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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Sep 20. 2022

장애인의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지낼까?

다큐멘터리 영화 '녹턴'을 보고

최근에 많은 관심을 받았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발달 장애인에 관해 생각해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발달장애라는 것이 스펙트럼이 넓어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그중에서도 서번트라고 하는 특정 부분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인물을 가정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발달 장애인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었다.

게다가 현실과는 다르게 우영우는 외동딸이고 주변 인물들은 대부분 그녀에게 우호적이었다.


영화 ‘학교 가는 길’에서 보는 발달 장애인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장애인 범주의 사람들이다. 그 영화는 그들의 엄마들이 장애인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과 대립하며 학교를 만들어가는 지난한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번에 그 영화를 만든 김정인 감독이 제작 과정과 거기서 다 못 다룬 이야기를 포함한 책을 발간하였다. 영화를 본 입장에서, 영화에 없었던 이야기 소개 중에서 그들의 비장애 형제들에 관한 챕터에 관심이 갔다. 비장애 형제들이 모여서 하는 대담을 보며 어린 시절 그들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울컥하였다. 사실 나의 친한 친구가 발달 장애인의 엄마여서 그 영화에 출연했고, 나는 오랜 세월 그 집 가족들을 잘 안다. 내가 아는한 그 친구는 큰 딸에게 한 번도 동생에 대한 부담을 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큰 딸은 어릴 적부터 동생을 잘 챙겼었고, 동생이 엉뚱한 행동을 할 때마다 안타까워했다.

그러다가 영화 때문에 다른 비장애 형제들과 대담을 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아무리 부모가 최선을 다해도 부모님이 먼저 돌아가실 테니 동생과 끝까지 남는 건 자신이고 끝까지 동생을 보살피며 잘지내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다른 출연자 형제들도 어릴 때 동생에게 엄마의 사랑을 빼앗겨 힘들었지만 동생들을 사랑한다고 하였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 하는 일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도시계획을 연구하는 일, 아픈 사람을 돌보는 간호사, 약사인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부모로서 장애인 자식을 돌보는 일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부모가 늙거나 병들어서 더 이상 힘이 없을 때는 사회가 보살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형제자매들까지도 평생 그 무거운 짐을 지도록 하는 것은 사회의 어른들로서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시기에 ‘녹턴’이라는 영화도 보게 되었다. 예전에 티브이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발달 장애인이면서 음악에 재능이 많은 서번트 은 성호 군과 엄마 손 민서 씨, 그의 동생 은 건기 군의 이야기를 정 관조 감독이 무려 11년간이나 촬영해서 편집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고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 아들을 데리고 음악 레슨에, 연주회 준비까지 시키는 엄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만, 내가 여기서 감정 이입해서 본 인물은 비장애 동생이다. 앞서 이야기한 형제자매들은 첫째인 반면에, 건기 씨는 둘째이다. 운명을 받아들이는데 태어난 순서의 차이가 있다고 하면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첫째 아이는 그래도 일정 시간 온전한 사랑을 받다가 장애 동생이 태어난 것이니 받아들이기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건기씨의 경우 태어난 시간부터 모든 시간과 자원을 발달 장애 형에게만 쓰는 엄마에 대한 갈망과 원망이 뒤섞인 복합적 감정이 많은 일탈과 방황을 하게 했던 것 같다.

그가 제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은 엄마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나중에 형을 책임지라고 강요했던 점이다. 장애인의 형제들은 부모가 형제자매 신경 쓰지 말고 본인들이라도 독립적으로 잘 살라고 해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왜 구태여 저런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마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도 음악적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게 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게 된다. 그의 말대로 형과 비슷하게 뒷받침해주었다면 그도 음악적인 성취를 이루었을지도 모를 것이다. 엄마도 쇼팽의 녹턴을 연주할 때 둘째 아들의 연주가 슬픈 감정이 담겨 있어서 첫째의 연주보다 좋다고 고백한다. 엄마는 장애인인 형은 엄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비장애인인 동생은 혼자서 알아서 살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는데, 성인인 된 후에는 맞는 말이겠지만 어릴 때부터 혼자 알아서 크라는 것이 본인에게는 너무 억울했을 것 같다. 부모가 미안해하며 똑같이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해도 남과 다른 환경 때문에 혼란스러웠을 비장애 형제자매들에 대해서도  관심과 사랑 꼭  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생은 어쩔 수 없는 형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엄마에 대한 원망이 많다. 그는 엄마가 형을 제외한 모든 가족을 버렸다고 말한다. 엄마는 형의 인생을 대신 살았다고 비판한다. 어찌 보면 엄마는 큰 아들의 모든 말을 대신해 주고 생활을 도와주고 음악 연습도 같이 한다.

큰아들이 이룬 음악적 성취는 훌륭하지만 엄마가 에너지를 나누어 동생도 더 보살피고 자기 자신도 더 돌보았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고생한 엄마에게 어떤 인생이 더 았을까 참견하는 것은 부질없고 주제넘는 일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동생은 엄마 대신 매니저를 자처하고 형과 함께 러시아로 연주 여행을 간다.

엄마라면 미리 알아서 해주었을 모든 서비스를 동생은 모른 척한다. 형도 어차피 혼자 버텨야 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차나 비행기에서 동생은 헤드폰을 끼고 형을 신경 쓰지 않는다.

엄마가 평생 해주었던 면도도 방법만 가르쳐 줄 뿐 혼자 하게 놔둔다. 형도 엄마에게 와는 달리 동생의 눈치는 보는 것 같다. 드디어 클라리넷 연주회를 마치고 앙코르 곡을 하게 되었을 때 동생도 무대에 깜짝 등장해서 피아노 앞에 앉는다.

둘의 듀엣 연주는 감동적이었다. 처음으로 동생은 음악을 통해 형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을 리드하는 성호 씨가 형으로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고...

힘든 여정을 걸으며 여기까지 온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 긴시간 동안 촬영한 감독님도 포함해서다

이들이 가족으로도, 각자 개인으로도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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