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병옥 Jul 25. 2024

영화<프렌치 수프>-인생을 요리하다

'자기만의 방'을 지킨 여성

    

19세기말 프랑스에서 ‘미식계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리는 도댕은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천재 요리사 외제니와 함께 음식을 만든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고 20년간 같은 집에서 살며 파트너로 일해왔다. 영화는 두 사람이 손님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만드는 장면을 텃밭에서 재료를 얻고 다듬는 준비 과정부터, 볶고 굽고 끓이는 조리과정까지 자세히 보여준다.

음식을 만드는 부엌 안의 열기와 냄새를 상상하며,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는 동선을 훔쳐보며, 두 사람의 사랑까지 맛볼 수 있는 식탁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댕은 자신의 레스토랑에 친한 미식가 친구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한다.

요리사인 외제니는 그와 20년째 파트너로, 함께 이번 음식을 준비한다. 도댕의 아이디어가 그녀의 작업을 통해 마법을 부린듯 훌륭한 요리로 변신한다.

이번 만찬은 콩소메 수프, 볼로방, 가자미찜, 송아지 허릿살 스테이크, 오믈렛 노르베지안의 코스 요리와 질 좋은 와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맑은 수프 콩소메를 만들려면 온갖 재료를 넣고 장시간 고아서 걸러서 맑은 국물만을 얻어야 한다.

볼로방은 페스트리를 굽고 가운데를 파낸 후 크림소스에 졸인 파스타와 야채를 넣어서 만든다.

커다란 가자미는 우유에 재웠다가 오븐에서 오래 구운 후 살만 발라내어 삶은 감자와 함께 내야 한다.

송아지요리는 통째로 먼저 애벌로 굽고, 다음에는 향신채를 깔고 굽고, 마지막에는 포기상추를 데친 것과 곁들여 버터를 뿌려서 굽는 총 세 번의 과정을 거쳐야 나오는 요리이다.

디저트는 스펀지케이크에 아이스크림을 올리고 겉은 계란 흰자의 머랭으로 싸서 오븐에 구운, 겉은 뜨겁고 속은 차가운 신기한 케이크이다.

이 모든 요리를 외제니의 감독하에 도댕과 조수 비올레트와 플린의 협동작업으로 일사불란하게 해낸다. 그 요리들을 조수들도 똑같이 맛본다.(그들도 나중에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은 손님들은 그녀의 요리는 예술이라고 칭찬을 하고 외제니도 합석해서 즐길 것을 권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자리는 부엌이라며 그녀는 음식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한다고 한다.

     

유명한 미식가인 도댕을 유라시아 왕자가 초대하고 그의 친구들과 함께 참석하는데 셰프가 그 메뉴를 소개하는 데만 한참이 걸리고 실제 만찬은 8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그들은 만찬이 규칙이 없는 무질서한 행진이었다고 혹평한다. 도댕도 답례로 왕자를 초대해야 해서 대접할 메뉴를 고민하다가 프랑스 가정요리의 대표인 포토푀를 메인메뉴로 하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그 당시 남자들에게 유명한 메뉴 오르톨랑을 먹으러 가고, 수건을 뒤집어쓴 후 요리를 먹는 진기한 광경을 연출한다. 야만스러운 요리를 먹는 것을 신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도댕과 외제니의 관계는 20년 동안 한결같은 친구이자 파트너이면서 연인이다. 그가 여러 번 청혼했으나 그녀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아내가 된 후에는 그 일에 전념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거절했었다. 도댕은 매번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의 방과 멀리 떨어진 그녀의 방에 가서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한다. 어떤 때는 문이 열려있고 어떤 때는 문이 잠겨있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의 사랑은 식지 않고 지속되어 왔다.

외제니의 건강이 안 좋아지자 도댕은 자신이 직접 요리해서 외제니를 대접한다. 완두콩 소스에 버무린 익힌 채소, 캐비어를 곁들이고 레몬소스를 뿌린 굴, 육수에 삶은 닭고기 가슴살 등의 코스를 내가고, 경매에서 구입한 50년간 바다에 수장되어 있던 샴페인을 곁들인다.

