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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Nov 30. 2023

영화<블랙 스완>-네 안의 흑조를 보여줘

백조에 갇히는 저주

     

러시아 전래 동화 '백조의 호수’ "악마 로트바르트가 아름다운 오데트에게 저주를 걸어 낮에는 백조로 존재하다가 밤에만 인간으로 살게 한다. 왕자인 지그프리트가 사냥을 나왔다가 오데트를 보고 사랑에 빠지지만 로트바르트가 오데트로 변장한 흑조인 자신의 딸 오딜을 내보내 왕자를 유혹하여 구혼하게 한다. 이에 절망한 오데트는 호수에 투신하며 저주는 풀리게 되고 그녀는 죽음 안에서 자유를 찾는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맞추어 발레로 공연해왔다. 뉴욕의 발레단에서도 늘 이것을 정기적으로 공연해왔는데, 새로운 시즌을 맞아서 단장은 흑조의 관능적인 면을 강조한 각색으로 공연을 기획한다. 여기에서 주역을 따낸 니나는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연기하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니나는 어려서부터 헌신적인 엄마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열심히 발레를 해 온 유능한 발레리나이다. 그동안 주연을 해왔던 주인공 베스가 나이가 듦에 따라 새로운 주연을 뽑게 되는데, 단장인 토마스는 니나의 훌륭한 기술을 인정하지만, 흑조 파트의 관능적이고 왕자를 유혹하는 연기 때문에 결정을 망설인다.

니나는 오데트 역할을 절실하게 원하지만 자유분방한 흑조 역할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엄마의 보호 아래 아직도 분홍색 침대에서 분홍색 잠옷을 입고 봉제 인형이 가득한 방에서 지내며 연애도 못하고 엄마의 착한 딸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스트레스에 니나는 등을 피가 날 때까지 긁어서 흉터를 만든다.

한편 발레단에는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자유로운 분위기의 릴리가 새로 들어오는데 그녀의 기술은 니나에 비해 떨어지지만 그녀의 자유롭고 본능을 자극하는 몸짓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한다.

토마스를 설득하기 위해 니나는 베스의 분장실에서 빨간 립스틱을 훔쳐서 바르고 올린 머리를 풀고 찾아가는데, 그는 “왕자뿐 아니라 세상을 잡아먹을 듯이 유혹해 봐.”라고 말한다. 결국 니나는 오데트 역에 선정되고 기뻐하며 연습실 화장실에 갔는데 거울에는 “창녀”라고 쓰여 있고 그녀는 당황하며 그것을 지운다.

베스의 고별파티이자 니나의 소개 파티장에서 토마스는 그녀를 소개하고 파티장에서 만난 베스는 니나가 배역을 따내려고 단장을 유혹했다고 비난한다. 그녀는 긴장하여 화장실에서 손톱을 뜯어 피를 흘린다. 토마스가 자기 집에 가자고 초대하고 그는 니나에게 사랑은 해봤냐며 집에 가서 자위라도 해보라고 충고한다. 토마스는 흑조를 딱딱하게 연기하는 니나가 답답하고 목석같아서 아무도 그녀와 사랑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자신을 억누르지 말고 열정을 보여달라고 몰아친다. 단장이 왕자역을 맡아 유혹을 하자 그녀가 잠시 감정에 빠져들지만, 그는 유혹은 왕자가 아니라 흑조 쪽에서 해야 한다며 비웃는다. 이런 요구를 받을 때마다 니나는 릴리가 부럽고 신경 쓰여서 그녀에게 날카롭게 군다.

점점 힘들어하는 딸을 보며 엄마는 절대로 단장에게 넘어가면 안 된다며 자신이 결혼 전에 니나를 임신하고 키우는 책임 때문에 커리어를 희생했다며 그녀에게 복종할 것을 강요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니나는 엄마의 발레 재능은 최고가 아니었고, 자신을 임신한 것은 엄마 스스로의 결정이었다고 대든다.  

엄마에게 반항하며 퇴근 후 찾아온 릴리와 외출한 니나는 나이트클럽에 가서 그녀가 권한 엑스터시 알약을 삼킨다. 긴장이 풀리며 자유롭게 춤추다가 화장실에서 처음 본 남자들과 키스하고 릴리와 집에 돌아와 엄마를 내쫓고 문을 잠근 뒤 그녀와 함께 사랑을 나누며 잔다. 다음날 숙취에 늦잠을 잔 니나는 리허설에 늦고 흑조 연습을 하고 있는 릴리와 마주친다. 그러나 릴리는 지난밤 같이 잤다는 그녀의 말에 그런 적이 없고 밤에 술집에서 헤어졌다고 한다. 단장은 그녀의 대역에 릴리를 선정하고, 니나는 불안해진다. 그녀는 침실에 있던 봉제 인형을 쓰레기통에 처넣고 엄마 방에 있는 자신의 초상화를 다 찢는다. 엄마는 딸이 정상이 아니며 주인공 역할이 그녀를 망쳤다고 하며 그녀를 공연에 못 가게 하는데 그녀가 엄마를 밀치니 눈동자가 붉은색이 되고 등의 상처에서는 흑조의 깃털이 삐져나온다. 분장실 거울 속의 이미지는 자신과 다른 행동을 한다.

