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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Oct 09. 2023

영화<장화, 홍련>-붉은 꽃 떨어지다

아버지가 부른 비극

전래 설화 ‘장화, 홍련’의 스토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배 좌수와 결혼한 장씨 부인이 장미같이 예쁜 장화와, 연꽃같이 고운 홍련 자매를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병으로 죽고 허씨 부인과 재혼했는데, 그녀는 전실 자식을 미워하고 모함하여 큰 딸은 죽였고 작은딸도 언니를 따라 세상을 떠난다. 억울한 영혼은 고을에 새로 부임하는 부사에게 밤에 찾아가 호소하려 하지만 그들은 귀신을 보고 놀라서 계속 죽어 나간다. 새로운 부사가 그들을 호소를 듣고 누명을 벗겨주고 계모를 능지처참하여 죽이고 배좌수는 훈방한다.”  

영화가 전설에서 제목을 따왔다는 것은 이들의 스토리와 플롯과 주제가 유사하다는 의미이다.

영화 속 두 자매의 이름도 장미를 의미하는 ‘수미’와, 연꽃을 의미하는 ‘수연’이다. 이들의 가정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이들이 어떻게 망가지는가를 전설과 비교해 가면서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미는 병원에서 퇴원하여 동생 수연과 함께 아빠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시골에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근처 선착장으로 달려가 나란히 앉아서 물장구를 치며 장난하다가 집으로 들어오고 새엄마 은주는 호들갑을 떨며 그들을 맞는다.

집은 벽지며 옷장이며 침구며 온통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수미는 항상 수연을 보호하고 수연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며 밤에 수미의 침대로 와서 같이 잔다. 수미는 꿈에서 귀신에게 가위에 눌리며 잠을 깨고, 같이 자던 동생이 초경을 한 것을 발견한다. 아래층 안방 화장실에서 몰래 생리대를 꺼낼때 은주가 잠을 깨더니 자신도 생리 중이라고 하는데 이때 수미도 생리를 시작한다.

수미는 엄마의 유품을 모아둔 비닐하우스 창고에 가서 엄마의 물건들을 챙겨 오고 동생과 함께 그것들을 살펴보는데, 사진들의 앞부분은 가족 네 명만 있다가 점점 은주가 틈입하기 시작한다. 병원에서 찍은, 의사인 아빠와 간호사인 은주의 사진도 나온다. 엄마가 아프고 난 후 은주가 간호사로 집에 들어오고, 엄마가 죽은뒤 아빠는 은주와 재혼한 것이다. 둘이 엄마의 사진을 보고 좋아하다가 수연의 팔에 멍자국이 있는 것을 본 수미는 새엄마의 짓이냐며 흥분한다. 그러나 수연은 언니를 원망스럽게 바라본다.

식탁에 마주 앉은 은주와 수미는 서로를 노려보며 수미는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하, 은주는 더러워도 견디고 사는 거라며 가시 돋친 설전을 하는데 이 대화를 아빠는 화장실에서 면도를 하며 듣고 있다. 그가 나와보니 수미는 울면서 아빠가 불러온 이 더러운 일들을 다 책임지라며 소리친다.

은주의 동생 선규 부부가 초대되어 집에 오고 은주는 신나서 과거 이야기를 하는데, 선규는 굳은 표정으로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냉랭한 분위기에 당황하여 선규의 아내가 기침을 하다가 발작을 하고 바닥에 쓰러지고 싱크대 아래의 어린 여자 귀신을 다.

그들이 돌아가고 아빠는 은주에게 약을 주며 들어가서 쉬라고 한다. 은주도 싱크대 아래를 살펴보지만 아무것도 없고, 대신 바닥에서 수연의 머리핀을 발견하고 그것을 주웠을 때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수연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다음날 아빠는 은주가 키우던 새가 칼에 찔려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어두운 얼굴로 새의 사체를 마당에 묻는다. 이때 은주가 표독스러운 얼굴로 2층 수연의 방에 들어와 자신의 얼굴이 도려진 사진과 침대속에 새의 사체를 보고 그녀를 끌고 가서 옷장에 가둔다. 그녀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옷장안에서 문을 두드리고 이 소리를 듣고 옆방의 수미가 와서 구해주고 안아주며 “미안해 수연아, 언니가 못 들었어.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라고 달랜다.

이때 아빠가 들어오자 수미는 은주가 수연을 이렇게 괴롭힌다며 호소하지만 아빠는 이제 그만하라며 “수연이는 이미 죽었잖아”라고 말하자, 수미는 부인하고 수연은 놀라며 비명을 지른다.

아빠는 누구에겐가 수미가 점점 심해지니 내려와 달라며 전화를 하고 수미에게 잠시 외출하고 돌아오겠다고 쪽지를 남기고 나간다.

이때 은주는 밖에서 피 묻은 자루를 질질 끌며 1층으로 들어오고 몽둥이로 그것을 때린다. 수미는 자고 있다가 “언니, 도와줘”라는 수연의 소리를 듣고 옆방에 가보니 옷장에 피 묻은 자루가 들어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풀려고 안간힘을 는데 이때 은주가 들어오고 둘은 몸싸움을 하다가 수미가 유리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기절한다. 깨고 보니  수미는 1층에 누워있고 은주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무거운 조각상으로 내리친다.

아빠가 귀가하자 수미가 거실에 피를 흘리며 누워있다. 딸을 소파에 눕히고 2층에 가보니 옷장 안에 인형이 들어있고 유리가 깨져있다. 다시 내려오니 소파에 은주가 앉아 수미는 어떠냐고 묻는데 아빠는 제발 그만하라고 한다.

다음 순간, 은주는 수미로 변한다. 이때 밖에서 정장을 입은 진짜 은주가 나타난다. 그들이 은주를 병원에 데려가 입원시키고 나오려는데 수미가 은주의 팔을 잡고 놓지 않는다.


