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 그런 일은 못해'라고 규정짓고 한계 지으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다. 심리학에서는 라벨링이 결국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복되는 말을 들으면 생각을 규정해 결국 그러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 실제 현실로 실현될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부지런하지 못한 자녀의 모습에 실망해 "저 게으른 녀석"이라고 라벨링을 붙이면 자녀는 "나는 원래 게을러"라고 받아들여 부지런한 모습과는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규정짓고 부를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대방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소성이 풍부한 유소년기 아이들은 부모나 선생님과 같은 권위 있는 성인의 말을 그대로 내면화하여 자신의 모습을 규정할 수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 속담이 있다. 그만큼 말이 지닌 힘은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말은 그 자체로 파동이 되기도 하고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의미 있는 타자인 부모나 선생님의 말도 그럴진대 자신이 자신을 규정한 말은 어떻겠는가.
김춘수 시인이 그의 시 <꽃>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몸짓에 불과했지만 이름을 불러준 후에는 내게로 와 꽃이 된 것처럼 라벨링을 하면 비로소 의미가 생기고 의미 있는 존재,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된다. 불러주는 것에 걸맞게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바뀐다. 이왕이면 인생이 풍요롭고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도록 아름답고 긍정적인 언어로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내 이름도 불러 줄 필요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이름에 걸맞은 꽃을 피우는 것처럼 나 역시 나의 믿음에 맞는, 내가 불러주는 그 이름에 합당한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불러주는 것에 걸맞게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변할 수 있으니 이왕이면 그들의 인생이 풍요롭고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도록 아름답고 긍정적인 언어로 그들의 이름을 불러줄 필요가 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사람은 누군가 기대하는 대로 행동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 자신에게 그리고 소중한 가족들, 친구들에게 가급적이면 긍정적이고 희망찬 라벨링을 하고 싶다. 내가 다시 산다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거나 '나는 이런 건 못해'라는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고 낙인찍기보다 좀 더 긍정적 언어로 라벨링 하려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