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핀란드의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외로운 두 사람의 영혼의 결만 맞으면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랑이 없으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돈이 없는 노동자 계급의 두 남녀의 사랑은 화려한 데이트도 없고, 볼 뽀뽀와 손 한번 잡는 게 다인, 심지어는 표정도 대사도 별로 없는 과정이지만, 오랜만에 관객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성 노동자 친구 둘과 남성 노동자 친구 둘이 퇴근 후 가라오케에 가서 한잔하고 노래도 하며 이성 친구를 찾는다. 안사와 훌라파는 서로 첫눈에 마음에 들지만 어느 쪽도 먼저 대시하지는 못해서 그냥 헤어진다.
안사는 대형 슈퍼마켓에서 임시직으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을 폐기하는 일을 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폐기하는 유제품을 가난한 사람이 달라고 하면 가져가라고 하고, 자신도 저녁에 먹을 식품을 한 개씩 가져온다. 이것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감독이 있었고, 그는 퇴근할 때 그녀의 가방을 검색하고 빵이 한 개 나오자 해고한다. 그녀의 동료들은 어차피 버릴 것을 한 개 가져가는 것에 대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감독에 항의하며 같이 직장을 그만둔다.
훌라파는 금속을 용접하는 기사이다. 그는 알코올 의존자여서 일터에서도 숨겨둔 술을 마시고 퇴근 후에도 항상 술을 마신다. 어느 날 일을 하다가 다쳤는데 기계의 호스를 교체해 주지 않아서 사고가 났지만, 규정상 음주 측정을 했고 기준치가 넘어서 해고된다.
안사는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급히 일자리를 알아보고 술집의 주방일을 하기로 하는데 술집 주인이 마약상이어서 월급날 잡혀가는 바람에 돈을 받지 못한다. 이때 우연히 술집 앞을 지나던 훌라파와 다시 만나고 그는 커피를 마시자고 하지만 그녀는 돈이 없다고 하고 훌라파가 커피와 빵을 사주고 함께 영화까지 본다. 훌라파가 다시 만나자고 하자 안사가 쪽지에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둘은 헤어지는데 그가 담배를 피우려고 주머니를 뒤지다가 쪽지가 떨어져서 낙엽과 함께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이름도 모르고 번호도 잃어버린 훌라파는 그녀를 찾기 위해 가라오케와 극장 앞에서 대책 없이 서성인다.
안사는 기다리던 그의 전화가 오지 않자 실망하고, 혹시하여 극장 앞을 지나가다가 그와 마주친다. 사정을 듣고 다음날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집에 접시가 한 개밖에 없자 그를 위해 식기를 사고 요리도 한다. 훌라파도 꽃다발을 사와서 마침내 그녀와 식사를 하게 되는데, 그녀가 작은 스파클링 와인 한 병 만을 나누어 마시고 더이상 술이 없자 그는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술을 마신다. 그때 안사는 자신의 아버지와 오빠도 술로 죽었다며 그를 좋아하지만 술꾼은 싫다고 하고, 그도 잔소리꾼은 질색이라고 말하고가버리며 둘은 깨진다.
둘은 다시 외로운 생활을 하게 되고 잠 못 이루는 밤들을 맞는다.
안사는 일터에서 안락사 직전의 개를 입양하게 되어 돌보며 잠을 푹 자게 되고, 훌라파는 술을 끊기로 결심한다. 금주에 성공한 훌라파가 드디어 안사에게 전화한다. 그녀를 위해 술을 끊었다는 말에 그녀는 당장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한다. 이웃에게서 멋진 옷까지 빌려 입은 훌라파가 서둘러서 오다가 기차에 치이는 사고가 나서 혼수상태에 빠진다. 안사는 예쁜 옷을 입고 집을 청소하고 그를 기다리지만 그는 오지 못한다.
