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둘이 운동을 위해 함께 산책하거나 영화를 보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남편이 예술 쪽에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어서 내가 마음먹고 계획을 세우지 않는 한 미술관이나 음악회는 갈 일이 많지 않다. 오죽하면 결혼 전에 내가 초대한 음악회가 남편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음악회였다고 했을까.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회가 있다고 해서 일단 예약을 하고 밀어붙였다. 요즘은 관람객이 몰리지 않게 시간별로 인원을 제한해서 예약을 받으니 참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출근 시간이 살짝 지나서 도착할 수 있는 시간으로 예약을 하고, 좌석버스를 타러 나갔다. 이제 나를 꾸미는 일을 거의 하지 않으니 화장을 하기는커녕 선크림도 대충 바르고 정류장으로 서둘러 나갔다.
아직 버스가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남아있는 것 같아 정류장 유리 칸막이에 나를 비추어 보니 대충 바른 선크림이 여기저기 뭉쳐있는 것이 아닌가. 뻔뻔한 아줌마 정신으로 유리를 거울삼아 크림을 펴서 바르고 있을 때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그분은 “이거 빌려드릴게요.”하면서 손거울을 내미셨다. 무안하기도 하고 이미 다 바르기도 해서, 다했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잠깐 동안 피부 이야기랑 나이 이야기랑 선크림의 종류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나보다 손위라고 하시는데 너무 친밀하지는 않게 선을 넘지 않고 스몰 토크를 하다가 버스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버스를 탄 남편은 그분이 동네에서 이미 알던 분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별로 사교적이지도 않고 낯도 많이 가려서 모르는 사람들과 쉽게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와 그냥 이야기한다고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소수의 친구들과는 정말 친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낸다. 그러나 인원이 많거나 별로 친하지 않은 모임에 나가면 즐겁지도 않고 정말 피곤하다. 그런 날은 집에 들어와서 아플 때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외부와의 보이지 않는 담을 쌓고 산다고 볼 수도 있다. 지식이나 정보의 습득은 비인격적인 접촉 방식이 편하다. 음성통화도 부담되고, 논쟁도 싫다.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는 감동을 할 때가 많고 나의 생각이 바뀔 때도 많다.
편안한 지인들과 대화하다가도 어려운 일에 대한 공감이나 자신의 지식이나 문화적인 경험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뜬금없이 자랑 모드에 들어가려고 하면 서둘러 핑계를 대고 모임을 끝내고 싶다. 그러니 아마도 표정에 그런 마음이 드러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낯선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함께 도를 공부하면 좋을 것 같아요.”이외에는 별로 없었다.
과거에 시어머니나 부모님을 모시고 나들이를 가면, 잠시 쉬어가려고 벤치 같은데 앉았을 때 옆에 계신 분들이랑 스스럼없이 오래된 친구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참 신기해했었다. 온천에 모시고 가도 탕 안에서 처음 본 분들과 이야기를 하실 때도 있었다.
그러니 이번 일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선한 경험이다. 내가 이제 나이가 들어 눈도 처지고 순한 사람처럼 보이게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젊은 시절,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오만으로 철벽을 치고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이제 경계를 풀 나이가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분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과거 부족사회였을 때 여인들끼리 집안 대소사, 빨래터 등에 모여서 연대하며 힘들고 억울했던 마음들을 풀어가며 서로 위로를 받았을 것이고 그들이 아플 때 서로의 아이들을 돌봐주며 버텨냈을 것을 생각하면 여성들이 스스럼없이 타인과 섞여 들어가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인간의 사촌 동물인 보노보도 암컷 보노보끼리 연대하며 서로 위로하고 가끔씩 못된 수컷 보노보도 협동해서 응징하기도 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인간도 폭력적으로 경쟁만 하며 사는 침팬지와는 다른 보노보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내가 외향적이고 사교적으로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아직도 대화 중 경계를 밀고 들어오거나, 상대방이 누군지와 상관없이 자기의 자랑을 할 대상이 필요한 사람인 것 같으면 서둘러 대화를 끝낸다. 내 성향은 중요하니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은 진짜 내 취향이었다. 그의 그림은 무엇을 그렸든 객관적인 모습과 색채가 아니라 작가의 내면의 표현이었다. 그가 그린 건물은 심지어 출입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의 예술 세계는 다른 사람이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그만의 사적인 심리 공간인 것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다. 또한 그의 그림은 감상자에게 상상 속 스토리를 전개하게 한다. 물론 작가가 의도하거나 정해놓은 스토리는 아니지만 작가도 고가철도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높은 건물의 창문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스토리와 상상을 입혔을 것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혼자 있어도 외롭고 같이 있어도 외롭다. 그들은 신비하고 밝은 빛을 바라보고 있고 그만큼 반대편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인간 에드워드 호퍼도 너무 내향적이고 사회와 접촉을 꺼렸다고 한다.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데 인생을 바쳤다. 외향적인 아내가 없었다면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아내도 화가였으니 보조적인 역할이 힘들었겠으나 둘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며 평생을 해로한다.
미디어로만 보고 좋아하던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회에서 직접 감상하고, 거의 영화 상영시간에 버금가는 긴 분량의 다큐멘터리까지 보는 호사를 누렸다. 다큐를 통해 작품을 보면서 해설도 듣고 예술가의 인생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날은 두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짧지만 정류장에서 마주친 분과, 예술가 에드워드 호퍼이다.
내가 외부의 목소리에 철벽을 친다면 나의 영역은 매우 좁아질 것이다. 벽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고 외부에서 침투 가능한 말랑말랑한 벽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