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 19로 인한 새로운 풍속들이 많았다.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남의 눈치 보며 옷소매에 하고, 사람 만나는 일 줄이고, 환기 자주 하는 것 등등.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야 하는 상황, 즉 지하철을 타거나 물건을 사고 돈을 주고받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서빙받을 때, 서로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이중으로 바이러스를 차단한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코비드 초기에 우리나라에 비해 다른 서방국가의 감염 속도가 빨랐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그들의 마스크 사용율이 낮았던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마스크를 덜 썼던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그들은 마스크를 환자나 의료인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더 나쁜 경우는 강도 같은 범죄인이나 쓰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실한 소통을 하려면 표정이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기는 나도 과거에 어떤 시위에서 시위대가 신분을 드러내기를 꺼려서 마스크를 썼을 때 비겁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명분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되었던 것이다.
또한 나중에는 적응했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던 초기에는 마트 계산원과 대화하는 것조차도 힘들어서 몇 번씩 내가 한 말을 되풀이하거나 상대방 말을 다시 물어보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그동안 사람들은 비언어적인 요소로도 소통을 많이 했었다는 걸 느꼈다. 사람의 입 모양과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매우 답답한 일이었다.
이런 면에서 특히 어린아이들이 많이 걱정되기도 하였다. 한창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할 시기에 사람의 얼굴을 가려놓으니 정서 발달이 늦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이다.
심리학에서 사회적인 역할을 페르소나라고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시간 장소 경우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를 장착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같은 얼굴에다 눈빛과 표정이 약간 달라지는 경우이다. 잘 들여다보기만 하면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탈춤이나 베니스의 가면극처럼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가면을 쓴 경우, 그 사람의 진심은 완전히 가려지고 평소의 그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과감한 행동과 말도 할 수 있고 허용이 된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마스크도 완벽한 가면일 수 있다. 그래서 마스크로 가려놓으니 소리는 들려도 무슨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생각을 짐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이 눈에 있다고 생각한다.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에게는 입 모양이 더 중요하다. 웃는지 화내는지가 입 모양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자에 쓰는 이모티콘도 우리 것은^^눈 중심이고, 서양 것은:) 입 중심인 이유가 그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스크는 눈이 아니라 입 주위를 가리는 장치인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개성을 최고로 아는 르네상스인의 후예인 서방 사람들은 코비드 초기에 이러한 몰개성과 표정의 박탈을 바이러스로부터의 안전과도 바꾸지 못했던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성과 이름이 사라지고 번호로 불리는 존재가 된 복제 인간들 같은 동질감과 편안함도 살짝 생겼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바이러스 앞에서는 어느 인종이거나,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똑똑하거나 덜 똑똑하거나,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다 평등하다는 인류의 일체감을 맛보기도 했다.
화장을 안 해서 편한 점도 있었다. 원래도 화장을 잘 안 했지만 평화롭던 시절, 남들은 곱게 단장하고 다니는데 나만 우중충한 얼굴로 다니는 게 신경 쓰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시절에는 대부분 화장을 안 했다. 아마도 립스틱 판매량도 엄청 떨어졌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감정은 잠깐의 재미있는 생각일 뿐, 빨리 마스크를 벗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마음껏 웃으며 마주 앉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고 침 튀기며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이제 드디어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드러내는 시절이 왔다.
상대방의 감정도 보이고 내 감정도 얼굴에 드러나게 되었다. 무방비로 처져있던 입꼬리도 살짝 올려보고, 과도하게 분명한 발음을 하려고 했던 말투도 고쳐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