본공연이 시작되고, 백조 파트에서 니나는 자신의 환상을 보다가 리프트 동작에서 떨어지는 실수를 한다. 막간에 분장실로 돌아왔을 때 릴리가 그곳에 앉아서 자신이 흑조를 더 잘한다고 도발하자 그 역할은 자신의 것이라며 니나는 흥분한다. 둘이 몸싸움을 하다가 거울이 깨지고 그 조각으로 그녀는 릴리를 찌른다. 시체를 화장실로 옮기고 무대에 나간 니나는 완벽한 흑조 연기를 한다. 마지막 다시 백조의 연기를 하기 위해 분장실로 들어오니 화장실 바닥에 피가 낭자하다. 그때 릴리가 분장실로 찾아와 니나의 흑조 연기가 너무 좋았다며 축하를 한다. 돌아보니 피도 시체도 없고 자신의 배에 유리로 찌른 상처에서 피가 나오고 있다. 결국 자신과 싸운 릴리는 환상이었고 니나는 스스로를 찌른 것이었다. 다시 무대로 나가 백조의 춤을 추고 마지막 투신 장면에서 그녀는 피를 흘리며 아래로 떨어진다.

관중석 엄마는 감격하고 단장도 만족하지만, 막이 내리고 뒤에서 단장과 동료들이 그녀의 상처를 보고 놀랐을 때 니나는 말한다. “나는 드디어 완벽함을 느꼈어요!”

     



과거에는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와 흑조의 역할을 따로 했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한 사람이 두 역할을 다 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계속 그렇게 이어가고 있다. 이야기 자체가 악마가 저주를 걸어 소녀를 백조로 만들고 사랑하는 연인을 흑조에게 유혹시키는 것으로, 한 사람에게 동시에 백조의 측면과 흑조의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단순히 백조를 선, 흑조를 악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다양한 측면이 들어있고 특히 예술 분야에서는 모든 면을 다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니나는 정신적 성장이 지연된 소녀이다. 권위적인 엄마 아래서 사는 ‘분홍색’으로 상징되는 유아적인 면에서 나아갈 돌파구가 없는 환경이다. 엄마는 딸이 성숙한 여성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녀의 통제를 벗어나려 하면 즉시 과거 자신의 희생을 들먹이며 딸의 죄책감을 유발한다. 영화에서 엄마는 딸에게 백조의 세계에서만 살라는 저주를 내리는 악마같은 존재이다. 니나는 립스틱을 바르는 행위에서도 수치심을 느끼고 자신을 창녀라고 스스로 손가락질한다.

말 잘 듣는 소녀가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니 발레의 기술적인 면에서는 따라갈 자가 없지만, 표현에서는 나이브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에 릴리는 서툴지만 구속이 없고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는 여성이다. 매력적인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남자들이 서성이며 그녀에게 접근한다. 억압되어 있던 니나의 관능과 자유로움이 릴리로 인해 자극을 받는다. 단장 또한 이야기 속의 로트바르트처럼 니나 안의 잠재된 모든 측면을 꺼내주는 인물이다. 그는 니나에게 자아를 잊어버리고 초월하라고 채찍질한다.

이러한 작업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엄마의 저항도 크고 그녀의 성장통도 심하다. 그녀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과도하게 밀어붙인 변화의 가속도는 그녀에게 병적인 환각과 환상을 만든다.

그녀는 마음속 흑조를 받아들이는 데 성공하지만, 과거의 자신을 파괴해야 하는 대가를 치른다. 그것이 열린 결말을 만든다. 이야기 속에서 백조가 강물에 뛰어들면서 저주를 풀지만 죽는 것처럼 그녀가 흑조 역할을 받아들이지만 결국은 죽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다른 버전의 이야기에서 저주가 풀려 왕자와 행복하게 산 것처럼 치료받고 살아나서 통합된 인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릴리의 특성은 주로 니나가 억압한 성적이고 관능적인 부분이어서 프로이트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릴리는 니나의 이드 부분인 것이다. 남자와의 교제를 극도로 억제하는 엄마는 이드를 억압하는 초자아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니나에게 단장이 유사 아버지의 역할을 한다. 단장에게 매력을 느끼고 엄마에게 반항하는 것은 일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여성 버전인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 마음에서 엄마라는 걸림돌을 제거한 니나의 새로운 초자아는 단장으로 바뀐다.

융 심리학으로 보면 릴리는 니나가 억압한 그림자이다. 그것은 활성화되지 않았다가 릴리를 보는 순간 그녀에게 그림자를 투사하며 자신의 그림자를 자각한다. 이제 소녀의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그림자를 받아들이고 어른으로 성장하라고 일갈하는 단장 토마스는 니나의 아니무스라고 볼 수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의 상징인 거울을 깨고 나온 흑조가 스스로를 찌르는 행위를 자신의 페르소나인 백조를 극복하는 것의 은유라고 본다면, 그림자 흑조를 꺼내어 통합한 그녀는 한층 성장하여 성숙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백조와 흑조를 모두 표현할 수 있게 된 니나는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여 자기를 실현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완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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