하루 종일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를 고민했다. 초반에 일했던 학원들은 내가 어리다는 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받아들여 값싸게 노동력의 정당화 근거로 삼았지만, 대부분의 학원들은 경력 있는 최소 20대 후반의 대졸자를 원했다. 나는 1학년도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던 와중 운이 좋게도 내 나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일단 한 번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긴긴 시간을 달려 학원에 갔지만 아무도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존재 자체가 불편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프런트에 가서 '면접 보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고(옆에는 레벨테스트를 보러 온 학생과 어머니가 있었다. 돈을 벌러 왔습니다. 노동하러 왔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쭈뼛대다가 원장님과 약속이 있다고 말했다.

원장님이요? 이사님이 아니고요?

이사님은 또 뭐람. 나는 더욱 하얗게 질려 그냥 원장님에 고집했다. 네, 원장님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나와 통화한 사람은 인사 부장이었다)

결국 원장과 독대할 수 있었고, 원장은 나를 보고는 제대로 이야기도 안 들어보려고 했다. 누가 봐도 정말 어렸기 때문이었다. 일단 들어는 줄게,라는 눈빛으로 준비한 시강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정말 절박하게 기회를 잡았고, 원장의 눈빛도 자세도 바뀌었다. 당장 내일부터 나오라고 했다. 월급은 내가 상상한 이상이었다.

정작 오래 일하지 못한 곳이었다. 대형 학원이었지만 체계가 없었고, 원장과 이사의 말 한마디가 어떤 공문보다도 우선시되는 곳이었다. 나중에는 학원에서 계약 때 요구하지도 않던 일을 팀장이 시키는 바람에 원래 약속한 출퇴근 시간(2시-10시)를 무척 초과해 12시에서 12시까지, 장장 하루 12시간씩을 일하는 날이 지속되었다. 팀장은 매일 연구수업을 가장한 테스트를 치르게 했고, 나는 퇴근하고도 계속 잠을 못 잤다. 엄마가 수술을 앞두게 되셨고 나는 학원을 나왔다. 팀장을 제외한 모두가 붙잡았지만 인수인계를 완벽히 하고 학생들에게 편지도 남기고 나왔다. 한 달 뒤 이사가 다시 올 수 있냐고 연락을 했고 나는 이미 학원 일에는 질릴 때까지 질린 상태였다. 마음의 준비가 안된 것 같다고 말했고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과외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과외를 시작했을 때는 정말 모든 것이 꿈같았다. 일하는 시간과 과목과 무엇보다, 커리큘럼을 내가 온전히 선택할 수 있다니. 내가 원하는 수업을 할 수 있다니. 내가 원하는 주제로 수업을 이끌어도 된다니. 학생들이 한 명 한 명 추가되었고 행복하게 과외를 했다. 과외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당시 나는 사교육과 공교육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교육 강사들이 공교육 교사들만큼의 고매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공교육 교사들이 사교육 강사만큼 개인적인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공교육의 가치는 말 그대로 가치로 평가된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사랑, 인기, 졸업 후 계속해서 찾아오는 아이들이 공교육 교사의 수업이 얼마나 가치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사교육의 가치는 나로 평가된다. 내가 하는 수업의 가치는 또한 시장의 논리로 평가된다. 돈이 내 수업을 가치 매긴다는 것이다. 비싼 수업을 할수록 희소가치가 있고, 값싼 수업은 그것이 없다.

너는 돈 벌려고 학원에서 일해? 친구였던 아이가 물어봤었다. 20살이던 2019년이었다. 당연하지. 친구는 나를 경멸하듯 바라봤다. 그 눈빛을 잘 안다. 다정하게 상담하던 학부모님께 수업료를 이야기하면 갑자기 찾아오는 정적. 갑자기 느껴지는 냉소가 그런 유의 것이었다.

