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직원의 이사하기 프로젝트(5)
※ 전편 [단 하루만에 전셋집 구하기(1)]을 먼저 읽어주세요:)
아침 10시, 가장 먼저 버스를 타고 공덕동으로 향했다.
공항철도 노선에서 서울역 다음인 공덕동은 이미 교통의 요지였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한번 살아볼까하고 고민했던 동네였다. 용산구 주민에서 마포구 주민이 되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전용면적 10제곱미터 이상을 넓힐 수 있어 도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되어, 주방 수리가 필요해보였고, 무엇보다 에어컨과 냉장고를 직접 사서 들어와야 한다는 사실에 바로 이 집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침 11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유는 우리집 바로 옆옆집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 건물에는 나름 인연이 있는데, 처음 청파동 집을 선택했을 만 2년 전, 해당 건물이 신축으로 나와서 무척이나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2억이 넘는 전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 희망사항으로 남겨둔 매물이었다. 내가 이사를 결심한 것이 2년 후다 보니, 그때 만기가 된 매물들이 나와있던 것이다. 특히 개별등기로 나누어진 다세대 주택이 아니라 빌라로서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한 건물에서 만기가 끝난 2개의 집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고, 그 2개의 집 모두 구조가 달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실제로 계약하게 된 집을 보기 전까지 거의 이 집으로 하겠다고 할 정도로 익숙한 동네에서 이미 알고 있는 매물이라는 점이 장점이었다.
정오, 남영역으로 이동했다.
기존 원룸과 크기가 동일하지만 투룸으로 빠진 구조였다. 앞의 임차인이 부득이하게 짐을 먼저 빼서, 공실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우린 당장 이번 달에 이사를 해야하는 사람들이니까. 햇빛은 잘 들었지만, 1층이 주스가게인점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항철도를 타고 출근해야 하는 나에게 서울역이 멀어진다는 점과 관리비가 비쌌다는 점에 과감히 패쓰를 외쳤다.
잠시 오후 2시 약속 전에 한숨을 돌리려 하자, 기존 집을 팔아주려던 공인중개사에게 연락이 왔다.
기존 집이 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매물이 있는데 보겠냐는 전화였다.
알고보니 윗동네에 이번에 리모델링 및 건축을 마친 단독주택이 전세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단독주택이다보니 이제까지 봤던 집 중에 가장 넓은 집이었다. 게다가 사다리를 통해 올라가면 있는 넓은 2층 다락방까지 왜 이 가격에 매물이 나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미 한차례 사기를 당한 나는 의심스러운 가격의 매물이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정말 대출이 나오는 집이 맞냐는 말을 남기고 집 구경을 마무리했다.
오후 2시, 할머니네 집 앞에 전세를 보러 가게 되었다.
이제까지는 우연히도 모두 공실이던 매물만 보다가, 임차인이 살고 있는 집을 처음으로 보게되었다.
사실 사진만으로 이 집은 우선순위 2위 안에 들 정도로 나와 동거남이 마음에 들어했던 집이었다.
기대를 품고 실례합니다를 외치며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진정 내놓은 매물이 맞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집이 더러웠다. 물건이 많기도 했고(더러운 집의 공통점은 물건이 많다는 것이다) 어딜 디뎌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집을 보여주는 임차인 젊은 남자는 조금 물건이 많다며 애써 포장하려 했지만 내 시선은 싱크대 속 쌓여있는 설거지감에 꽂혀있었다. 다시 한번 실례를 무릅쓰고 안방을 좀 살펴보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그는 흔쾌히 안방 문을 열었다. 사실 침대와 암막커튼 때문에 도저히 안방의 구조를 파악하기가 어려울 찰나, 비명을 속으로 누르고 있던 나는 찐으로 비명을 질러버렸다.
두꺼운 이불인줄 알았던 침대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알고보니 남자의 아내가 침대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자고 있다가 내가 온건지, 아니면 침대로 나름 숨어보겠다고 숨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침대 끄트머리에 삐죽 삐져나온 머리카락과 움직임에 그녀와 나 둘다 비명아닌 소리를 질렀고, 나는 황급히 죄송하다며 (지금 생각하면 내가 도대체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방문을 닫아버렸다.
깔끔한 집은 집이 나가길 바란다면 해야하는 조건 1순위입니다.
오후 4시에는 후암동으로 이동했다.
후암동 전체가 오래전부터 남산 아래자락으로서 언덕길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해당 주소지는 언덕이어도 심히 언덕이었다. 2월 겨울 끝자락에 본이 아니게 땀이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요즘 여름에 도저히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집에 도착했다.
일단, 외벽이 낡아도 너무 낡았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몇년도에 지어진 것인지 감히 물어보기가 무서운 연식이 오래된 건물이었다. 다행이 내부는 외벽만큼은 아니었지만 무엇이든지 상대적인 것이라고, 절대적 기준에서는 내부도 썩 신식은 아니라서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생각해보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플러스1까지 6개 집을 본 우리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사실상 이미 익숙해진 동네를 벗어나긴 글렀군이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은 2번 집으로 90% 이상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던 중 마지막까지 공인중개사와 연락이 닿지 않아 예약을 잡지 못했던 집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지금 집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이다. 이미 탈진 상태에서 하나 더 본다고 뭐가 달라질까라는 마인드로 집 건너편 갈월동으로 총총 걸어갔다.
청파동과 달리 언덕이 심하지 않은 갈월동 초입 예쁜 단독주택들을 지나쳐서 1층에 도착했다. 정시에 도착했건만, 늦을 것 같다는 공인중개사 덕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건물의 외벽 상태를 찬찬히 뜯어보는 것 밖에 없었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한눈에 봐도 20년은 족히 넘은 연식에 흐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신축 건물에 마음이 뺏겼으니 그럴만도 하다) 게다가 헉헉대며 오는 공인중개사 왈, 집이 5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단다. 네? 하... 일단 오셨으니까 보기라도 할게요. 하고 3명의 인간들이 5층을 올라갔다. 생각보다 올라올 만 한데? 라던 참에 공인중개사가 문을 열자마자 나는 마음을 뺏겨버렸다.
고도제한 5층이 걸려있는 갈월동은 N서울타워까지 시원한 뷰를 자랑하고 있었다. 5시 30분 노을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던 남서향의 뷰는 해를 올곶이 맞이해서 따뜻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내부는 신축 건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한샘 가구의 리모델링이 완벽하게 되어있었다. 모든 집 내부를 확인한 후, 내 첫 질문은 집주인의 연세가 어느 정도 되냐는 것이었다.
아, 젊은 신혼부부이시고 원래 신혼집으로 쓰려고 리모델링을 하셨는데,
부득이하게 부산으로 거처를 옮기셨대요. 그래서 다 사용을 못하셨습니다.
집주인께 불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이미 이사를 완료하셔서 한달 정도 공실이었기에 전기도 가스도 사용을 안했음에도 넘치는 햇살에 실내온도는 18도였다. 에어컨도 거실에 한대, 안방에 한대로 삼성 에어컨이 무려 새삥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안녕 집아? 너 내꺼 해야겠다.
당장 계약서를 쓰고 싶었던 참에, 두 남녀가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왔다.
집주인 부부내외였다.