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면 기분이 맑아진다. 뺨을 간지럽히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는 바람, 그 바람에 실려오는 향긋한 풀내음,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과 나뭇잎, 바람에 후드득 떨어져 휘날리는 나뭇잎 사이를 걷다 보면 어깨에도 머리에도 나뭇잎 비가 소복이 내린다. 풀이 뿜어내는 향기는 청초하고 향긋하다. 정신을 맑게 한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풀에게, 나뭇잎에게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계절마다 부는 바람의 의미에 대해, 그 차이에 대해 생각한 적 없었다. 바스락바스락 발밑에 밟히는 떨어진 낙엽과 단풍잎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마치 깊은 숲 속에 홀로 있는 것 같은 고즈넉함이 밀려온다.
바람에 뒹구는 낙엽, 제법 쌀쌀한 아침 바람을 맞으면 폴 발레리의 시구가 생각난다. 폴 발레리는 <해변의 묘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람이 일어난다!… 살아야겠다!' 뺨에 와닿는 바람은 잃어버린 생의 의지를 불태운다. 삶은 바람처럼 자유로운 것, 저 바람에 몸을 맡기면 내 삶의 무게도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질까.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자신의 직업을 '산책가'라고 했다. '산책가'라는 직업이 있다면 나 역시 산책가가 되고 싶다. 나뭇잎은 떨어져 다음을 기약하는데 이름 모를 들풀과 야생화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견고히 지키고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춰 들여다보면 생명의 충만함이 느껴진다. 모진 바람과 폭우, 사람들의 무시와 냉대, 때로는 자신을 지르밟고 갔을 아픔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그 자리에서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화려하고 예쁜 꽃만 보였다. 들풀과 야생화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나이가 되자 비로소 들풀과 야생화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이 보인다. 화려한 꽃에 밀려 관심조차 받지 못했지만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속도로 묵묵히 생을 감당해내고 있었다. 어느덧 이름 모를 들풀과 야생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향기와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계절을 느끼며 걷다 보면 살아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자연과 교감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생겨 감사한다. 한창 일하러 다니던 시절에는 느낄 수 없던 호사다. 그 시절에도 고개만 젖혀 들면 언제든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세상사에 분주한 마음으로 인해 쉽지 않았다. 무에 그리 바쁘다고 계절의 순환과 나무의 변화를 눈에 담지 못하고 살았을까.
오늘 아침은 저 부는 바람을 따라가고 싶다. 팔랑이며 바람 따라 뒹구는 낙엽처럼 정체된 삶에도 바람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바람을 쫓아가고 싶다. 구름을 움직이는 이도 바람이요, 공기를 순환시키는 이도 바람이요, 정체된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도 바람이다. 저 바람에 나를 맡겨보고 싶다. 일렁이는 바람이 또 다른 운명의 장으로 나를 인도해 줄까? 발길 닿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 내가 다시 산다면 시간이 나는 대로 산책하며 자연과 교감하며 살 것이다. 자연만큼 영감을 주고 생명력을 주는 것도 없다. 자연과 교감하다 보면 쉼표 하나 찍게 되고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다. 이왕이면 '산책가'라는 직업으로 살아보고 싶다. 폴 발레리의 말처럼 바람이 분다. 아니, 바람이 일어난다, 오늘 하루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