하이라이트인 디저트는 ‘푸아르 포세’로 배의 껍질을 벗겨 통째로 와인에 졸여 만든 것이다. 도댕은 디저트 접시에 반지를 숨겨서 외제니에게 청혼을 하고 승낙을 받는다.

그러나 친구들을 불러 약혼을 알리는 식사까지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외제니는 아침에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뜬다.     

슬픔에 빠진 도댕은 식음을 전폐하지만 친구들은 그가 다시 요리사를 찾아서 레스토랑을 열어야 한다고 권유한다. 그는 절대 미각을 가지고 있는 재능 있는 외제니의 견습생인 플린을 데리고 다시 요리를 시작하고, 어느 날 그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요리사도 찾게 되고 그의 남은 열정을 살리게 된다.

   



우선 관객들은 영화 속 요리 과정과 그 결과로 나온 음식에 매혹당한다.

어떤 음식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저렇게 많은 양념과 재료와 노력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왜 프랑스 요리가 제일이라고 하는지도 알  같다. 어떻게 보면 깊고 맑은 맛의 국물을 만들기 위해 많은 재료를 끓인 뒤 걸러서 버리는 것이 아까울 수도 있고, 이런 미식행위가 극히 최상층의 유한계급들만 누리는 낭비와 호사 같기도 한다. 심지어 도댕이 외제니를 위한 닭요리를 할 때 육수에 네댓 마리의 닭이 들어갔었다. 거기서 육수를 내기 위해 넣은 닭은 건져 버리고 헝겊 주머니에 넣었던 좋은 닭 한 마리만 건져서 가슴살을 발라서 먹는다.

먹는 것에 탐닉한 나머지 멧새를 끔찍하게 죽인 뒤 요리해서 먹는데, 자신들도 그것이 부끄러워서 수건을 뒤집어쓰고 먹는 전통을 만들어 냈다는 것에 이르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후반에 가면 도댕이 외제니의 요리철학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왕자에게는 프랑스 가정에서 먹는 소박한 요리인 프랑스의 대표 수프인 포타주와, 메인요리로 포토푀를 만들어 대접하겠다고 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포토푀'는 소고기의 각종 부위와 채소를 뭉근하게 긴 시간 끓여서 만든 국민 스튜이다.

시대를 고려해 보면 수도도 전기도 가스도 없어서, 물도 길어다 쓰고 냉장고도 없고 오븐도 숯으로 가열해야 하니 현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악한 조리 환경인데도 부엌에서 각자의 수준에 따라 협동하면서 움직이는 동선을 보면 아름답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음식 이야기 외에 도댕과 외제니의 사랑 이야기가 남아있다.

외제니는 시대를 앞서 나간 독립적인 여성인 것 같다. 부유한 미식가 도댕이 끊임없이 구애하는 데도 거절하고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겠다는 여성이다. 그녀는 부엌에서 요리를 할 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친구들의 말대로 도댕의 아내가 되어 화려한 만찬석에 앉아있을 수도 있었지만 예쁜 옷을 입고 남편의 옆에 앉아 재미도 없는 친구들 유머에 억지로 웃기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당당히 자신이 만든 작품으로 대화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도댕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 후에도 그의 노크에 문을 열어주지 않을 권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녀는 결코 그의 방을 쓰지 않고 끝까지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문을 열어줄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살았다.

그가 20년간 한결같이 그녀를 배려하고 존중하자 외제니도 감동하고, 도댕이 그녀를 닮은 배를 디저트로 내면서 청혼하자 받아들인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에서 외제니는 도댕에게 “나는 당신의 요리사인가요?, 아내인가요?”라고 묻고, 그는 “당신은 나의 요리사요.”라고 대답한다. 외제니가 고맙다며 환하게 웃는다.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둘은 포토푀를 요리하는 것처럼 긴 시간 동안 뭉근하게 변치 않고 사랑할 수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