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직원의 이사하기 프로젝트(6)
※ 전편[단 하루만에 전셋집 구하기(2)] 을 먼저 읽어주세요:)
나는 흔히 '눈썰미 레이더'가 매우 뛰어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npc가 게임 내에서 쇼핑을 하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모든 물건에 대한 가격표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랄까? 때문에 쇼핑을 할 때, 마음에 들어 자연스럽게 가격을 확인하면 으레 그 매장에서 가장 비싼 것을 선택하는 쓰잘떼기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보는 눈만 있단 소리다. (살 능력도 보는 눈만큼 키우려고 노력 중이다. 언제 따라잡을진 모른다)
이 집주인 부부 내외를 처음 보자마자 내가 맡은 냄새는 돈 냄새였다. 돈 냄새라고 하니 지극히 천박한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분명 내가 맡은 냄새는 여유로운 돈 냄새였다. 그녀의 스카프와 차키가 명품이어서도 있지만, 그녀의 피부는 고생하나 없이 관리된 듯 투명 그 자체였고, 얼굴에는 구김살 하나 없어 이미 녹초였던 내 얼굴과 지극히 대비되었다. (누가봐도 내가 어렸는데 말이다)
나는 그 순간 이 집을 더욱 명확히 계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봐도 이 집은 그들이 사회생활해서 샀다기 보다는 여유로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고, (겉모습만 보고 내리기엔 섣부른 판단이지만, 결국 맞는 말이었다) 특히 본인들의 신혼집으로 쓰기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 리모델링이 한방에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집 천장에 물이 새도, 천장수리가 비싸다는 이유로 방수포로 임시방편 해결책만 쫓는 기존 집과 대비가 안될 수가 없었다는 것도 한몫했다.
다행히, 집주인 역시 아직 그대로 20대 티를 벗지 못한 우리 두 사람을 보고 마음에 들어했다. 애완동물 없이 둘다 직장인이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고, 무엇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을 왔다갔다 하려면 젊은 신혼부부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20대 부부가 대출 없이 전세자금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30대 부부가 집주인으로 신혼집을 내놓는다는 것,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신기해했다.
한샘으로 범벅된 신혼집에는 TV장, 선반 등 한샘 가구들도 대거 있었는데, 그들은 쿨하게 "원하시는 가구는 쓰시고, 안원하시는 가구는 버리세요, 혹시 버리실 때 드는 비용도 청구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저 새삥인 한샘 가구를 당근으로라도 되팔까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몇개를 좋은 마음으로 무료나눔했다.)
그 쿨함이 부러웠다.
에어컨을 거실과 안방 각각 1개씩 최신식으로 달아두어 충분히 가져갈 수 있었음에도, "이분들도 필요할거 아니야~" 라며 두고 갈 수 있는 배려가 부러웠다. 배려는 에어컨 뿐만 아니라 냉장고, 책상, 선반까지 이어졌고 나는 배려가 한개씩 늘어날 때마다 이래도 되나? 싶다는 물음표와 나 또한 그런 집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을 계속했다.
그들의 배려에 어떻게든 이사비를 아껴보겠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 내가 순간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5층까지 이삿짐을 옮겨야 했기에 2배로 이사비가 청구되었고, 나는 도대체 집주인은 어떻게 물건을 뺏을까 싶어 전화를 했지만, 포장이사면 다 되던데요~? 라고 해맑게 말하는 그녀 앞에 내 반포장이사가 부끄러웠다. 배려에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내 선택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또 한번 부끄러웠다.
계약서를 쓰는 날, 전세사기 문제에 거의 노이로제가 걸릴 뻔한 나는 공인중개사 아버지까지 대동하여 부동산에 나타났다. 이사날짜는 이미 전집에 들어오는 세입자 때문에 토요일로 확정돠어, 나 역시 토요일날 모든 짐을 옮겨야 했다. 문제는 잔금 치루는 날은 은행이 운영을 하는 월요일이었고, 잔금을 치루기도 전에 토요일날 입주를 해야하는 것이었다. 어떤 방식의 이사던지 잔금까지 금액 전달이 해결이 된 후에 입주를 하는 것이 원칙이기에, 집주인 입장에서는 돈을 받기 전에 세입자의 이사를 허가해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배려가 넘쳤다.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럼 일정 금액의 중도금을 토요일날 받고, 나머지 잔금을 월요일에 받아 바로 은행에서 융자금 처리를 하겠다고 했다. 짐이 2틀 동안 다른 곳에 보관되는 건 번거로운 일이니, 먼저 입주하셔도 된다고까지 했다. 심지어 "아 그럼 여행을 미뤄야겠네!" 라며 계획되어있던 해외여행을 뒤로 미루고, "괜찮아요~ 이사 잘하세요~" 라며 응원을 덧붙였다.
등기부등본에 '00년 00월 00일, 매물 증여'라는 글자가 부러웠던 건지, 그들의 태도가 부러웠던 건지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이런거구나.. 라며 멍하게 계약서를 받아들었다. 장난삼아 그날 저녁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집주인도 증여받은거더라~ 나 물려줄거 있음 그냥 지금 물려줘~"라며 못난 진심을 전하는 게 내 최선이었다.
이제 이사만 남았다.(크나큰 착각이었다)
※ 글을 쓰면서 집주인께 부러움과 감사인사를 같이 전합니다. (저, 여전히 잘 살고 있어요.)
※ 나도 인심 넘치는 곳간 주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