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너희 어릴때 직장을 그만두었지. 연년생인 너희 둘을 놔두고 직장에 다니려니 감당이 되지 않았었어. 양쪽 부모님도 고생시키고 나도 몸이 엉망이 되어 결국은 포기했었다.
그렇게퇴직한후 갑자기 엄마에게 생긴 한가한 시간을신기해 하며 별별 일을 다 해봤던 것 같다. 이웃 엄마들과 함께 퀼트도 배우고, 요리도 배우고, 제빵도 배웠다. 너희들 생일에 피자도 직접 만들고 케이크도 구웠었지.
빵이나 쿠키를 만들때 버터와 설탕을 잔뜩 넣고 열을 가하면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어. 그냄새가 나면 거기가 천국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환상적이었단다.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공부와 일만 하던 나에게 이런 일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세월 가는줄 몰랐다.
집에는 매일 밀가루가 날아다니고 제빵 도구들이 펼쳐져 있었는데 하루는 아빠가 우리 집이 빵집이냐며 자기는 빵보다 밥이 좋다고 하는 게 아니겠니. 열심히 만들어 주었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감사가 아닌 비난이어서 짜증이 나기도 했고, 또 나중에는 빵에 너무 많은 버터와 설탕이 들어가는 게 아닌가 회의를 품었던 시기였기도 해서, 다시는 빵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손을 떼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르니 아빠가 가끔씩옛날에 만들어 먹었던 빵이나 쿠키가 먹고싶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화가 나서 꿈도 꾸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었다. 더구나 이제는 둘 다 고지혈증도 살짝 있어서 식생활도 조심해야 할 나이가 되었잖아. 빵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당지수가 높은 설탕이나 포화지방이나(또는 트랜스지방) 정제 곡물 가루 등은 다 우리 나이에는 피해야 하는 재료들이야. 샌드위치도 흰 식빵보다는 통밀 식빵으로만들려고 노력한단다.
그러나 엄마도 가끔씩 친구들과 가는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를 한입 먹으면 참 맛있기는 하다.
그래도 그런 케이크는 가끔만 먹고, 옛날과는 달리 몸에 좋은 재료와 형태로 다시 빵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너희에게도 빵집에서 파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 대신,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은 빵을 쉽게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구나.
일단 몸에 좋으려면, 곡물을 정제해서 곱게 가루를 낼수록 흡수가 잘 되어 당 지수가 높아지니 가능하면 덜 정제하고 덜 갈아서 쓰는게 좋겠다.
몸에 좋은 견과류와 과일이나 채소를 다져서 섞기도 하고, 버터를 대신해서 식물성 기름을 조금 넣어야 한단다.
또 설탕을 줄이고 인공 감미료를 조금 넣거나 꿀이나 메이플 시럽 같이 칼로리에 비해 단 맛이 많이 느껴지는 천연제품을 조금 섞어주면 좋아.
문화가 발달한 척도를 식재료를 얼마나 가공하는가로 보는 시선도 있다. 그래서 빵이 가장 문화적인 음식이라고들 말하지. 찐 감자나 밥처럼 원재료에 물을 넣고 가열하는 방식은 수준이 낮은 음식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변형하지 않고 단순하게 조리한 음식일수록 몸에는 좋다고 생각해.
빵은 단계가 많아서 단순한 음식은 아니지만 되도록 모양을 덜 바꾼 천연재료를 이용해서 만들면 좋을 것같구나. 집에 있는 재료를 둘러보고 빨리 먹어야 하는 재료들을 찾아서 쓰면 일석이조란다. 검은 점이 생긴 바나나나,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우유나 요거트, 말라가는 사과 등등이 다 빵 재료가 될 수 있어.
밀가루보다는 통밀가루를 쓰는 것이 좋고, 요즘은 귀리를 많이 먹는데 귀리도 알갱이 크기를 달리 한 제품들이 다양하게 나오니 가능하면 입자가 큰 것을 써야 당지수도 낮고 포만감도 오래 간단다. 또 요즘은 아몬드 파우더를 밀가루 대신으로 쓰기도 한다. 견과류 가루이니 밀가루에 비하면 탄수화물이 거의 들어있지 않아서 걱정이 덜할 거야.이제 건강에 좋은 빵을 한번 만들어보자.
<오트밀 당근 케이크>
-계란 3개를 풀어서 섞는다.
-중간 크기 당근 한개를 다진다.(채칼, 푸드 프로세서, 강판 등을 이용)
-식용유 50ml, 스테비아 2큰술(흑설탕이나 설탕 2큰술로 대치 가능), 다진 당근, 소금 반 큰술, 바닐라 에센스 1작은술, 그릭 요거트 150g(대신뭉갠 바나나 2개를 넣어도 되고, 둘다 넣어도 괜찮아)를 계란물에 넣고 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