얼마후 개와 산책을 하던 안사는 과거 가라오케에서 보았던 훌라파의 친구를 만나고 그가 다쳐서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매일 퇴근하여 혼수상태의 훌라파에게 가서 뉴스를 말해주고 퀴즈풀이를 들려주는 생활을 하던중 훌라파가 깨어난다. 그가 목발을 짚고 퇴원하는 날, 안사는 개와 함께 병원앞에서 기다리다가 그와 함께 집으로 걸어간다.
간단한 줄거리만 보면 특별한 이야기도 아닌 듯 보이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상당하다. 북유럽 영화의 분위기때문이기도 하고 감독 특유의 개성때문이기도 하다.
시대 설정이 방에 티브이가 아닌 골동품 라디오만 있고 휴대폰도 통화기능만 있는것을 보면 과거인 것 같은데, 뉴스에서 계속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해서 피해를 당한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면 현재인 상황이다.
둘은 경제적인 형편이 안 좋은 노동자들이다. 여자는 실직하고 다시 취직할 때까지 돈이 없어서 제대로 식사도 못한다. 남자도 힘든 일을 하면서 집도 없이 컨테이너에서 동료들과 합숙하다가 해고되자 쫒겨나서 노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돈이 없다고 데이트를 못하지 않는다. 비싼 식사 대신 커피와 시나몬롤만 먹고, 허름한 영화관에서 같이 영화만 봐도 그들은 행복하다.
두 인물이 나오는 공간은 항상 작은 공간인데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연상되는 배경이다. 그래서 인물의 외로움과 영화적 영상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인물들이 무표정하고 대사도 적고 툭툭 던지는 농담은 아재 개그나 허무 개그 같아서 실소가 나오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아무도 웃지 않는다. 대목마다 나오는 노래의 가사가 상황을 너무 적절히 묘사해서,가사가 대사를 대치할 정도로 중요하다. 훌라파가 술을 끊기로 결심하고 친구와 펍에 갔을 때 여성 듀엣 밴드가 노래를 부른다.(가수들도 무표정하고 손님들은 학생처럼 앉아서 집중해서 노래를 듣는 기이한 분위기이다.)
“주전자엔 곰팡이 핀 커피
바닥에는 더러운 접시들
.........
널 좋아하지만 내 자신은 참을 수 없어
난 슬픔 속에서 태어나 환멸에 갇혀 살았어”
이 가사를 들으면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가 떠오른다. 돈도 없고 사랑도 없는 사람들이 쩍쩍 들러붙는 장판 바닥에 누워 외로워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주인공들은 서로가 짝임을 알아보고 찾아 헤맨다. 외롭다고 해서 아무나 만나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반쪽을 찾는다. 훌라파는 쪽지가 날아가는 우연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무조건 안사를 기다리고, 안사는 훌라파가 좋지만 술은 안 된다고 선을 긋고, 그의 결심이확인되었을때 그를 다시 부른다. 그가 다쳤을 때는 그가 깨어날지, 장애를 가질지도 모르지만 끝까지 그의 옆을 지킨다.
그들은 첫 데이트에서 볼키스, 두 번째 만났을 때 악수, 세번째로 혼수상태의 남자의 이마에 뽀뽀를 한 것이 다이다. 안사는 내내 무표정하다가 그가 깨어났을 때와 그가 퇴원할 때, 딱 두 번 웃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훌라파와 안사와개가 함께 넓은 길을 걸어갈 때, 관객들의 가슴도 따뜻해지며 사랑이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을 믿게 된다.
동화에서는 항상 여자 주인공이나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반쪽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스토리는 여러 고난 끝에 주인공이 공주나 왕자를 구원하고 결혼하면서 끝난다. 그러나 이후로도 행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다른 차원의 고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동화보다 더 현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사랑이 이루어지지도않는다. 쪽지의 분실이나 교통사고 등의 우연이 개입하여 그들의 연결을 방해하고, 남자가 알콜에 의존한다는 큰 걸림돌이 그들을 갈라놓았던 것이다.
안나가 그를 좋아하지만 잠정적인 이별을 선택한 것이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공고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