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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훈의 중국평론 Jun 27. 2022

혐중한다고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닌데...


따지고 보면 시작은 쟤네들이 먼저 했다.


경중안미(經中安美,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과 함께한다는 양다리 프레임) 한다고 미국산 미사일 하나 촌구석에 가져다 놓은 것이 빌미가 되어 시작된 ‘한한령’.


중국시장 특수로 짧은 시간 내에 여러 체급을 갈아치운 한국의 경제는 이 한방으로 치명타를 입었다.


둘만 모여도 시끄럽고, 아무렇게나 침 뱉고, 아무렇지도 않게 새치기하는 중국인이 가뜩이나 속 좁은 우리 눈에 탐탁지 않았는데 이렇게 어느 날부터 너그러웠던 그 지갑까지 닫아버리니 더 미운털이 박혀버렸다.


엄밀히 말하면 좋게 보인 적 없고, 우리와 동등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중국에 그간 우리가 보여준 환한 웃음은 철저히 그들이 가져다준 경제적 만족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웃는 얼굴로 살포시 걸친 양다리에 제대로 뿔이 난 중국은 좀스러운 정치적 보복으로 침을 뱉었다.


백번 양보하고 천 번 이해하면 중국의 한한령도 납득은 간다.


하지만 그런 양보와 이해가 없어도 우리가 중국을 혐오하는 이유는 세계가 공감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대놓고, 더욱 당당히 중국을 혐오한다. 마치 이게 무슨 21세기의 트렌드라도 되는 양 말이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을 보면 우리의 이 혐중이 유행의 도를 넘어 ‘띨띨한 짓거리’ 수준까지 넘어와 있는 것 같기에 마음이 안타깝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형제처럼 지내는 중국인도 있고, 30년을 살며 중국이 한국보다 익숙한 땅이지만, 나 역시 중국과 중국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이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중요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내 일가친척도 아니고 내 민족 동포도 아닌데,


득 될 것 없는 이 감정을 끄집어내야 할 순간이 긴 중국 생활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이코패스 아니냐고 반문하지는 말아주기 바란다.


느끼는 감정은 있으나 꺼내놓고 살만한 때가 못 됐고, 감춰두고 지내야 할 이유는 충분하기 때문이니까.


그건 아마도 어린 시절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말을 처음 접하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깊이와 예리함에 처맞은 기억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일 수 있다.


도광양회, 검광(劍光)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칼집에 숨기고 그믐밤 어둠 속에서만 실력을 기른다는 뜻으로 최고의 고수가 될 때까지 짱박혀 실력을 키우고 함부로 나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숨어 있는 말이다.


그리고 덩샤오핑은 다 망해 무너져가는 중국의 생존을 위해 이 무서운 결의를 외교의 구호로 내걸었다.


물론 이것이 포함된 구체적인 방침들을 내놓는데,


1. 냉정하게 관찰하라 (冷静观察)

2. 차분히 행동하라 (稳住刻步)

3. 침착하게 대응하라 (枕着应付)

4. 숨어서 실력을 키워라 (韬光养晦)

5. 꼭 필요한 경우만 나서서 성취하라 (有所作为)


로 구성된 ‘20字 방침’이 그것이다.


‘눈치를 기반으로 한 은밀한 준비’, 바로 이것이 지금의 G2 국가 중국을 만들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덩샤오핑의 유지가 재가 되어 사라진 지금, 중국은 일등 or 삽질의 줄타기 중이다.


너무 이른 때에 칼을 뽑아 든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거둬들일 때를 찾은 것인지는 앞으로의 시간이 답을 해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주변 초강대국들이 충돌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땅덩어리도 작고, 자원도 인구도 턱없이 부족한 우리는 생존과 승리를 위해 중국을 대상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보이는 유아적 감정 표출이 득이 되는가? 중국과 중국인보다 나은 수준이라 말할 수 있는가?


일본의 혐한 © News1


무엇이 되었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다름없는 이 형국에 혐중이라는 계획 없는 도발과 적의의 노출이 참으로 가볍고 불안하게만 느껴진다.


싸워서 이기고자 한다면 말이다, 미간에 정확히 한방을 꽂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준비와 집중이 필요하다.


그리고 거기에 유치한 감정 따위는 낄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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