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닌 50년 지기 친구이다. 친구도 원래 마음이 곱고 친절하지만 그녀의 딸도 엄마를 닮아서 바르고 착하다. 나는 아들만 있어서 그런지 친한 친구의 딸들이 너무 예쁘다. 내 딸 같다고 하면 좀 지나치고, 거의 조카 정도의 느낌이 든다. 딸들의 모습을 보면 그녀들의 엄마 젊었을 때 모습과 비슷해서 우리의 전성기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어서 좋다.
친구의 딸은 미국에서 석사 공부를 할 때 같은 클래스에서 만난 미국 청년과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다가 사랑해서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식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들의 사랑은 공고해서 긴 시간을 이기고 부부가 된 것이다.
미국에서도 예식을 했지만 한국 친지들에게도 인사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했는데 외국인 사위와 사돈어른들에게 배우자 나라의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전통 혼례를 선택했다고 한다.
나도 드라마에서나 보고 실제로 한국 전통 혼례에 참석한 적이 없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의상이며 절차가 뜻도 깊고, 한옥과 마당의 파란 잔디가 어우러져 너무 아름다운 결혼식이 되었다.
대문에 청사초롱이 매달려 있고 넓은 마당에 대례상이 차려져 있고 혼례가 끝나면 식사를 할 수 있는 예쁜 한옥이 있는 구조였는데 아쉽게도 그 시간에 비가 많이 와서 결국 실내로 옮겨서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
훤칠한 키의 신랑이 사모관대를 하고 하객들을 맞았다. 신부는 옛날에는 왕비만 입었던 원삼을 입고 족두리를 하고 연지곤지를 찍고 연신 신랑에게 지인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안사돈도 머리를 올리고 내 친구와 세트로 한복을 맞춰 입으니 아름다웠다.
나무 기러기 한쌍을 안은 분이 등장하고 뒤에 얼굴을 가린 신랑이 따라 들어온다. 과거에는 신부의 집, 즉 장모의 집에서 혼례를 치르니 남자가 결혼 하는것을 '장가간다'는 말로 표현했다. 배우자 하나와 일생을 같이 한다는 상징을 가진 기러기 한 쌍을 장모에게 주고 신랑이 절을 하면 장모는 수락의 의미로 기러기를 받아들인다.
다음에는 원삼 소매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신부가 들어오고 신랑과 신부는 처음으로 인사를 한다. 과거에는 얼굴 한 번 못 보고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어쩌면 이때 서로를 처음 보는 것일 수도 있었겠다.
이제 둘이 대례상을 마주하고, 신부가 절을 두 번 하면 신랑이 절을 한 번 한다. 좌중의 웅성거림을 눈치채고 진행자 분이 해명을 한다. 남녀 차별이 아니고 오행에서는 음은 짝수, 양은 홀수라 여자는 두 번, 남자는 한 번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하.
마주 앉아서 술잔을 드는데 한 번은 눈보다 높이 들어 하늘에 맹세하고, 한 번은 배우자를 향해 잔을 드는데 이는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의미이다. 다음에는 하나의 박을 반으로 나눈 표주박 두 개에 술을 따르고 각자 반쯤 마신 후 상대에게 전해서 나머지 술을 마시게 한다. 이는 원래 하나였던 박이 나누어져서 살다가 다시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라고 한다.
진행하시는 분이 양쪽에 있던 청실 꾸러미와 홍실 꾸러미를 가지고 나와 두 개를 꼬아서 하나로 만든 다음 대나무와 소나무에 걸쳐 놓는다. 이로써 둘은 부부가 된다.
요즘은 과거와는 달리 하객들 앞에서 핵심 절차만 치르지만 원래 전통혼례에는 이것 외에도 많은 절차가 있었다. 먼저 중신 어미가 중매를 하고, 사주단자를 교환하고, 함을 보내고, 대례를 치른 후에도 신랑의 발바닥을 친다. 이후에 신부집에서 얼마간 머물다가 신랑 집으로 가는 절차가 있는데 이때 비로소 '시집간다'는 표현을 쓴다. 또 옛날에는 친정에서 아이를 낳아 어느 정도 키운 후 시집을 가기도 했다고 한다.(신사임당도 이이를 낳고 좀 컸을 때 친정을 떠나 시집을 갔다.)
이때 친정에서 싸준 음식으로 시집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폐백’의 과정이 있다.
시집에서 지내다가 처음으로 친정 나들이를 하는 것을 ‘근친’이라고 하고 이때는 시집에서 준비해 준 음식으로 친정 친지들에게 대접하며 인사를 드린다.
여기까지 해야 혼례가 모두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요즘은 두 사람의 사랑만 있으면 행복한 시대이기는 하다.
그러나 서로를 존중하겠다고, 두 사람을 키워주신 양가 부모님앞에서, 하늘(신) 앞에서 맹세를 하고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를 하는 것은 상세 과정은 달라도 지역과 시간을 막론하고 있어 왔던 일이다. 살다가 어려운 일이 좀 있어도 신과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의 약속이 있었다면 견딜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우리나라도 주자의 ‘가례’에 따르기 전, 삼국시대부터 혼례가 있었다고 한다.
이번에 참석을 하고 보니 전통혼례가 우리 정서에 맞는 예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신부 아버지가 인사말을 했다. 평소에 과묵한 사람이었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보내며 만감이 교차하나 보다. 화려한 말은 아니어도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우리 딸은 진짜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미국 가면 자주 보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쉽다고, 딸이 자신이 아니라 예쁜 아내만 닮아서 다행이라고 한다. 신부도 결국 눈물을 흘렸고,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결혼식에 참석한 다른 친한 친구 부부도 외동딸이 아직 결혼이 멀었는데도 감정이입을 하고 눈가가 촉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