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해석

by 다크브라운

우리는 흔히 과거를 시간 속 뒤편에 놓인 영역으로 상정한다. 이미 지나간 일, 더 이상 수정할 수 없는 기록. 그러나 이 전제 자체가 틀렸다.

과거란 멀어진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작동하는 해석 체계다.

기억은 저장된 데이터가 아니다.

그것은 선택되고, 삭제되고, 강조되고, 반복적으로 다시 쓰이는 구조적 편집 행위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사실은 옅어지지만, 의미는 오히려 선명해진다.

결국 우리가 붙드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구성된 자기 서사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전이 일어난다.

우리는 과거가 나를 규정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내가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과거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즉, 과거는 “이미 주어진 진실”이 아니며,

지금 해석되는 방식에 따라 계속 새로 생성되는 변수다.

그렇기에 고통스러운 기억이 계속해서 현재를 침식하는 이유는

그 사건이 상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상처를 해석할 언어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은 경험은 계속 현재로 침투한다.

긍정적 기억 또한 자유롭지 않다.

“그때의 나는 좋았다”라는 문장은 회상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기준점의 고착이다.

성공의 기억은 위안처럼 기능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가능성을 조용하게 압축한다.

우리는 그때의 조건을 재현하려 들고,

이미 달라진 환경 속에서도 과거의 모양으로 다시 살아가려 한다.

그 순간 기억은 자원에서 제약 조건으로 전환된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더 깊어진다.

나는 기억에 의해 설명되는가,

아니면 기억을 해석함으로써 나를 설명하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첫 번째 문장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은 입력된 데이터를 그대로 저장하지 않는다.

잊고, 덜어내고, 반복하며, 재배열한다.

그래서 더 정확한 명제는 이렇다:

기억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의미 부여 방식이다.

그리고 이 문장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재해석의 연속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삶이 윤회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가 과거를 반복해서 겪는 것이 아니라,

한 번도 수정하지 않은 해석 구조를 반복해서 실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란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기존의 기억을 다른 문장으로 다시 쓰는 일이다.

그렇다면 구원의 방향도 명확해진다.

치유는 망각이 아니라 재구성에 있다.

구원은 거창한 사건의 형태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어느 날 문득, 오래된 서랍을 열어

더 이상 맞지 않는 문장을 접어 넣는 동작처럼 온다.

과거는 불쑥 되살아나는 유령이 아니라,

묵혀둔 필름처럼 현상을 기다리는 이미지다.

빛을 비추기 전까지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

그러니 나는 이제 기억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빛을 어디에 비출지 선택하는 사람이다.

그때 비로소 과거는 나를 데려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이름을 붙여가는 지도가 된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나는 이해한다.

기억은 끝난 시간이 아니라,

아직 문장이 완성되지 않은 나의 미래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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