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과 시어머니는 큰 과오 없이,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사신 분들이다. 나는 이런 분들이 부모님이어서 운이 좋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이분들이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관을 가지거나 독립적인 분들은 아니었다. 자식들에게 지나친 것을 요구하신 적은 없지만, 어떤 면에서는 모든 것을 의지하셨다. 연로해지신 후에는 어디를 가실 때 자식들이 모시고 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셔서 꽃구경, 단풍구경 등 항상 두 어머니의 팔을 잡고 부축을 하고 다녔었다. 지팡이를 짚으시라고 하면 창피하다며 나의 손이나 팔을 잡거나 어떤 때는 장우산을 지팡이 대신 가지고 다니시기도 하셨다. 다리 때문이 아니라 날씨 때문에 가지고 나오신 것으로 보이고 싶으셨던 것이다. 동네 산책도 혼자서는 나가지 않으셔서 반드시 자식이 동행을 해야 했다.(위험할까 봐 따라나선 측면도 있기는 하다.)
외출했을때 화장실 가실때면 걸음이 느려 중간에 실수를 하실때도 있으니 팬티형 기저귀 착용을 권유해도 거부하셨다.(아주 나중에는 받아들이셨다)
우리 세대라면 도구를 이용해서라도 어떻게든 스스로 다니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을 텐데, 윗세대 어른들은 늙는 것이 창피하고 자식이 돌보지 않아서 저렇게 다니시게 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신경 쓰시고, 그것이 오히려 자식을 욕먹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자주 뵙는 할머니가 계신다. 물론 잘 아는 분은 아니다. 내가 이 아파트 단지로 이사 온 지 십 년이 넘었는데 초기부터 마주치던 분이다. 처음에는 연세가 꽤 있고 허리도 편찮아 보이는 분이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셔서 놀랍고 멋져 보였다. 나의 남편은 그분이 오히려 나 보다도 체력이 좋으시다고 나를 놀리며 운동 안 하는 나를 비난하는 사례로 이용하고는 했다. 수년이 흐르자 잠시 안보이기도 하다가 다시 나타나셨는데 이제는 자전거를 타시지는 못하고 걸어서 끌고 다니셨지만, 그래도 항상 무언가를 사서 자전거 바구니에 담으시고 다니셨다.(우리 동네는 슈퍼가 꽤 멀다)
다시 한동안 안보이시더니 어느 날, 짜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셨다. 능숙하게 속도와 방향을 조작하시며 동네는 물론 큰길의 횡단보도를 건너 어디엔가 다녀오시고 무엇이라도 사서 작은 봉지를 싣고 시원하게 달리신다. 추운 날에도 옷을 든든하게 입으시고 능숙하게 기기를 조작하시며 씩씩하게 달리신다. (좋고 따뜻한 옷을 제대로 갖춰 입으시는 걸 보면 돌보는 분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며칠 안 보이면 궁금하고 걱정이 될 정도이다. 부디 건강하셔서 전동 휠체어로 쌩쌩 달리시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휠체어라는 것이 자신이 못 걷는 것이 드러날까 봐 노인들이 타기도 싫어하기도 하지만, 수동 휠체어는 꼭 누군가가 밀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도구이다. 남에게 반드시 의존해야 하는 도구인 것이다.
전동 휠체어의 경우 혼자 작동할 수 있고 속도도 빠르지만, 일단 비싸고 집이 작은 경우에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노인들이 조작법을 배우지 못하거나 아니면 배울 수 없는 인지 상태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지 능력이 있고 독립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스스로 기동력을 확보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기구는 없을 것이다. 또한 돌보는 사람이 있다 해도 다른 일도 해야 해서 지쳤을 텐데 휠체어 미는 데까지 에너지를 쓰면 돌보는 일이 더 힘들어질 것이다.
전동 휠체어를 개인이 그냥 산다면 매우 고가이지만, 뇌졸중 환자이거나 장애 등급이 있다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구입이나 보조금 같은 절차는 젊은 자식들이나 사회기관에서 신경 써서 처리해야 하는 부분이다.
외출할 때마다 자식들이나 돌봐주는 사람에게 의존해야 한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빈도는 현저히 떨어진다. 번번이 그들의 호의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아무리 독립적인 사람들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오지만, 문제는 그 단계가 되지 않았을 때부터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외출도 마음대로 못하고 집에만 있으면 삶의 질이 떨어진다. 기구의 도움을 받으면 가까운 산책이나 노인정 출입을 자주 할 수있다.
부모님의 오랜 노년 생활을 지켜본 나는 어떻게 노년을 보내야할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예습을여러번 제대로 한 셈이다.
나는 한계에 이를 때까지 스스로 움직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노인을 위해 만든 기구를 제대로 이용할 것이다. 처음에는 한 개짜리 스틱을, 다음에는 바퀴와 작은 의자가 달린 보행기를, 나중에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스스로 움직이고, 아~주 나중에만 다른 사람이 밀어주는 수동 휠체어를 타고 싶다.
며칠전에 가랑비가 오는데 그할머니가 우산도 없이 지나가셨다. 내가 우산을 쓰셔야하지 않겠냐며 인사하자 쿨하게 대답하시며 지나가셨다.
"이정도 비는 괜찮아!"
전동 휠체어를 타시는 우리 동네 할머니는 나의 롤모델이다. 나도 그 할머니처럼 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