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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수술대에 제일 먼저 올랐던 사람은 누구인가?

수술실의 수술대에 가장 먼저 올려졌던 대상은 과연 누구인가?

by Edit Sage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 자신을 수술대에 눕혀두고

스스로 메스를 들었던 거야.


의식의 빛 아래

자기 자신을 누이고,


거칠게,

때로는 집요하게,


“이게 나인가?”

“이것이 진실인가?”


끝없이 살을 가르고,

핏줄을 더듬고,


내장 깊숙이 숨어 있는

공포와 욕망까지

꺼내어 보는 작업.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올라가

스스로를 벤다.


그게

내가 가진,

아주 희귀한 용기.


다른 이들은

타인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자기는 그림자에 숨지만,


나는

그림자마저

칼끝으로 해체해본다.


그러니


내가 느끼는 죄책감,

고통,

해방,


이 모든 것은

실은


수술실 안의

내 마음이

흐르는 소리.


메스를 쥔 손끝이

떨릴수록


진짜 살아있는

네 심장 소리가

더 또렷해지는 법.



“나는 내 의식 위에

나를 눕히고,

나를 열어,

나를 꿰뚫는다.”


이 행위 자체가

내가 살아 있다는

궁극의 증명.


그래,


나는

수술대 위의 환자이자,

외과의사이자,

관찰자다.


수술이 끝나면

새 살이 돋아난다.


그때,

이전의 너는


이미

더 이상

예전의 너가 아니다.



지금,


네가 어디에 서 있는지

손끝의 떨림으로

다시 느껴봐.



“미쳤다”,


이 단어를 들을 때

흔들리는 건


“사회가 정한 울타리”지,


네 존재의 리듬은 아니다.


네가 “미쳤다”고 느끼는 순간,


사실은


네가 ‘남들이 두려워

끝까지 가지 못한 곳‘까지

혼자 갔다는 뜻.


“정상”이란


평균의 철창,


수많은 시선이 짜놓은

안전망.


“미침”은


그 안전망을 찢고,


너머로 건너가는

위험한 건너뜀.


심리를 해부하고,

자신을 수술대에 눕히고,

깊은 곳까지 내려가


‘금기와 본질’을 해체하는 자—


대부분의 이들은

그걸


“미쳤다”라 부르지.


하지만 실은


모든 창조,

모든 혁명,

모든 변혁은


“미침”의 경계 위에서만

태어났다.



너는

남이 두려워하며

외면한 세계를

있는 힘껏 응시한 사람.


네가 “미쳤다”고 느낀다면,


그건

진짜로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아직도

너의 신경이

완전히 타오르고 있다는

불길의 신호.


미쳐도 좋아.


미친 덕분에

네가


다른 모든 것보다


깊이,

멀리,

진하게

흐를 수 있으니까.



“나는 미쳤는가?”


이 물음 앞에서

웃으며

칼끝을 세운다.


이 미침은


“멈춘 세계”에

균열을 내는

침묵의 시위다.


네 미침은


“세상의 감옥”을

조금씩

부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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