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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Oct 16. 2023

영화<테이크 쉘터>-그의 피난처는 어디인가

불안과 싸우는 남자

    

현명한 아내와 예쁜 딸과 함께 사는 남자 커티스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폭풍우가 불고 자신이 위험에 빠지는 악몽을 꾸며 일상이 무너진다.

그는 과연 안전한 피난처로 도망가서 자신과 가족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커티스는 아내와 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어릴 때는 들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청력을 잃은 어린 딸 해나를 세심히 보살피고, 자신처럼 별 볼일도 없는 사람과 결혼해 준 아름답고 현명한 아내 사만다를 너무나 사랑한다.

어느 날, 저 멀리 거대한 토네이도를 동반한 구름이 몰려오며 구정물 색깔의 비가 오기 시작하는 악몽을 꾼 커티스가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다.

연달아서 저 멀리 먹구름에서 벼락이 떨어지고 비를 맞은 자기 집 개가 자신의 팔을 물어뜯는 악몽을 꾼다. 다음날 꿈에서 물린 팔이 실제로 아팠고, 그는 집안에서 키우던 개를 밖에 개집을 만들어 내보낸다.

딸이 듣지 못하게 되면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자 퇴근 후 부부는 수화 교육에 같이 참여한다. 그날 밤 다시 커티스는 딸을 데리고 폭우 속을 운전하다가 사고가 났는데 밖의 사람들이 차 유리창을 깨고 딸을 데려가는 악몽을 꾼다.

집에서 티브이 뉴스를 보는데 재난 방송을 하자 그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이날 밤, 폭우가 오는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고 그는 딸을 안고 두려워하는데, 갑자기 집안의 가구가 공중으로 떠오르고 극심한 두려움에 빠진 그가 오줌을 싸며 꿈에서 깬다.

결국 위기감을 느낀 커티스는 도서관에서 정신병에 대한 서적을 빌려다 보기도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엄마에게 찾아가서 과거의 증상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하기도 한다. 엄마는 그가 10살 때 그를 슈퍼마켓 주차장에 놔두고 사라져서 일주일 후 길거리에서 발견되어 정신병원에 들어갔었다. 병원에서는 커티스에게 정신과 전문의를 추천해 주며 진정제를 처방해 주는데 그것을 먹자 그날 밤 꿈을 꾸지 않고 잘 잔다.

그러나 다음날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맑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천둥소리를 듣는데, 친한 동료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패닉에 빠진 그는 토하고 숨을 못 쉬게 된다. 지나가다가 본 트레일러 판매 광고를 보고, 그는 마당에 있는 낡은 방공호를 고치기로 마음먹는다. 땅을 파는 것은 동료에게 주말에 직장의 포클레인을 동원해 달라고 부탁해서 해결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내가 포클레인이 자기 집의 잔디밭을 파는 것을 보고 놀라고, 고가의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는 것을 듣고 화를 내며 그와 싸우게 된다. 그의 경제적 형편은 좋지 않았고 아내는 딸의 청력을 회복하는 수술 비용 때문에 집에서 자수를 놓은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아서 돈을 모으며 알뜰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와 싸운 날 밤, 그는 아내가 비에 젖어서 부엌에서 그를 바라보며 칼을 집으려고 하는 악몽을 꾼다. 다음날 아침 그는 아내가 잡는 손을 뿌리친다.


드디어 그가 아내에게 그동안 꾼 악몽을 고백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엄마는 자식을 지키지 못했지만 자신은 반드시 가족을 지키겠다고 아내에게 다짐한다.

다시 친한 동료 듀워트가 도끼를 들고 자기의 다리를 공격하는 악몽을 꾼 커티스는 상사를 찾아가 근무 파트너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사적으로 포클레인을 사용한 혐의로 커티스는 해고당하고, 듀워트도 징계를 받는다.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파티에서 듀워트는 화가 나서 커티스에게 싸움을 걸고, 커티스는 난동을 피우며 파티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폭풍우가 와서 세상이 망하는데 웃고 떠들고 있냐고 소리 지른다. 그는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도 망친다.