나는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돈 벌려고 과외를 한다. 만약 내가 돈을 벌 목적이 아니라면 교육 봉사만 하고 살았을 수도 있다(물론 교육 봉사와 후원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가진 재능을 사회에 공헌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생계를 유지하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과외를 한다. 당연하지만, 올바른 직업윤리와 알찬 수업은 기본값이다. 돈을 벌겠다고 수업을 한다는 말이, 그만큼 자본에 잠식되고 찌든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돈을 벌고 학생은 수업을 듣고. 우리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해 수업료를 받치고 서 있는다. 수업료의 무게와 그 안에 담긴 기대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끔씩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가령,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학생이 더 이상 수업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수업을 관두어야 할 때 느끼는 갈등이 그것이다. 시장 논리에 의하면, 그럴 때는 그냥 학생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다른 학생을 모집하면 된다. 그렇지만 학생과 나누었던 감정적 교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학생에게 더 이상 수업료를 내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주 즐거운 수업을 했다. 우리는 지금 아주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와 같은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상황상 과외비를 온전히 내기 어렵다고 말해준 학생들은 과외비를 대폭 할인해 주었다. 선뜻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내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와, 그럼에도 수업하고 싶은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작년에 수업하던 15명의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내가 정한 과외비보다 적은 금액을 냈지만, 나는 더 이상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았고 과외로 가끔씩은 효능감을 느끼기도 했다. 과외비를 내는지에 따라 수업 수준이 달라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올해도 역시 과외비를 온전히 낼 수 있는 학생보다는 나와 잘 맞는, 내 수업이 꼭 필요한 학생들을 찾겠다는 일념 하에 열심히 상담을 진행하고 과외 공고를 올렸다. 그리고 지난해 입시 때 너무 힘들어서 입시와 별개의 과목을 하나 더 신설했다. 그렇게 영어 과외의 문을 열었다.

공고를 작성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꽤나 경쟁적이고 훌륭한 스펙을 가지고 있구나. 특히나 내 나이와 학번에서 찾아보기 힘든 스펙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아주 큰 장점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돈을 적게 받으면 안 되겠다고 결론 내렸다. 당장의 생계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과외 시장에서 유능한 대학생의 노동 가치가 하향평준화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교육받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고 여기고 교육 평등을 주장하지만, 과외 현장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경력과 스펙을 가진 다른 젊은 과외 노동자가 '저 선생님도 이만큼 밖에 안 받던데요'라는 이유로 수업 가치를 평가절하당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영어 과외를 시작하면서 과외 상담이 무척 잦아졌는데, 대부분 과외비를 부담스러워하셨다. 어떤 분께는 계속해서 할인을 해드렸음에도 부담스러워하셔서 무산된 적도 있다. 다른 수업을 많이 들어서 과외비가 부담스럽다고 하셨다.

나는 계속해서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가치를 찾아 나설 것이고, 그에 준하는 활동으로 교육 봉사와 사각지대에 있는 청소년을 위한 후원을 계속할 것이다. 그렇지만, 과외 선생님을 찾을 목적으로 과외 어플에 접속했다면 응당 서비스에 걸맞은 가치를 맞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시장의 논리니까. 그곳에서 교육 평등을 외치는 것은 일면 부질없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런 문자도 보낼 수 있었다.

'어머니, 통화 마치고 저도 생각을 좀 해보았습니다. 우선 제 커리큘럼의 가치를 높에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정말 수업의 목적이 같은 분을 뵙기가 쉽지 않거든요. 정말 즐겁고 감사한 통화였습니다. 다만 저는 대학 학과 전공자가 아니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평생 영어를 전공하다시피 살아왔고, 가르치는 일도 전문가예요. 또 마음에 드신 만큼 커리큘럼이 특별하기에 연구 시간도 많답니다.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연구에 쏟아요. 그래서 전반적인 수업 준비가 몸에 익어 연구 시간이 줄어들면 과외비도 조정이 될 수는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빈틈을 찾아 메꾸고 공부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그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네요. 그래서 단순 수업 시급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물론 수업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장담하지만요. 제가 제안 드린 할인율은 사실 다른 수업에 비해 너무 무리한 할인율이기는 했지만 할인을 제안 드렸고, 어머니께서는 아마 많이 부담스럽다고 느끼셨을 것 같아요. 그 이상 할인하는 것(사실 마지막으로 제안 드린 금액도 저에게는 조금 부담이 된답니다)은 제가 불가해서, 감사하다는 인사드리면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좋은 선생님을 제가 알면 연결 드리면 좋겠습니다만 아쉽게도 알고 있는 선생님이 안 계셔서요. 꼭 건승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도 어머니도 건강한 한 해 보내세요.'라는 채팅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과외비 협의는, 최소한 내가 원하지 않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스스로에게도 말이다.

나는 내 생계를 잘 보전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내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거나, 최소한 깎아내리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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