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부족했지만, 학생들에게 담임으로서는 민주적인 사회생활을 배우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교과인 과학으로는 과목을 넘어서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노력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사는 지식을 가르치는 일과, 아이들의 인성을 지도하는 일과, 행정적인 일까지 맡아서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교사의 마음을 알아주는 학생들과 그들이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어서 교사는 매우 보람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직을 한 이후에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학교 사회가 궁금하기도 해서 잠시 돌아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한적이 있었는데, 더 이상 내가 예전에 알고 지냈던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학생들의 대부분이 수업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심지어 필기도구와 노트를 준비시키는 것도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애써서 준비한 과학실험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 학생들을 보며 걱정이 되었고 태도를 지적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학생들도 많아서 놀랐었다. 근무 기간이 끝난후, 솔직히 다시는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시기가 사춘기 시기이니 집에서도 부모와의 갈등도 많은 시기이다. 학교에 보내놓으면 일단 눈에서 벗어나니 안심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그저 일정 시간 아이들을 보호하는 기관이고 교사는 학생들의 교육자가 아니라 보모의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요즘 사람들은 궁금하면 초록색 창에 궁금한 것을 넣고 검색하여 결과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성적도 잘 받으려면 학원이나 과외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은 어떻게 그 지식을 형성하는가 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결론만 외우는 것은 정보에 불과하다. 그래도 학교에서 하는 교육은 기본에 충실하여, 한 가지 결론이 어떻게 나오는지의 과정까지 통째로 가르치는 일이다. 그런데 성급한 사람들은 과정은 상관없이 많은 지식을 빨리 얻기를 바란다.
‘선생’이라는 말을 그대로 풀면 먼저 태어난 자라는 뜻이다. 먼 과거에는 오래 산 사람들이 가진 지혜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열쇠였다. 그러니 선생의 의미는 '지혜를 가진 어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요즘은 지혜를 거부하고 많은 정보만 선호하는 시대이다. 그러니 교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교육의 전제는 ‘합리적인 권위’이다.
권위라면 학을 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윗세대들이 비합리적인 권위로 우리를 괴롭혔던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부모도 선생도 그들의 의견에 의문을 가지면 무조건 때렸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맞고 자란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서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또는 이유도 없이 다른 사람들을 때린다.
그러나 합리적인 권위란 이러한 비합리적인 권위 의식 말고 나이 든 사람들이 먼저 살아본 사람의 지혜와, 이성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으로 어린 사람들을 가르치는 근거 있는 권위이다. 이것이 없이는 누구를 가르칠 수 없다. 이것을 부정한다면 교육 자체가 성립할 수가 없다. 이것을 못 믿는다면 그냥 부모들이 집에서 스스로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부모들이 개인적으로는 교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들이 크게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부모에게 휘둘려서 권위를 잃은 교사를 어떤 학생들이 따르겠는가. 권력과 돈이 있는 학부모에게 휘둘리는 교사를 본 학생들은 정의, 존중 같은 것은 무시하고 세속적인 가치를 따르는 어른으로 커서 친구를 무시하고 약자를 무시하고 결과적으로는 늙은 부모도 무시하게 된다. 교사를 무시하는 학부모는 합리적인 권위를 무시하는 사람이고 결국 자식들에게미래에는 자신들도 무시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었던 것이고, 교사는 돈은 많지않아도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어느덧 교사가 극한 직업이 되었으니 씁쓸한 마음이 든다.
젊은 교사가 고통을 받다가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니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애도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는 교사가 체벌을 해도 괜찮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이 있어서 이런 일이 없었다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지만, 여전히 체벌을 허용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사의 합리적인 권위를 해치는 어떤 행위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은 당연히 정학 처분을 내려서 다른 학생들의 피해를 막아야 하고, 학생이 하극상의 행동을 했을 때 퇴학이나 학생부 기재 같은 지워지지 않는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할 것이고, 학부모가 직접적으로 교사에게 영향력을 가할 수 없도록 학교마다 중재 기관을 두고 어떤 학부모가 어떤 청원을 했는지 반드시 기록하고 신원을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에서는 학생이 말썽을 부리면 교장이 그학생을 자신의 사무실로 부르고 학부모를 소환해서 비행을 알리고 정학 처분을 내린다. 우리나라는 학생이 말썽을 부리면 힘 있는 학부모가 교장실에 와서 교사를 소환하고 합동해서 교사를 야단친다. 경험이 없는 젊은 교사들이 이런 부당함과 자괴감을 소화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란 학생들이 나중에 어떤 어른이 될까 생각하면 진심으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