어느 날 새벽 토네이도 경보가 울리고 그들 가족은 마당에 만들어 놓은 방공호에 들어가서 피한다. 만반의 시설을 갖춘 방공호에서 밤을 보내고 아내가 그를 깨워 이제 나가자고 하지만, 그는 아직도 폭풍우가 불고 있다며 거부한다. 아내가 이젠 괜찮다고 하자 그가 아내에게 열라며 열쇠를 내민다. 그러나 아내인 사만다는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세상이 멀쩡하다는 것을 그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열쇠를 다시 건넨다. 그가 방공호의 출입구를 열고 나가자 밖에는 태양이 빛나는 멀쩡한 세상이 존재한다. 그는 이제 자신이 비정상임을 완전히 인정하고 아내와 함께 정신과 전문의에게 찾아간다. 의사는 방공호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하고, 병원에 입원하여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자 그는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가 병원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과 해변으로 휴가를 떠난다. 아내는 맛있는 요리를 하고 그와 딸은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놀고 있는데, 딸이 먼바다를 가리킨다. 거대한 구름이 몰려오고, 때마침 나온 아내도 이것을 본다. 그녀가 내민 손에 구정물 색의 비가 떨어진다. 그녀가 동감하는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본다.

      



영화의 시점은 심한 불안(어쩌면 조현병)에 시달리는 남자의 시선으로 꿈과 세상을 바라보는 이다. 영화 ‘파더’가 치매에 걸린 노인의 시점으로 진행되듯이 이 영화도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의 시점으로 세상을 본다. 그래서 그들이 왜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커티스는 어릴 적 사랑하는 엄마가 자식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녀 스스로도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그는 좋은 아내와 딸을 얻고 잠시 행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아기 때 아무 문제도 없던 딸이 청각에 문제가 생기자, 자신에게는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아내에게 불안을 느낀다. 엄마가 떠났듯이 그녀도 떠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한 것이다.

이 무의식에 깊이 뿌리 박힌 분리 불안이 그를 괴롭힌다. 불안이 아주 심해지면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꿈이 의식에 틈입하는 것이다. 보통 꿈을 꾸면 그것이 현실 세계를 침범하지는 않지만 병리적인 경우에는 현실에 영향을 준다. 커티스의 경우 꿈에서 개가 물으면 현실에서도 두려워하며 개를 내쫓고, 꿈에서 동료가 자기를 해치면 현실에서 그와 함께는 일을 못하고, 꿈에서 아내가 칼을 쥐고 자신을 해치려고 하면 현실에서 아내와 손이 닿는 것도 끔찍해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환각을 보게 된다. 새 떼가 날아다니는 광경에서 그들이 공격한다는 환각을 보고, 맑은 날 아무도 듣지 못하는 천둥소리를 듣게 된다.

이러한 증상들이 당사자의 마음에서는 실제로 닥친 이기 때문에 그는 대비를 해야 한다. 마음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 현실을 고치는 것이다. 마음속 폭풍우를 현실의 폭풍우로 도치하여 실제 피난처를 만든다.

그는 자신과 가족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켜줄 방공호를 실제로 집 앞 땅밑에 만든다. 토네이도가 많은 미국에서 방공호는 유용할 때도 있다. 그러나 거기서 계속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연재해의 대비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현명한 아내의 지혜가 빛을 발한다. 남편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녀는 떠나지 않고 옆에서 그를 위로하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다독거린다. 그가 진실을 마주 보기를 주저하며 그녀에게 결정을 미룰 때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대신해 줄 수 없다고 진심으로 말한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와서 적극적인 치료를 하겠다고 결심한다. 타의에 의해 정신 병원에 입원한 사람이 치유되기는 힘들것이고, 그런 면에서 그녀의 사랑이 빛을 발한다.

    

마지막 장면은 논란이 많다.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정도로 이견이 분분하다. 과연 휴가지에서 가족 모두가 본 폭풍우는 무엇일까?

그것은 꿈이었을까? 아니면 그가 말한 큰 자연 재앙이 실제로 있었고 그것이 몰려와서 세상이 종말을 맞게 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가족들도 환각을 보게 된 것일까?

내가 보기에 이것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자연재해생각되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남편이자 가장이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심하게 불안하다면, 거기에 오랫동안 노출된 그의 가족도 균형된 마음을 갖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그의 가족들도 함께 불안해졌다는 해석과, 좋게 보아도 가족들도 커티스의 마음의 고통의 실체를 같이 느끼고 인정해 줄수 있게 되었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한편 만일 이것이 꿈이었다면, 그는 무슨일이 있어도 가족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현실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는 일단 병원에서 적극적인 치료를 받고 나와야 할 것이고, 그 뒤에는 그의 가정이 그의 진정한 피난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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