홀로 병원 침대에 앉은 수미가 과거를 회상한다.

아빠가 아픈 엄마를 두고 은주와 외출했다가 웃으며 돌아오던 날을 떠올린다.

그날은 은주의 동생 선규 부부를 집에 초대하여 식사를 하던 날이었고, 자매는 식탁에서 밥도 안 먹고 올라왔고 수연이 침대에서 울다 잠들고 깨었을 때 옷장 문이 열려있었고 거기에는 엄마가 목을 매고 죽어있었다. 놀란 수연이 엄마를 꺼내려고 잡아당기다 옷장이 넘어지고 수연은 그 아래 깔린다. 옷장이 넘어지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수미, 은주, 아빠였는데 은주가 먼저 그 방에 가서 확인하고 사고를 알았지만 그냥 나오다가 다시 구하려고 마음먹은 순간, 수미도 확인차 나왔다가 은주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왜 올라왔냐며 말다툼하느라 수연을 살릴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수미는 밖으로 나와 강변 쪽으로 걸어간다.

동생은 죽어가며 언니에게 도와달라고 했지만, 언니는 아빠의 애인과 싸우느라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나와버린 것이다.

    

수미를 병원에 보내버리은주가 아무도 없는 시골의 집 식탁에 혼자 앉아 있다. 갑자기 2층에서 뛰어다니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확인하려고 수연의 방에 들어가서 보니 차가운 냉기가 서리고, 커튼을 젖히니 빈 액자들이 벽에 걸려있다. 옷장을 여니 이불 틈으로 검은 자락이 삐져나와 있고 그것을 잡아당기니 소녀의 유령이 기어 나온다. 은주의 비명이 집 밖으로 퍼진다.

     



자매의 엄마는 많이 아팠다. 영화에서 원인이 나오지는 않으니 그것에까지 아빠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또, 엄마가 오랫동안 아팠다면 아빠 역시 외로워서 밖에서 누군가를 만날 수는 있다. 여기까지는 약한 인간으로서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 아빠는 밖에서 만나는 여자를 아픈 아내의 간호사 역할로 집에 들였다. 어린 자매까지 있는 가족의 공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데리고 온 것이다. 엄마는 절망한다. 사춘기인 큰딸은 이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수미는 그 여자를 경멸한다.

그러나 수미가 동생을 챙기는 일에  신경썼다면, 사고가 난 날 엄마는 잃더라도 동생은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미는 더럽다고 생각하는 여자를 모욕하느라 중요한 순간을 놓쳤다. 그래서 수연을 잃었다. 은주와 싸우고 밖으로 뛰쳐나갔을 때 수미는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뗀 것이다.     

수연은 엄마와 동생을 잃은 후 정신줄을 놓게 되고 정신 병원에 입원한다. 한참 후 아빠는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딸을 데리고 집에 돌아온다. 집에는 딱 둘만 있다. 그러나 끔찍한 일이 벌어진 집이자, 수미의 마음 안에는 세 사람이 존재한다. 자신인 수미와, 죽은 동생 수연과, 새엄마 은주이다. 그녀는 수시로 그들과 대화하고 자아를 바꾼다. 실제 은주는 집에 있지도 않았고 정장을 입은 세련된 여성이지만, 수미가 만들어낸 은주의 이미지는 저질에 관능적이고 악마 같다.

집에 도착했을 때 선착장에서도 동생 없이 혼자 앉아 있었던 것이고, 세 사람의 생리일이 같다는 것도 셋이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벽장의 수연을 꺼내며 한 미안하다는 말도, 사고 당시 동생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야만 했다는 수미의 회한이다. 수연의 팔에 난 멍자국은 옷장에 깔리며 난 상처이다. 은주와 수미의 설전도 혼자 주고받은 말들이다. 은주 동생 선규 부부가 왔을 때도 은주가 아닌 수미가 같이 식사를 했기 때문에 그들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앉아서 그녀가 한 말에 기억이 안 난다고 한 것이다.

아빠가 수연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자 수미는 부정한다. 동생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녀는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미는 마음속에 수연이를 살아있게 하고 은주에게 책임을 물어야 견딜수 다.

마지막에 수미는 피 묻은 자루를 끌고 들어오고 조각상으로 스스로를 쳐서 자해를 한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안에서는 은주가 수연을 죽여서 자루에 넣은것이고 자신을 조각상으로 내리쳐서 해친 것이다.

그녀가 동생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수미를 집어삼켜서 절대로 놓아주지를 않는다.

     

그렇다. 이 더러운 일의 책임은 아빠가 져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는 피해자인 척하고 뒤로 빠져있다. 엄마와 동생은 죽었고 언니는 미쳤고, 곧 새엄마도 미칠 것이다. 영화에서는 원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는데, 나는 이것이 귀신이 아니라 괴로운 사람마음속에서 만든 존재라고 생각한다. 새엄마가 본 귀신이 물리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것이 심리적으로 세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간 사람의 마음속에 나타난  죄의식이라고 다. 초자아가 벌을 는것이다.

전래 설화의 ‘장화, 홍련’ 속에서 마지막에 계모는 능지처참을 당했는데, 배좌수는 사또의 심문 후에 훈방된다. (과거의 가부장제 시대 때 지어진 이야기여서 그럴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새엄마 은주는 죄의식때문에 파멸하지만 아빠는 외부적으로는 특별한 벌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가족이 망가지고 마지막에 애인마저도 미쳐버린다면 과연 아빠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평생 자신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행동의 댓가를 치를 것이다.

은주의 입을 빌려서 한 수미의 말처럼, 잘못하면 벌 받아야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이장면에서 흐르는 OST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은 너무 아름답고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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