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병옥 Feb 13. 2023

인생의 타임라인 그리기

보이는 시간 만들기

 나에게 남은 시간인 하늘색 부분이 길지않다

바람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움직이는 나뭇가지나 흩날리는 머리칼이나 나부끼는 옷자락 등으로 바람을 볼 수 있다.

시간의 흐름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느낄 뿐이다.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일상들, 이를테면 일주일 단위의 취미 배우기,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 찾아뵙기가 체감상 얼마나 자주 오는지를 보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간접적으로 본다. 엊그제 재활용 물품을 분류한 것 같은데 벌써 일주일이 지난 것이다. 나이가 들면 더하다. 두 달에 한번 하는 모임이 어느새 다가오고, 일 년에 한 번 가는 성묘가 벌써 다가왔다.

해야 할 일을 하느라 등 떠밀려서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시간을 도둑맞고 있는 것 같다. 젊었을 때는 넘치는 것이 시간이라 아까운 줄 몰랐던 것이 이젠 얼마 남지 않아, 조금 남은 사탕처럼 아껴 먹어야 하는 귀한 재화라는 것을 느낀다.


장년에 접어들었을 때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물론 죽음이나 질병이나 사고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연약한 운명의 인간에게 이 무슨 오만한 발상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작업을 해보면 내 나이에는 특별한 불행이나 사고가 없어도 이미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간접적인 ‘메멘토 모리’ 구호를 내가 보기 쉬운 장소에 붙여 놓을 필요가 있다.


먼저, 자신의 일생을 타임라인으로 그려본다. 역사 시간에 많이 보던 시대별 나라별 타임라인도 있고 각종 주제별로 많은 타임라인이 있다. 이런 타임라인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인데 나에게는 내 인생이 제일 중요하므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과거만 있지 않고 미래도 포함되는 일이므로 오른쪽 부분은 열어놓는다. 내가 언제 죽을지 아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죽으니 무한대로 길지는 않다. 라인의 왼쪽 부분 어떤 시기에 어떤 굵직한 일이 있었는지도 표시한다. 대학 입학, 취직, 결혼, 아이들 출산, 부모님 별세 등 큰 일들을 시기별로 간단히 기록한다. 직선의 구간 길이는 시간과 비례해서 그린다.

의외로 현재 시점에서 통계적으로 스스로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알려진 시기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음을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된다. 모양이 마치 전기 기구나 청소기 등에 표시된 배터리 모양 같고 남은 수명이 남은 전력에 해당되는데 길이가 길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배터리는 충전이 되지만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시간은 충전이 되지 않는다는 것만 다르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산다. 따라서 이 작업은 시한부 환자에게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과 비슷한데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삶을 정리할 작업을 하게 하는 것이다. 죽을 환자가 자신은 다시 회복해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다는 헛된 꿈을 꾸다가 갑자기 생이 끝나는 경우처럼 어이없는 상황은 맞고 싶지 않다.


다음은, 일력과 달력과 연력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날마다 체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의외로 시간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는 데 도움이 된다. 일력은 현재를, 달력은 계절을, 연력은 나이를 보여준다. 연력에 하루하루를 체크하다가 보면 어릴 때는 그렇게 길던 1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순식간에 연력을 바꿀 때가 온다. 1년이 이렇게 빨리 간다면 남아있는 몇십년도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빨리 흐르는 시간이, 심지어 얼마 남아있지도 않다는 것을 알면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마음과 물질의 쓰레기나 만들고, 남들에게 자기 생각 강요하고, 돈과 지위에 집착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는 것이다. 허세 부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인생의 의미도 찾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존중하고, 생명의 터전인 지구도 아끼고, 우리 후손도 잘 키우고 등등 좋은 일만 하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이다.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한 지 만 일 년이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난 일 년이 지나가는 속도는 느렸었다. 일주일씩, 한 달씩 뭉텅이로 지나가던 시간이 멈칫거리며 속도를 늦춘 것은 내가 글을 쓰며 과거와 현재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나의 인생 타임라인에는 브런치를 시작한 시점이  표시되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