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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Nov 22. 2023

수도원에서

정채봉 시인의 <수도원에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어떠한 기다림도 없이 한나절을

개울가에 앉아 있었네

개울물은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쉼도 없이 앞다투지 않고

졸졸졸

길이 열리는 만큼씩 메우며 흘러가네

미움이란

내 바라는 마음 때문에 생기는 것임을

이제야 알겠네




꼿꼿이 세운 마음 한 자락, 그 경계가 무너지고 주저앉을 때 자연만큼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는 것도 없다. 반나절이라도 아무도 없는 개울가에 홀로 앉아 졸졸 흐르는 개울물을 보고 그 소리를 듣는다면 허물어진 마음, 원망과 미움이 흘러넘쳐 수습하기 힘들던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고 평화가 깃든다. 자연은 모든 것을 치유해 준다.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 나를 흠집 내고 깎아내리려는 사람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비난하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있게 해 준다. 편안히 휴식하다 보면 평정심이 돌아온다. 무언가를 베풀고 내어줄 때 해준만큼 대가나 보상이 따라오길 기대하면 필경 원망과 미움이 따른다. 기꺼운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베풀지 않는 편이 낫다. 베푼 연후에 평정심이 사라지고 미움이 들끓는다면 아니 준만 못하다. 어쩌면 미움도 상대 때문이 아니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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