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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Nov 12. 2024

함부로 라벨링 하지 않을 것이다.


살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구나 스스로를 규정짓기도 하고 누군가를 규정하기도 한다. 라벨링 효과(labeling effect)란 상대방이 붙여놓은 라벨에 의해 자신에 대한 개념과 행동이 달라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상품에 라벨을 붙이면 의심하지 않고 라벨에 기재된 대로 믿어버리는 것처럼 누군가 나에게 어떠한 라벨을 붙이면 그대로 믿어버리는 현상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 "너는 인내심이 많구나!", "양보를 잘하는구나!"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행동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스스로 "나는 ○ ○해"라고 라벨링을 하거나 타인이 나에게 "너는 ○ ○해"라는 말을 들으면 마치 자신이 원래부터 그런 사람인양 행동하게 된다. 늘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원래 그런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든 상황과 환경이 변하면 적응하기 위해 변하기 마련이다. 흔히 무엇인가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거나 변화해야만 할 때 가장 좋은 핑곗거리가 되는 것이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말이다.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하란 말이야!"라는 볼멘소리를 하거나 "나는 원래 이런 건 안 해 봐서 못해"라는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부지런하거나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래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상황과 필요에 의해 바뀌고 변하는 것이 사람이다. 태어날 때부터 원래 그런 걸 해보고 사는 사람도 많지 않다. 처음에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부터 하게 되고 행하는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원래 그랬지만 변하고 나아질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안 해 봤지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하고 싶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다. 아는 지인 중 한 명은 어린 시절부터 벌레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벌레만 보면 소리를 지르고 무서워 도망 다닌 전력이 있다. 주택에 살다 보니 자주 벌레가 출몰하는데 남편은 자신보다 더 벌레를 무서워하고 아이들도 벌레만 보면 달아나버려 결국 원하지 않아도 벌레 퇴치 전담반이 되었다고 한다. 하도 벌레를 많이 잡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고 한다. 벌레 잡는 데만 요령이 필요한 게 아니라 죽은 벌레 처리에도 요령이 필요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 그런 일은 못해'라고 규정짓고 한계 지으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다. 심리학에서는 라벨링이 결국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복되는 말을 들으면 생각을 규정해 결국 그러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 실제 현실로 실현될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부지런하지 못한 자녀의 모습에 실망해 "저 게으른 녀석"이라고 라벨링을 붙이면 자녀는 "나는 원래 게을러"라고 받아들여 부지런한 모습과는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규정짓고 부를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대방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소성이 풍부한 유소년기 아이들은 부모나 선생님과 같은 권위 있는 성인의 말을 그대로 내면화하여 자신의 모습을 규정할 수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 속담이 있다. 그만큼 말이 지닌 힘은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말은 그 자체로 파동이 되기도 하고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의미 있는 타자인 부모나 선생님의 말도 그럴진대 자신이 자신을 규정한 말은 어떻겠는가. 



 

김춘수 시인이 그의 시 <꽃>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몸짓에 불과했지만 이름을 불러준 후에는 내게로 와 꽃이 된 것처럼 라벨링을 하면 비로소 의미가 생기고 의미 있는 존재,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된다. 불러주는 것에 걸맞게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바뀐다. 이왕이면 인생이 풍요롭고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도록 아름답고 긍정적인 언어로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내 이름도 불러 줄 필요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이름에 걸맞은 꽃을 피우는 것처럼 나 역시 나의 믿음에 맞는, 내가 불러주는 그 이름에 합당한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불러주는 것에 걸맞게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변할 수 있으니 이왕이면 그들의 인생이 풍요롭고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도록 아름답고 긍정적인 언어로 그들의 이름을 불러줄 필요가 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사람은 누군가 기대하는 대로 행동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 자신에게 그리고 소중한 가족들, 친구들에게 가급적이면 긍정적이고 희망찬 라벨링을 하고 싶다. 내가 다시 산다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거나 '나는 이런 건 못해'라는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고 낙인찍기보다 좀 더 긍정적 언어로 라벨링 하려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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